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대학생 3인의 영남 실비식당 발굴기

해암도 2016. 6. 14. 10:15

아직 있었네! 저렴하고 정감 넘치는 서민식당         

아르바이트 노임을 포함한 대학생의 한 달 평균 수입은 약 47만원. 1일간 주머니에 머무는 금액은 단돈 1만5,000원 남짓이다. 아침은 대충 넘기지만 점심은 대부분 외식을 한다. 그런데 점심 식사비용으로 가용액의 절반을 투자할 손 큰 대학생이 얼마나 되랴. 정체된 수입에 치솟은 물가는 악재다. 밥 한 공기에 술 한 잔 기울이기에도 빡빡해졌다. 대학생이 식당에서 가성비를 우선시하는 이유다. 외식산업 연구에 열정을 품은 20대 대학생 3인이 영남으로 떠났다.

흥덕반점 짬뽕

‘곱빼기’가 웬말? 푸짐함에 시골 인심까지<흥덕반점>
경북 문경시의 <흥덕반점>은 엄청난 양의 짬뽕을 제공한다. 별도로 ‘곱빼기’가 없다. 스테인리스 대접에 뜨끈하게 나오는 짬뽕(4,500원)은 해물짬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해산물이 푸짐하다. 특유의 진한 국물 맛은 해물육수의 시원한 맛보다 후추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투박한 맛에 가깝다. 푸짐하게 올린 홍합, 게, 오징어는 모두 국내산이며 시중 곱빼기와 견줄 수 있는 푸짐함은 20대 중반 대학생에게도 버거울 정도다. 짜장면(3,500원) 양 또한 푸짐하다. 달지 않고 농도 옅은 소스에 고춧가루를 뿌려 먹으면 옛날짜장 맛을 연상시킨다. 반찬으로 제공한 고추장아찌는 단무지 못지않게 짜장면과 잘 어울린다. 그릇을 비워낼 즈음 비벼먹을 밥을 더 주는 주인장의 인심에서 서울에선 느끼지 못했던 따뜻함을 느꼈다. 계산하고 나오는데 낯선 대학생에게 장아찌까지 싸주겠다는 걸 겨우 말렸다. 
<흥덕반점> 경북 문경시 흥덕동 317-8, 054-555-5127


뉴욕제과 빵들

찹쌀떡의 A to Z, 수제(手製)를 말하다 <뉴욕제과>
경운기 소리 요란한 시골인 문경시 산북면 어귀에 다소 생뚱맞은 제과점이 하나 있다. 이름도 거창한 뉴욕제과다. 20대 취향에 맞는 세련되고 트렌디한 도심 베이커리와 달리, <뉴욕제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 듯했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찹쌀떡(모찌, 500원)이다. 이 집 찹쌀떡의 공정에는 진한 땀방울이 묻어있다. 찹쌀 도정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떡과 팥소까지 수제로 당일에 만든다. 식재료는 모두 국내산이다. 예약하고 찾아가 손에 쥔 찹쌀떡의 뽀얀 자태에 때 묻지 않은 찹쌀떡 장인의 순수함이 있었다. 잉크 한 방울 없는 하얀 도화지를 오려 만든 포장박스가 투박함을 더한다. 그날 만든 찹쌀떡은 아기피부처럼 촉촉하고 보드랍다. 속에 감춘 쫄깃함으로 치아를 탄력 있게 밀어내는 반전 매력도 있다. 직접 쑨 통팥 앙금의 식감과 향이 짙다. 과하지 않게 절제된 단맛 덕에 물리지 않고 담백하다. 하루 세 번 만들지만 한정 판매량에 도달하면 맛볼 수 없다. 작은 시골 제과점이지만 예약 전화는 필수다.
<뉴욕제과> 경북 문경시 산북면 대상리 78-1, 054-552-7538


석기시대 오향장육

1만원에 마늘 향 풍부한 오향장육을 푸짐하게 <석기시대>
해가 저물면 고요해지는 부산 동광동 중앙경찰서 뒷골목의 <석기시대>는 제법 늦은 시각까지 시끌시끌하다. 오향장육과 만두가 이 집의 대표메뉴다. 오향장육(1만원)은 주문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곧바로 상 위로 올라온다. 그 신속함이 놀랍다. 기다림을 싫어하는 한국인 성향에 알맞다. 오향장육 접시 위에는 썬 오이와 얇게 저민 돼지고기를 담아냈다. 1만원이라는 가격에 푸짐함이 느껴졌다. 마늘 듬뿍 넣은 소스도 흥건하게 뿌려냈다. 그냥 먹어도 좋지만, 오이와 장육 한 젓가락 들어 소스 앞 접시에 한 번 더 찍어 담갔다. 새콤달콤함과 함께 입 안 가득 마늘 향이 번진다. 돼지 사태살을 사용한 장육은 쫄깃한 식감도 충분했다. 직접 빚은 만두는 육즙과 육향이 풍부하지는 않았지만 심심한 듯 담백했다. 포들포들한 찐만두의 피도 괜찮지만 기름에 바삭하게 튀긴 군만두는 안주로도 제격이었다. 이 집은 방문자 평균 연령대가 높지 않다. 객단가 1만원에 배불리 먹을 수 있어 대학생의 가벼운 지갑에도 부담 없다. 어둑한 언덕배기 골목 내에 아지트 같은 곳이다.
<석기시대> 부산시 중구 동광동 5가 2-27, 051-465-0358


대학생 3인의 영남 실비식당 발굴기


송정집 외관과 만두


맛과 인테리어 등 외식의 네 박자 갖춰 <송정집>
파스텔톤의 외관은 산들바람과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자가제면 국수, 자가도정 밥’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궁금증을 자아냈다. 송정집이 특별한 이유는 외식의 네 박자를 갖추고 있기 때문인데 첫째는 맛이 있다. 손수 얇게 빚어낸 만두피에 토실토실 가득 찬 만두소가 어우러진 찐만두(4,000원)가 일품이다. 멸치육수를 베이스로 한 송정물국수(4,000원)는 건강한 맛으로 젊은 사람에게 인기가 많은 메뉴다. 둘째는 감각적인 외관이다. 여성이 선호할 파사드와 인테리어에 천장 꾸밈까지 신경 쓴 섬세함이 돋보였다. 셋째로는 가치다. 매일 아침 도정한 쌀로 밥을 짓고(자가도정) 직접 뽑은 면을(자가제면) 사용해 ‘웰빙’과 ‘웰메이드’란 가치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리얼리티를 놓치지 않았다. 방짜유기에 담겨 나오는 비빔밥도 6,500원으로 가격을 측정했다. 4,000원에서 시작해 6,500원이 넘지 않는 현실성이 손님들에게 묵시적 동의를 얻었다. 주말이면 점심, 저녁으로 가득 차는 이곳을 방문하기엔 평일이 더 좋지 않을까.
<송정집> 부산시 해운대구 송정동 442-1, 051-704-0577



중앙대구탕의 대구탕


남해 멸치 순창 된장으로 끓인 감칠맛, 멸치쌈밥 <중앙대구탕>
백산기념관 뒤 활짝 열려있는 문으로 발을 들여 놓으면 코로 한껏 느껴지는 비릿함이 먼저 반긴다. <중앙대구탕>이 본명이지만 이전하면서 더 크고 투박하게 내걸은 <멸치쌈밥집>이 이 집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대구탕을 밀어낸 별미 멸치쌈밥정식(6,000원)에는 튼실한 멸치로 가득하다. 가시가 무르다는 남해 멸치에 전북 순창 된장을 넣어 바글바글 끓여냈다. 된장이 멸치의 비릿함을 없애고 구수한 감칠맛만 도드라지게 해준다. 간간하지만 염도가 과하지 않아 그냥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다. 수저 끝으로 느껴지는 걸걸함은 얼핏 강된장을 연상케도 한다. 쌈 채소에 다시마 한 장 얹고 큼직한 멸치 담뿍 올려 싸먹는 맛은 20대 청년들의 입맛조차 단번에 사로잡았다. 섭섭지 않게 담아낸 흰 쌀밥에 쓱싹쓱싹 비벼 먹어도 그만이다. 뚝배기 옆에는 멸치젓갈, 갓김치를 포함한 9가지 찬이 있지만 뒷전이다. 부담 없는 가격에 1인 정식 주문도 가능하니 배낭 들춰 메고 혼자 찾아가도 문제없다.
<중앙대구탕> 부산시 중구 백산길 10, 051-245-8330


원조일미기사식당의 소고기 국밥


가격 싸도 내용 알찬 한우 소고기국밥 <원조일미기사식당>
택시기사가 추천해주는 식당이라면 안심이 된다. 부산 부평동에 위치한 <원조일미기사식당>이야기다. 24시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손님들로 이곳은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특히 식당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택시의 행렬이 재밌다. 셀프시스템으로 제공하는 반찬의 깔끔함, 금세 차려내는 음식과 메뉴판을 보면 왜 손님이 끊이지 않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우가 들어간 소고기국밥(3,500원)은 어디서도 쉽게 만나지 못할 가격이다. 저렴하다고 해서 맛과 양이 부족하지 않다. 맑고 개운한 국물 맛이 인상적인데다 아삭한 콩나물이 듬뿍 담겨있어 피로회복과 숙취해소에 제격이다. 전날 쌓인 피로 탓인지 장정 셋이 국물까지 그릇을 싹 비웠다. 잠시 후 포만감에 행복감마저 들었다. 신속하게 오가는 직원 사이에 진득이 국밥을 먹고 있는 손님들에게서 장터 국밥 한 그릇으로 정을 나눴던 옛 어른들 모습이 떠올랐다.
<원조일미기사식당> 부산시 중구 부평동2가 64-1, 051-253-4440

기고= 글·사진 정동우(바비정), 이한주(파요리), 신성환(완두콩)    조선일보   입력 : 2014.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