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집 인문학자·전 가톨릭대 교수
《“걷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때 경험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어쩌면 삶은 ‘산책’과 ‘순례’ 사이를 오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걷는 것은 정지를 거부한다. 그렇다고 잠깐의 쉼마저 거절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 자신의 몸으로 사는가. 일상의 삶은 그런 여유를 잘 허락하지 않는다. 늘 앞만 보고 달리라고 한다. 달리는 것은 목적지가 분명하다. 오로지 속도만 요구한다. 풍경은 부속물에 불과하다. 시간의 단축만을 요구하는 것은 삶과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거세시킨다. 그것은 단순히 장소의 이동에 불과하다. 달리면서 생각은 가둬진다.
그러나 걷는 것은 딱히 목적지가 없어도 된다. 그것은 속도를 요구하지 않는다. 삶의 속도와 영혼의 속도가 벌어질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걷기는 그 별리(別離)를 좁히고 자신을 회복한다. 걷기는 삶의 풍경을 선물한다. 걸을 때만이라도 자신의 몸으로 산다는 건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자신의 실존에 대한 감정을 되찾는 걷기는 행복하다.
우리는 문명의 이기를 날마다 누린다. 자동차와 기차는 편리함을 주지만 수동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걷는 건 지나가는 시간을 음미하고 전에 알지 못했던 장소들과 얼굴들을 발견하게 해준다. 그것은 몸을 통해 무궁무진한 감각과 관능의 세계를 새롭게 확장하는 방식이다. 걷기는 그렇게 시간과 공간을 새로운 환희로 바꿔준다.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어쩌면 삶은 ‘산책’과 ‘순례’ 사이를 오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걷는 것은 정지를 거부한다. 그렇다고 잠깐의 쉼마저 거절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 자신의 몸으로 사는가. 일상의 삶은 그런 여유를 잘 허락하지 않는다. 늘 앞만 보고 달리라고 한다. 달리는 것은 목적지가 분명하다. 오로지 속도만 요구한다. 풍경은 부속물에 불과하다. 시간의 단축만을 요구하는 것은 삶과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거세시킨다. 그것은 단순히 장소의 이동에 불과하다. 달리면서 생각은 가둬진다.
그러나 걷는 것은 딱히 목적지가 없어도 된다. 그것은 속도를 요구하지 않는다. 삶의 속도와 영혼의 속도가 벌어질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걷기는 그 별리(別離)를 좁히고 자신을 회복한다. 걷기는 삶의 풍경을 선물한다. 걸을 때만이라도 자신의 몸으로 산다는 건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자신의 실존에 대한 감정을 되찾는 걷기는 행복하다.
우리는 문명의 이기를 날마다 누린다. 자동차와 기차는 편리함을 주지만 수동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걷는 건 지나가는 시간을 음미하고 전에 알지 못했던 장소들과 얼굴들을 발견하게 해준다. 그것은 몸을 통해 무궁무진한 감각과 관능의 세계를 새롭게 확장하는 방식이다. 걷기는 그렇게 시간과 공간을 새로운 환희로 바꿔준다.
또한 걷는 사람은 시간의 부자다. 모든 시간과 장소는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만한 주관성 혹은 주체성을 얻는 일이 어디 그리 흔한가. 그러니 하루의 짧은 시간만이라도 걷기를 통해 자신을 다잡고 주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매력적이다. 가끔은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여 모든 시간과 공간을 몸으로 체험하는 걷기는 그래서 관능적이다.
몇 해 전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를 보름 동안 걸으면서 몸은 힘들었지만 걷기를 통해 순례라는 극한의 근처까지 접근하면서 느꼈던 농밀한 충일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늘 꿈꾸던 설산을 직접 걷는다는 사실보다 매 순간을 오로지 나로서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행복했다. 걷는 것은 단순히 풍경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만나는 것이고 침묵 속에서 나에게 말을 거는 일이다.
몇 해 전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를 보름 동안 걸으면서 몸은 힘들었지만 걷기를 통해 순례라는 극한의 근처까지 접근하면서 느꼈던 농밀한 충일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늘 꿈꾸던 설산을 직접 걷는다는 사실보다 매 순간을 오로지 나로서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행복했다. 걷는 것은 단순히 풍경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만나는 것이고 침묵 속에서 나에게 말을 거는 일이다.
걷는 것은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고 주위에서 울려오는 소리들을 음미하고 즐길 수 있는 놀라운 행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걷는 것은 세상 밖으로 외출하는 것이다. 그건 단순히 몸의 외출이 아니라 생각과 느낌의 외출이기도 하다. 가끔은 어떠한 좌표도 정하지 않은 채 삶의 걷기를 누려볼 일이다.
김경집 인문학자·전 가톨릭대 교수 동아 입력 2017-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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