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이진우 외 25명 지음 |휴머니스트 | 356쪽 | 1만8000원
‘대통령에게 권하고 시민이 함께 읽는 책 읽기 프로젝트’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문자 그대로 각 분야 지성인 26명이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 26권의 목록을 담았다. 이 책은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느낀 문제의식을 토대로 기획됐다. 도정일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상임대표는 “지난겨울 촛불이 우리 가슴에 지펴준 것은 사람의 사회,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희망과 다짐의 불꽃이다”며 “책은 길잡이, 등불, 북극성이다”라고 말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26명 저자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서점가에서 널리 읽히고 신뢰받는 이들은 ‘대통령이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그간의 내공과 진심을 모두 동원해 답했다.
대통령을 위한 책 큐레이션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통치와 리더십에 관한 책이다. 철학자 이진우는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권했다. 리더가 현실에서 닥친 위기를 극복해내는 힘은 내면의 강인한 영혼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박명림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선정했다. 운명에 맞서는 통치자의 자질을 강조하는 군주론은 좋은 법률, 좋은 군대를 갖추는 일과 함께 민중의 지지를 굳건히 할 것을 강조했다. 통일학자 김연철은 <만델라 자서전>, 한문학자 안대회는 <정조치세어록>을, 역사학자 한명기는 류성룡의 <징비록>을 각각 추천했다.
빈곤·노동·여성 등 지금의 사회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한 국내외 저서들도 다수 포함됐다. 사회학자 오찬호는 “가난을 설명하는 데 가난 그 자체만큼 설명력을 가진 변수는 없다”며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의 빈곤 연구서 <사당동 더하기 25>를 권했다. 문화연구자 천주희는 한국 여성들이 겪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추천했다. 국문학자 천정환은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전적 수기로 화제를 모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골랐다. 기생충학자 서민은 애너벨 크랩의 <아내 가뭄>을 권하며, 가사노동 문제 해결이야말로 사회 발전의 지름길이라고 밝힌다.
미래를 바라보는 시야를 키워주는 책들도 있다. 물리학자 김상욱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추천하며, “불확실성과 무지를 인정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라”며 과학적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철학자 이진경은 인공지능 시대 일자리의 위협에 근본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마틴 포드의 <로봇의 부상>을 권했다. 경제학자 홍기빈은 대통령이 허먼 데일리의 <성장을 넘어서>를 일독해 인간과 자연의 상생에 기반을 둔 새로운 경제모델을 고민할 것을 권했다. 경제평론가 이원재는 마크 브라이스의 <긴축>에 대한 추천글에서 “집값이 비싸고 좋은 일자리가 부족해 미래가 없는 것 같다는 청년들의 절망을 두려워해야 한다”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면 국가 부채는 충분히 늘려도 된다”고 적었다.
문학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들도 대통령에게 권하는 독서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역사학자인 임지현은 전쟁 영웅의 서사를 벗어나 개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골랐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소설가 정찬의 중편 ‘얼음의 집’을 추천하며, 권력은 영향력이 아니라 책임감이라는 것을 치열한 사유를 통해 보여주는 텍스트라고 평가했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은 생태학자 데이비드 해스컬이 쓴 <숲에서 우주를 보다>처럼, 대통령도 청와대 뒷산 어딘가에 “지름 1미터 정도의 우주로 통하는 창”을 만들어 우주를 만날 것을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