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회는 지역마다 먹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1 제주도 서귀포시 보목항 ‘자리가시횟집’의 자리물회. 가장 전통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2 강원도 속초의 물회 명소 ‘봉포머구리’의 전복해삼물회. 주말이나 휴가철에 이 물회를 맛보려면 번호표를 뽑고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 3 정통 경북 물회는 잡어와 배·오이를 고추장에 비벼 먹는다. 경북 영덕 ‘돌고래횟집’의 물회에는 광어·노래미·도다리가 들어 있었다.
손민호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자리돔으로 차린 밥상. 자리물회, 자리구이, 자리강회, 자리젓이 올라온 밥상이다. 손민호 기자
자리돔에 대하여
자리돔은 손바닥만 한 생선이다. 연근해에 모여 산다. 자리돔은 평생 제자리를 지킨다. 자리를 벗어나지 않아서 자리돔이다. 서귀포 보목항 앞바다의 자리돔은 보목항 앞바다에서만 살다 죽고, 대정읍 모슬포항 앞바다의 자리돔은 모슬포 앞바다에서만 살다 죽는다.
서귀포 보목항의 아침 풍경. 보목 주민이 나와 자리돔을 팔고 있다. 손민호 기자
자리돔. 붕어처럼 생겼고, 어른 손바닥만 하다. 제주도의 대표 '국민생선'이다. 손민호 기자
제주도 물회 지도.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육지 사람은 전통 자리물회 앞에서 세 번 놀란다. 처음엔 된장 국물에 놀란다. 전통 물회는 빨갛지 않다. 누렇다. 된장만 풀어서다. 처음엔 된장 특유의 비린내가 역할 수 있다. 하나 익숙해지면 비린내가 되레 반갑다. 제주도 식당에서 파는 빨간 국물의 물회는 관광객을 위해 개조한(또는 위장한) 고추장 물회다.
전통 방식의 자리물회. 된장을 푼 국물에 제피나무 잎을 얹었다. 손민호 기자
마지막 단계가 빙초산이다. 빙초산 한두 방울 떨어뜨려야 자리물회가 비로소 완성된다고 제주 사람은 믿는다. 원래는 자리물회를 만들 때 뼈를 연하게 하려고 넣었다는데, 제주 사람은 식탁에서도 넣는다. 그러나 빙초산은 음식이 아니다. 화학약품이다. 요즘에는 전통 물회 집도 사과식초를 내놓는다.
이 세 단계를 모두 통과하면 입맛만큼은 제주 사람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두 단계만 거쳐도 제주 여행 고수로 인정할 만하다. 자리물회를 대하는 자세에서 당신의 제주도가 오롯이 드러난다.
한치물회의 계절
자리물회는 제주 사람의 애환이 어린 음식이다. 굽기에는 작은 생선을 잘게 썰어 된장에 버무린 뒤 물을 부어 먹었다. 비린내를 잡으려고 제피를, 뼈까지 씹으려고 빙초산을 넣었다. 제주 사람은 된장국에 밥 말아 먹듯이 자리물회에 보리밥을 말아서 먹었다.
제주시내 관광식당에서 내놓은 한치물회의 모습. 육지 사람의 입맛에 맞춘 음식이다. 손민호 기자
한치는 차귀도 바다가 유명하다. 차귀도 배가 뜨는 자구리 포구가 한치 말리는 풍경으로 알려져 있다. 한치는 여름이 제철이다. 여름밤 자구리 포구 주변 수월봉에 오르면 불 밝힌 한치 배가 검은 바다에 점점이 떠 있다.
이제 식당을 소개할 차례다. 보목 포구에 ‘자리가시횟집’ 등 전통 자리물회를 내는 식당 네댓 곳이 몰려 있다. 보목 포구 어귀의 ‘어진이네 횟집’은 올레꾼 사이에서 소문난 집이지만, 지금은 공사 중이다. 법환포구의 ‘포구식당’ 서귀포 남원의 ‘공천포식당’ 서귀포 시내의 ‘맨도롱해장국’ 제주 시내의 ‘엉덩물’ 등이 제주 토박이가 꼽는 자리물회 집이다. 한치물회 하는 집은 흔하다. 자리물회 가격은 1만∼1만5000원이다.
제주=손민호 기자
강원도를 물회의 고장으로 부추긴 이들은 다름 아닌 관광객이다. 음식 칼럼니스트 황영철 ‘강원도외식저널’ 대표는 “1980년대 동해가 바캉스 여행지로 개발되면서 관광객을 상대하는 횟집이 생겼고, 90년대 이후 여행객이 물회를 찾자 횟집들이 죄다 물회를 메뉴로 올렸다”고 설명했다.
강릉 사천항에서 맛본 물회. 온갖 해산물로 가득하다. 양보라 기자
강원도 물회 지도.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모둠 물회의 전형은 속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한국관광공사가 티맵 빅데이터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강원도 인기 관광지 20곳 중 음식점이 4곳 포함됐다. 이 중 세 곳이 속초의 물회 전문점이다.
인터넷에서 ‘3대 속초 물회’로 통하는 ‘봉포머구리’ ‘청초수물회’ ‘속초항아리물회’의 호객 포인트는 동일하다. 화려함이다. 광어·도다리·방어 등 생선회를 깔고 전복·해삼 같은 고급 해산물을 수북이 올린다. 고추장을 기본양념으로 국물을 낸 점도 똑같다. 세 집 모두 한 해 매출로 50억~60억원을 올리고 한 집은 4층 빌딩을 올릴 정도로 성공했다지만, 이른바 3대 물회 집에 속초 시민의 발길은 뜸하다.
속초 장사항 '이모회집'의 한천물회. 성게 알과 해초 지누아리를 넣어 만든 한천(우뭇가사리) 묵을 넣었다. 양보라 기자
속초 토박이가 즐겨 찾는 '구구집'의 물회. 동명항 외곽에 있다. 양보라 기자
쇠퇴한 갯마을을 살려낸 물회
동해안 바캉스의 거점 강릉에는 물회로 똘똘 뭉친 마을이 있다. 사천항 앞의 사천진리다. 9억 원에 달하는 빚을 지고 있던 사천진리 어촌계는 채무를 탕감하려면 관광 활성화밖에 답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천진리 주민들은 속초, 경북 포항, 제주의 유명 물회 식당을 두루 탐방한 뒤 마을의 운명을 ‘물회’에 걸었다. 2007년 물회 마을이라는 푯말을 세우고 횟집 17곳이 물회를 다루기 시작했다.
강릉 '사천물회전문'에서 먹은 물회. 생선 회 뿐 아니라 멍게, 해삼, 전복 등이 듬뿍 들었다. 양보라 기자
‘서퍼의 성지’ 양양에서는 수산항 근처의 작은 횟집 ‘동쪽바다세꼬시’가 물회로 이름이 났다. 이 식당의 물회는 단출하다. 꾸미는 일절 올리지 않고 자작한 슬러시 국물에 회무침을 담아준다. 횟감으로는 동해 대표 어종 참가자미만 쓴다. 남편 김승찬씨가 3.3t급 어선 엑스포호를 끌고 수산항 앞바다에서 낚아오는 참가자미다.
양양 수산항 '동쪽바다세꼬시'의 물회. 생선 회를 된장에 무친다. 양보라 기자
강원도 물회가 근본이 없다고 폄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강원도 물회는 우리나라 여행 1번지 강원도를 찾아오는 외지인에게 맞춤형으로 진화한 음식이랄 수 있다. 뼛속까지 시리는 청량한 여름 음식으로 톡톡히 제 몫을 하니까. 속초부터 강릉까지 동해를 곁에 두고 물회 여행을 하고 난 소감이다.
속초·강릉·양양=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경상북도에서는 포구를 찾아다니며 물회를 먹는 재미가 남다르다. 영덕 축산항의 모습. 최승표 기자
경상북도 물회 지도.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포항은 물회 대중화의 본고장이라 할 만하다. 동해안 포구마을 어디서나 물회를 먹었겠지만, 최초로 외식 메뉴화한 건 포항이라고 한다. 고(故) 허복수씨가 1960년대 ‘영남물회’를 열고 물회를 본격적으로 팔기 시작한 것이 원조로 알려져 있다.
포항 '마라도회식당'의 최강달인물회. 생선 회와 채소를 고추장에 비빈 뒤 맹물을 부어 먹는 정통 포항 물회와 달리 슬러시 음료 같은 육수를 내준다. 최승표 기자
두 식당의 물회는 닮았다. 슬러시 음료 같은 육수를 따로 내고, 매운탕과 소면 한 줌도 준다. 환여횟집은 횟감으로 광어, 마라도회식당은 우럭을 쓴다. 마라도회식당 ‘최강달인물회(2만2000원)’는 비싼 만큼 화려하다. 소라·해삼·전복·오징어도 얹어준다. 육수는 멸치·다시마·버섯 등으로 우려냈다고 강조한다. 슬러시 육수를 쓰는 식당 대부분이 사이다와 화학조미료로 맛을 내기 때문이다.
포항 죽도시장 '수향회식당'에서 파는 물회. 우럭 회가 넉넉히 들어가 있다. 고추장에 비빈 뒤 기호에 따라 맹물을 부어 먹기도 한다. [중앙포토]
포항 북부시장은 포항시민이 주로 찾는 전통시장이다. 막회를 파는 식당 대부분이 물회도 판다. 최승표 기자
포항 북부시장 '감포횟집'에서 맛본 6년 묵은 고추장. 초고추장은 물론이고 시중의 고추장보다 훨씬 깊은 맛을 낸다. 최승표 기자
동해안 포구 마을 어디에서도 물회를 맛볼 수 있다. 포항처럼 물회 장사로 건물을 올린 식당은 없다 해도, 뱃사람이 아침마다 들락거렸던 포구 식당이 유서 깊은 물회 맛집으로 남아 있다.
영덕 강구항 '청송식당'에서 맛본 미주구리 물회. 기호에 따라 먹으라고 고추장과 초고추장을 모두 내준다. 가자미식해, 창란젓 같은 반찬도 맛있다. 최승표 기자
청송식당 물회에도 물이 없었다. 대신 얼음 대여섯 개가 들어 있었다. 고추장과 함께 초고추장도 내줬다. 얼음과 초고추장은 시원하고 새콤달콤한 맛을 찾는 외지인 때문이라고 했다. 맛이 자극적이었다. 다진 마늘과 청양고추가 들어간 데다 고추장 자체가 매웠다.
영덕 대진항의 ‘돌고래횟집’은 음식 칼럼니스트 김진영 ‘여행자의 식탁’ 대표가 추천한 물회 집이다. 김진영 대표는 “생선 자체가 맛있는 물회를 먹으려면 관광식당보다 항구의 작은 식당이 낫다”며 “슬러시 육수를 내거나 김 가루를 듬뿍 뿌리는 집만 피하면 된다”고 귀띔했다.
영덕 '돌고래횟집'의 물회도 정통 경북 물회다. 매일 들여온 신선한 횟감에 오이와 배, 고추장을 비벼 먹는다. 최승표 기자
임 사장이 추억담을 들려줬다. 중학교를 졸업한 날부터 배를 탔는데, 아침에 던져둔 그물을 걷을 때를 기다리며 배에서 아침 겸 점심으로 물회를 먹었단다고 했다. “뱃사람들이야 술을 달고 사니 아침마다 해장이 필요했죠. 쌀이 귀하던 시절이어서 집에서 쪄온 보리밥에 생선과 고추장을 비비고 물을 부어서 훌훌 들이켰죠.” 그렇다. 경북의 물회는 뱃사람의 해장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