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비선 실세의 '품격'

해암도 2016. 10. 29. 15:12

진지한 라디오 아침 시사 인터뷰에 '호스트'가 나올 줄 몰랐다.   

한국에서 호스트란 여성들이 손님으로 가는 호스트바(일명 호빠)의 남자 접대부를 말한다. 그는 최순실씨와 함께 대한민국 국정(國政)을 주물렀다는 고모씨가 동료 호스트였다고 주장했다. "최씨와 고씨가 호스트바에서 얽힌 듯하다"며 그것을 '공사쳤다'고 표현했다. '여성 고객을 꼬드겨 돈을 챙긴다'는 그 동네 은어라고 한다. 이게 정말 난세인 모양이다.

▶엊그제 신문엔 서울 강남 목욕탕의 세신사(洗身士) 인터뷰도 실렸다. 최씨와 절친한 여성들 모임으로 의심받는 '팔선녀'의 아지트라는 소문이다. 팔선녀는 무속에서 받드는 신의 이름이다. 인터뷰를 요약하면 최씨나 딸이나 안하무인 인간형이었다. 딸은 여덟 살 때 세신사 뺨까지 때렸다고 한다. 자식을 가르치는 교사와 지도교수에게 "이런 뭐 같은 게 다 있냐"고 윽박질러 바꿔버렸다는 사람이니 세신사는 뭐로 보였을까. 이렇게 자란 아이는 "돈도 실력"이라고 외쳤다. 

[만물상] 비선 실세의 '품격'
▶어느 신문엔 조폭 말투도 등장했다. 최씨 등과 얽힌 공공기관장이 광고회사 대표에게 회사를 넘기라고 하면서 "당신을 묻어버린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했다는 것이다. "당신을 안 되게 하는 방법이 108가지가 넘는다"고도 했다. '백팔'이란 종교적 숫자가 이런 데 쓰일 줄이야. 5공 때 수산시장 운영권을 힘으로 빼앗은 대통령 형도 108가지는 고안하지 못했을 것이다. 녹취록에 따르면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능한 일이냐"는 애처로운 항변에 그의 대답은 이랬다. "알려고 하지 말라." 멀쩡한 기업에 이 정도였다면 약점 잡힌 기업엔 오죽했을까.

▶한때 그들과 어울린 미르재단 전 이사장은 "(이들과) 대화 수준이 맞지 않았다"고 했다. 최씨와 그 주변 사람들에 대해선 "아주 평범한, 전문성이 없는 일반인 수준이었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이 대통령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며 한탄했다. 아침 방송에 나온 호스트도 "한낱 아녀자와, 그 아녀자와 얽힌 호스트가 국정에 관여했다는 게 어이없다"고 탄식했다. 일반인? 한낱 아녀자? 어떤 일반인과 아녀자가 '호빠'에서 '공사치고' , 세신사를 종처럼 부리고, 조폭처럼 회사를 빼앗으려 하고, 밀실에서 국가 예산을 주무르나.

▶청와대 비서실장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며 "대통령도 피해자"라고 했다. 일전의 '봉건시대' 발언만큼 진부한 비유다. 대통령도 사람을 잘못 볼 수 있다. 하지만 최씨는 40년 지기로 형제보다 가까웠다. 누구보다 최씨를 잘 알았을 것이다. 그 천격(賤格)까지.

조선일보    선우정 논설위원    입력 : 2016.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