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투자자는 단기 거래만… 거품 붕괴로 이어질까 걱정

한 30대 '가상 화폐' 투자자가 물어왔다. "남들은 큰돈을 벌었다고 하는데 왜 저는 이 '카지노판'에서 못 벌었는지 모르겠어요. 밤잠도 안 자며 남들보다 더 빨리 열심히 사고팔았거든요…."
정부가 가상 화폐 대응에 우왕좌왕하며 사태를 악화시키던 와중에 대답의 실마리가 될 만한 뉴스가 들려왔다. 워런 버핏 미국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총상금 100만달러(약 10억7000만원)를 걸고 헤지펀드와 벌인 10년 투자수익률 내기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버핏은 2007년 달콤한 고(高)수익 광고로 투자자를 유혹하던 한 헤지펀드 매니저와 내기를 했다. 버핏은 초보 아마추어처럼 주식시장의 대표적인 500대 우량 기업을 모두 편입한 '저비용 S&P 500 주가지수 펀드'를 샀다. 사실상 미국 주식 전체를 장기 보유하며 개별 주식은 매매하지 않는 투자 전략이다. 경제성장에 따른 주가지수 등락만큼 수익이나 손실을 낸다. 반면 헤지펀드 매니저는 첨단 기법을 동원해 수시로 개별 주식을 사고파는 100여 개 헤지펀드에 돈을 나눠 맡겼다.
10년이 지난 지난해 말, 매입 후 장기 보유한 버핏의 연평균 수익률은 7.1%였다. 반면 단기 거래에 열중했던 헤지펀드 수익률은 누적된 거래 수수료를 빼고 나니 연평균 2.2%에 그쳤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투자 대가(大家)들은 금융시장의 작동 원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전체 주식(예컨대 주가지수 펀드)을 산 뒤 장기 보유한 A 투자자 그룹의 장기 수익률은 그 기간의 주가 상승률과 일치한다. 따라서 나머지 B 그룹, 즉 고수익을 추구하며 개별 주식을 단기 매매한 투자자 그룹의 장기 수익률도 전체 주가 상승률과 일치할 수밖에 없다. B 그룹의 개개인들 사이에 수익률 차이가 나지만, 그룹의 총수익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수익을 내면 다른 사람이 손실을 보는 뜯어먹기 게임일 뿐이다.
여기에 B 그룹의 펀드매니저들은 매년 투자 수익의 약 60%를 각종 수수료로 떼어간다. 그러니 버핏의 성공 비결은 우량 기업의 주식을 잘 골라 장기 보유하는 전략으로 기업의 성장 이익을 고스란히 흡수하는 한편, 빈번한 단기 거래에 따른 각종 비용과 세금은 절약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존 보글 뱅가드그룹 창업자는 "가장 성공적인 투자 전략은 기업들이 배당이나 주가 상승으로 당신에게 돌려주는 공정한 몫을 온전히 챙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투자 대가들은 투자자로서의 성공 여부를 15~20년간의 장기 실적으로 판단한다. 피터 린치, 존 템플턴, 조지 소로스 같은 월스트리트의 전설적 인물들은 모두 이 시험대를 통과했다. 이 길은 단기 유혹에 맞서는 극도의 인내심과 절제, 장기적 안목을 요구한다. 군중 심리에 휩쓸려서도 안 된다. 버핏은 "수천 명의 펀드 매니저 중에서 그런 사람은 내 평생 10명 정도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가상 화폐 투자는 '백전노장'인 버핏의 철학과 너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거래소들은 수수료 수입을 올리기 위해 스마트폰과 컴퓨터, 심지어 시내버스에도 광고를 내걸고 2030을 유혹한다. 투자자들은 대박을 꿈꾸며 초단기 거래에 열광한다. 정부마저 어설픈 정책으로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1940년대 합성섬유 혁명기의 화학회사 주식, 1960년대 달 착륙 시기의 항공·우주 주식, 1990년대 인터넷 혁명기의 닷컴 주식은 모두 단기 거래 급증에 따른 폭등과 거품 붕괴의 패턴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술 발전과는 결이 다소 다른 금융투자의 독특한 논리이다. 블록체인 혁명의 총아(寵兒)인 가상 화폐는 과연 예외일까.
조선일보 김기훈 WEEKLY BIZ 에디터 입력 : 2018.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