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포식자로 올라선 건, 개와의 든든한 동맹 덕분"

해암도 2017. 12. 16. 08:39


침입종 인간

침입종 인간   팻 시프먼 지음
조은영 옮김|푸른숲   388쪽|1만8500원

인간이 생태계에서 가장 포악한 침략자다. 도발적이기는 하지만,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출간된 이후에는 사실 새롭지 않은 명제(命題)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인류학과 명예교수의 2015년 저서도 '사피엔스'의 문제의식과 동일한 궤도에 있다.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의 등장 이후, 매머드와 도도새 등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는 설명이다. 우리 인류야말로 '성공한 침입종(侵入種)'이자 '잔인한 포식자'라는 것이다. '침략자'를 뜻하는 책의 원제('The Invaders')를 한글판에서는 '침입종'이라는 점잖은 학술 용어로 옮겼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마지막 4부에 있다. 인류가 침략자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최고의 동맹군 역할을 했던 것이 늑대에서 유래한 초기의 개(dog)였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2009년 벨기에 연구팀의 결과를 바탕으로 인간이 개를 길들이기 시작한 시점도 기존의 1만8000년 전보다 훨씬 앞선 3만6000년 전이라고 추정한다.

화가 댄 버(Dan Burr)가 매머드를 사냥하는 초기 현생 인류를 그린 상상화.푸른숲 제공
화가 댄 버(Dan Burr)가 매머드를 사냥하는 초기 현생 인류를 그린 상상화.푸른숲 제공
책에는 이전 연구들과 상반되는 대담한 주장도 적지 않다. 기존 연구들은 인간이 고기를 얻기 위해 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저자는 인간이 가지지 못했던 능력을 빌려와서 '살아있는 도구'로 쓰기 위해 가축화했다고 반박한다. 냄새로 먹잇감을 추적하는 능력, 먹잇감을 둘러싸고 위협해서 붙잡아두는 능력, 필요시 먹잇감을 직접 공격하는 능력을 얻었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의 주장은 입증된 사실보다는 가설 수준으로 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흥미로운 것도 사실이다.

또 다른 영장류는 눈꺼풀 때문에 시선의 방향을 알아챌 수 없는 반면, 인간은 흰자위가 드러나기 때문에 멀리서도 어디를 보는지 쉽게 알아챌 수 있어서 의사소통에 유리했다고 설명한다. 인간이 반려견을 바라보면서 유대감을 느끼거나 즐거워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현생 인류가 살아남은 이유는 단순히 개 덕분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저자의 가설이다. 역시 방송 프로그램 제목처럼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조선일보    김성현 기자    입력 : 2017.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