의사가 처방하는 치료제로는 20퍼센트 치유만 가능하다?

해암도 2019. 9. 17. 05:27


인도 전통의료 아유르베다 치유 방법 중 하나인 오일 마사지.

이번 달 하순에 의뢰 받은 한 대학의 최고위 과정 강의, 도교육연수원 강의 준비를 위해 자료 수집을 하던 중 눈에 확 들어온 책이 있습니다. 2008년 대장암 수술 이후 치료와 몸 관리를 하는 과정에서 정리된 제 생각과 비슷한 내용이 많아 밑줄을 그어 가며 읽고 있는 책입니다.


미국의 가정의학전문의 웨인 조나스(Wayne Jonas) 박사가 쓴 책 ‘how healing works(치유는 어떻게 일어나는가)’입니다. ‘숨겨진 치유력 이용해 건강하게 잘 지내기(GET WELL AND STAY WELL using your hidden power to heal)’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한글 번역본 제목은 ‘환자 주도 치유 전략’입니다. 치료(cure, treatment) 대신 치유(healing)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주류 의학(현대의학)의 한계를 인정합니다.


1. 의사들이 처방하는 ‘치료제’로는 20퍼센트 치유만 가능하다. 이 치료제에는 약물, 수술, 침술, 약초, 영양제, 식이요법을 비롯한 모든 외부적인 것들이 포함된다.

2. 치유의 나머지 80퍼센트는 유의미한 반응을 쌓아가는 데서 오는데, 이 반응은 내면에서 일어나며 사람마다 매우 다르다.

3. 우리는 누구나 내면의 치유 과정을 활성화할 수 있다. 의사와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치유의 속도를 높일 수 있으며 효과, 안전, 비용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이 과정을 따르며 노화와 함께 오는 만성질환도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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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스 박사의 들어가는 말(서문)의 일부 내용입니다. 자존심 강한 의사들이 보면 반발할 수도 있는 내용입니다. 얼핏 보면 주류 의학계에 속하지 않은 누군가가 주류 의학계를 비판하는 글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나스 박사는 미국국립보건원 국장, 세계보건기구 전통의학협력센터장을 지낸 가정의학 전문의입니다.

그는 위의 3가지 주장을 펼치는 근거를 철저히 의료 현장에서 찾았습니다. 조나스 박사는 퇴행성 관절염에 시달리던 79세의 노마 할머니를 치료할 방법이 없어 안타까워했습니다. 비타민 B3의 일종인 나이아신아미드가 퇴행성관절염에 좋다는 책을 보고 자신의 환자를 대상으로 직접 실험을 했습니다.

노마 할머니를 포함한 실험 대상자들은 나이아신아미드와 똑같이 생긴 플라시보(가짜약) 중 하나를 받았습니다. 노마 할머니는 3개월만에 80% 이상 증상이 개선됐습니다. 조나드 박사는 나이아신아미드가 효과가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받은 것은 플라시보였습니다.

중동 전쟁에서 회복 불능의 뇌손상을 입은 마틴 하사의 치료는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한참 뒤 만난 마틴 하사는 놀라울 정도로 회복된 모습이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고압산소치료 덕분"이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조나스 박사는 고압산소치료가 마틴 하사를 치료할 수 있다는 어떤 근거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마틴 하사는 분명이 좋아졌습니다.

파킨슨병에 걸린 인도 사업가는 세계 유명 병원 어디에서도 치료하지 못했지만 인도 전통의학인 아유르베다를 통해 일상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됐습니다. 조나스 박사는 그 환자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고, 아유르베다 치유센터장에게 공격적인 질문을 퍼붓기도 합니다.

오일 마사지, 약초 치료, 독소 제거, 명상, 요가, 식이요법 등 아유르베다에서 이뤄진 것 중에서 어느 것 하나도 파킨슨병 치유나 회복 효과가 증명된 것이 없는데 어떻게 증상에 개선되는지 의문을 갖습니다.

중국에서는 강직성척추염에 걸린 청년의 증상이 개선되는 과정을 직접 확인합니다. 한약과 추나요법, 태극권, 긴 휴식과 수면, 식이요법, 웃음을 통해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 강직성 척추염 증상이 개선된 이유는 뭘까요? 조나스 박사 자신도 생각이 복잡한 것 같습니다. 이 책에는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과학을 깊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나는 점점 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노마 할머니(퇴행성관절염), 마틴 하사(뇌 손상) 같은 환자들이 가장 엄격한 과학적인 근거에 입각해 치료할 때는 도무지 낫지 않다가 내가 회의적으로 보던 비과학적 방법을 채택한 후에 놀라울 정도로 나아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아디(파킨슨병), 샤오(강직성척추염) 같이 이른바 불치병을 앓던 사람들이 과학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전통 의료체계를 통해 회복되는 과정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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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스 박사는 통합의료에 주목합니다. 현대 의학(약물치료)과 침술, 카이로프랙틱, 마사지 같은 보완대체 의료, 자가 치료(운동, 식이요법, 스트레스 관리) 세 분야가 과학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갖고 환자 중심의 치료를 주요 원칙으로 삼고 서로 교차하는 것입니다.

사실 통합의료라는 개념은 우리 나라에서도 꽤 오래 전부터 쓰여지고 있지만, 막상 의료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습니다. 의료 현장에서 의학과 한의학, 보완대체의학을 조화시키려는 의료인들의 노력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의사들은 오히려 한의학이나 보완대체의학 자체를 터부시합니다. 환자들이 자신들의 지침과 다른 무언가를 시도 하려다가 주치의에게서 쓴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한 암 환우들이 극적으로 암을 물리친 사례가 꽤 있습니다. 임상을 거치지 않은 여러가지 비과학적인 방법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배척할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환자 주도 치유 전략’이라는 한국어판 제목에 특히 공감합니다. 환자가 주어진 의료 시스템을 자신에 맞게 활용하고, 스스로 치유 방법을 실천할 때 진정한 치유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2008년 대장암 수술 이후 건강한 삶, 행복한 삶에 초점을 맞춰 살면서 깨닫게 된 사실입니다. 조나스 박사의 책을 통해 제 생각이 전혀 엉뚱한 게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게 되 기쁩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책 한 단락을 인용합니다.

“현대의학이든 전통의학이든, 주류의학이든 대체의학이든, 검증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상관없다. 의사만이 아니라 환자도 일상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치유가 필요한 사람의 내면으로부터의 의미있는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다."

 


홍헌표 편집장  2019-09-10


  홍헌표
조선일보 기자, 헬스조선 취재본부장을 거쳐 현재 ‘마음건강 길’ 편집장을 맡고 있다.2008년 대장암 3기로 수술을 받았으며, 암 재발을 막기 위해 면역력을 높이는 몸 습관, 마음 습관을 꾸준히 지키고 있다.
암투병 에세이 <나는 암이 고맙다> <암과의 동행 5년>을 썼으며 라이프 코치로 공공기관, 주요 기업 임직원 대상 강의, 코칭 상담 등을 진행하고 있다. 2011년 암 치유와 건강을 위해 만든 웃음 동호회 ‘웃음보따里’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몸맘건강 네트워크 ㈜힐러넷 대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