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급락 5가지 이유(상)
①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비트코인, 한 달 새 25%↓…이더리움은 반토막
“폭등 따른 폭락” 떨어져도 연초 대비 2배 상승
이더리움은 연초 8달러, 지금은 200달러선 거래
“닷컴 버블” 비관론 팽배…그래도 장기 전망 밝아
②‘맏형’ 비트코인이 쪼개진다
블록당 1MB 용량…이용자 급증으로 처리 속도↓
용량 늘리는 세그윗에 대규모 채굴자들 반대
“8월 1일 분할될 수 있다” 우려에 가격 급락
시총 절반 비트코인 하락에 알트코인 동반 하락
21세기판 ‘튤립 버블’ 붕괴인가. 가상화폐값이 폭락하고 있다. 가상화폐 정보업체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맏형 격인 비트코인은 12일 오전 2시 15분(현지시간) 1비트코인당 2272달러까지 떨어졌다. 딱 한 달 전인 6월 12일에는 3020달러까지 치솟았다. 고점 대비 25% 하락했다. 한국 시간으로 13일 오전 9시 현재 2423달러에 거래 중이다.

맏형의 지위를 위협하던 가상화폐의 차남 격인 이더리움의 낙폭은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한 달 전 고점(6월 12일 414달러) 대비 반 토막 났다. 지난 11일(현지시간) 183달러까지 떨어졌다. 현재는 226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불과 한 달 전과는 분위기가 판이하다. “버블 붕괴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비관론에서부터 “급등에 따른 단기조정일 뿐”이라는 해석까지 다양하다. 전에 없던 시장이니 명확하게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지만,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시장 급락의 이유를 5가지로 정리했다.
①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모든 시장의 순리다. 급등 뒤에는 급락이 따른다. 가상화폐가 최근 올라도 너무 올랐다. 비트코인이 최근 한 달 새 25% 떨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연초와 비교해선 두 배 넘게 올랐다. 연초 1비트코인당 1000달러에도 못 미쳤다. 2015년에는 연중 내내 200달러 선에 머물렀고, 2016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400달러 벽을 넘지 못했다. 미국 다우존스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하지만 최근 5년간 두 배도 못 올랐다. 같은 기간 비트코인은 335배가량 급등했다.
비트코인보다 이더리움이 더 떨어진 건 더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이더리움은 연초 10달러에도 못 미쳤다. 8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최근 고점 대비 반토막이 났어도 올 들어서만 20배 넘게 오른 셈이다.
가격이 급락하니 비관론이 득세한다. 주로 주식ㆍ상품 등 기존 자본시장에서 활약하던 인물들이 목소리를 낸다. 5조 달러(약 5735조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수석 투자전략가가 가상화폐 버블을 경고했다.
1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올 하반기 전망 세미나에서 리처드 턴닐 수석투자전략가는 “블록체인을 관찰하고 (가상화폐) 차트를 보고 있는데 꽤 무섭게 보인다”며 “이전에 봤던 것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 말 닷컴 붐이 일어나던 때와 같은 시장 버블의 특성에 대해 설명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에서 기술적 분석을 담당하는 셰파 자파리 수석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가상화폐 급락은 거대 기술주 하락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며 “거대 기술주에 거품이 끼었듯 가상화폐 가치에도 거품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상화폐의 장기 전망에 대해서는 여전히 낙관론이 팽배하다. 셰파 자파리 수석 애널리스트가 고객들에게 보낸 메모 말미에는 “비트코인 가격은 파도와 같은 흐름을 보이는데 5번째 파도에 올라타면 최소 3212달러로 오를 것으로 보이며 3915달러까지 오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며 “(다만)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기관인 스탠드포인트리서치의 창립자 겸 애닐리스트 로니 모아스는 지난 5일 고객에게 보낸 노트에서 비트코인 가격이 내년에 5000달러까지 상승하고 10년 뒤엔 2만5000~5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유통되는 비트코인은 2100만 개뿐”이라며 “이 가상통화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어 가격도 자연적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9이닝 경기 중 2회일 뿐”이라며 장기적으로는 비트코인 가격이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비트코인 가격에 거품이 끼었다고 보는 마크 쿠반 역시 가상화폐 자체에 대해서는 낙관하는 모양세다. 경제전문 방송 CN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새로운 코인발행(ICO, initial coin offering, 주식시장의 기업 공개(IPO)와 유사)에 참여할 뜻을 밝혔다.
②‘맏형’ 비트코인이 쪼개진다.
시장의 열기가 빠르게 식으려면 ‘너무 올랐다’는 참여자들의 평가만으로는 부족하다. 급랭시킬 냉매가 필요하다. 가상화폐 시장의 냉매는 비트코인 분할 이슈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가상화폐다. 블록체인은 모든 정보를 데이터센터 등 중앙서버에 보관하는 인터넷과는 달리 거래기록(블록)이 생성되는 순간 모든 참여자가 이를 나눠서 보관하는 구조다.
모든 블록은 연결(체인)된다. 따라서 해커가 연결(체인)된 중간거래를 바꿔치기 하려면 네크워크 참여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해당 블럭을 동시에 바꿔야 한다. 인터넷의 경우 중앙서버만 공격하면 해킹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다르다. 블록체인은 그래서 해킹의 위협에서 자유롭고, 이에 기반한 비트코인은 위ㆍ변조가 어렵다.
비트코인은 10분마다 1메가바이트(MB) 용량의 블록이 생성된다. 개발자들이 설계 당시 해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한계를 설정했다. 1초당 평균 7개의 거래 내역을 처리할 수 있다. 비자카드가 초당 5만6000개의 거래 내역을 처리하는 것과 비교하면 성능이 떨어진다. 게다가 최근 이용자가 급증했는데 하루 20만여건의 송금도 처리하지 못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블록 용량을 늘려야 한다. 세그윗(SegWit, Segregated Witness)이다. 기존 처리용량 1MB를 2MB로 늘리는 작업이다. 간단히 말하면, 거래 기록에서 서명(witness)을 분리(segregated)해 그 용량만큼 거래 내역을 더 포함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컴퓨터로 치자면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세그윗은 블록(거래 참여자)의 95%가 찬성하면 실행된다. 개발자나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이들은 대체로 세그윗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다. 문제는 수백만 달러를 들여 ‘서버 농장’을 운영하는 중국 채굴꾼이다. 워낙 다량을 채굴해 보유하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다.
세그윗을 하게 되면 채굴 프로그램 역시 버전을 업그레이드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든다. 게다가 지난 3월 중국 채굴꾼이 세그윗을 극렬 반대하면서 이들의 ‘비밀’이 폭로됐다. 이들은 몰래 채굴량을 늘려주는 일종의 편법 기술을 사용해 왔다.
편법으로 얼마나 더 많은 채굴을 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그윗을 하게되면 이들은 더 이상 편법을 쓸 수 없게 된다. 곧 이들에게 ‘세그윗=수익성 하락’인 셈이다.
그러나 비트코인을 이대로 둬서는 가상화폐의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에 개발자들은 다음달 1일 세그윗 UASF(user-activated soft fork)를 시행하기로 했다. UASF는 블록의 95%가 찬성하지 않아도 정해진 날짜에 세그윗이 강제로 실행된다는 의미다.
세그윗이 된다고 해서 비트코인이 바로 둘로 쪼개지는 것은 아니다. 채굴자들이 새로운 버전의 비트코인을 모두 수용하면 올드 비트코인이 뉴 비트코인으로 바뀌는 식으로 정리된다. 그런데 채굴자들이 올드 비트코인에 대한 채굴 수익성을 포기할 리 없다. 이들이 뉴 비트코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비트코인은 둘로 쪼개진다.
이렇게 쪼개진 두 종류의 화폐를 재평가하는 과정에서 비트코인 시장 전체가 충격에 휩싸일 수 있다. 앞서 3월 비트코인 분할 이슈가 불거졌을 때에도 비트코인 가격은 10일 만에 25% 급락했다.
8월 1일 세그윗 실행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둘로 쪼개지면서 3월과 같은 폭락이 올 것으로 전망하는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또 일단 혼란기는 피하고 시장을 확인하고 들어가자는 이들도 비트코인을 팔고 있다. 시장에 물량이 풀리니 가격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가상화폐의 ‘맏형’ 격인 비트코인 값이 떨어지니 가상화폐 시장 전체에 대한 투자 심리도 얼어붙었다. 이더리움 등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다른 가상화폐) 시장이 커지긴 했지만, 아직도 전체 가상화폐 시장에서 비트코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육박한다.
(나머지 3가지 이유는 '하'편에 계속)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7.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