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맛난 집 맛난 얘기] 호천식당

해암도 2016. 5. 23. 05:43

해운대에 밀어닥친 '메밀 70% 막국수' 쓰나미

건강 트렌드에 탄력 받은 막국수의 질주가 막힘 없다. 밀면의 고장 부산에서도 요즘 막국수 간판이 가끔 눈에 띈다.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난 막국수가 어느새 부산 앞바다까지 시나브로 세력을 확장한 모양새다. 은근한 막국수의 힘이 새삼 놀랍다. 부산 해운대에 자리한 <호천식당>은 부산에서는 드물게 수준급 막국수를 맛볼 수 있다.

같은 듯 다른 밀면과 막국수

막국수 맛을 본 적이 없는 어느 부산 친구가 막국수나 밀면이나 그게 그거 아니냐고 물었다. 밀면과 막국수의 차이는 크다. 밀가루로 만드는 밀면과 달리 막국수의 주재료는 메밀이다. 밀면의 조상은 함경도 감자농마국수다. 한국전쟁, 함경도 피난민, 미국 원조 밀가루의 조합으로 태어났다. 전쟁으로 부산에 피난 온 함경도 사람들이 감자녹말 대신 밀가루로 만든 함경도식 국수가 밀면이다. 막국수는 강원도 산간지역의 메밀국수에서 비롯했다. 밀면과 막국수는 귀족취향이 아닌 면식이란 점에선 같지만 고향도 재료도 지나온 길도 서로 다르다.

이름 앞에 붙은 ‘막’이라는 글자가 막국수의 재료, 조리법, 향유계층을 짐작하게 해준다. 과거, 쌀이나 보리 밀에 비하면 턱없이 지위가 낮았던 메밀. 막국수는 그 메밀조차 거친 가루로 빻아 반대기를 지어 국수로 만들어 먹었던 민초들의 음식이었다.

이제 메밀은 처지가 달라졌다. 가뭄이 들어 모내기가 불가능할 때, 급히 파종해 거둬먹던 구황작물이 더는 아니다. 현대인이 결핍한 각종 성분이 든 건강 식재료다. 귀한 몸이니 가격도 비싸다. 조선시대에는 양반들 제사 때나 조금씩 썼던 밀가루와 그 위상이 180도 바뀌었다. 메밀로 풀칠했던 백성들에게 밀가루는 언감생심 금가루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밀가루는 저렴한 식재료가 됐고, 메밀은 그 함량이 곧 메밀면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 시대가 됐다.

	막국수
막국수
부산서 맛보기 힘든 70% 메밀의 막국수

<호천식당> 막국수 면에는 메밀이 70% 가량 들어간다. 서울을 비롯한 웬만한 막국수 집보다 메밀 함량이 높다. 우리나라 사람은 쫄깃쫄깃한 식감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지 쫄깃함을 내세운 막국수 집도 더러 보인다. 그러나 메밀 함량이 높은 면일수록 쫄깃하지 않다. 메밀에는 글루텐 성분이 없어 찰기가 적다. 그래서 입에 넣으면 뚝뚝 끓어진다. 막국수는 본래 그런 맛에 먹는다.

직접 자가제면한 이 집 막국수는 메밀 향이 은은하면서 면발이 쉬 끊어진다. 그러면서도 쫄깃하기보다는 쫀득한 식감이 살짝 돈다. 막국수의 기본에 충실한 편이다. 비빔장과 함께 잘 익어 맛이 밴 슴슴한 백김치, 무김치, 열무김치를 올렸다. 맨 위에 김 가루와 참깨를 뿌리고 달걀 반쪽도 얌전히 올라앉았다. 

한참 먹어봐도 막국수 간이 세지 않다. 국물은 닭 육수 베이스에 동치미를 섞은 것 같다. 조미육수를 많이 쓰는 밀면 맛에 익숙한 사람은 맛이 싱겁게 느껴질 수 있겠다. 단품 메뉴인 메밀 막국수(7000원)와 숯불 불고기 150g과 함께 제공하는 숯불 불고기+막국수(9000원)가 있다.

해장국 스타일의 ‘소내장탕’과 캐주얼 안주 ‘내장무침’

메밀 막국수와 함께 찰떡궁합을 이루는 숯불 불고기(200g 9000원)도 제대로 구워 숯향이 은은하다. 넉넉한 파무침과 함께 먹는 숯불 불고기 맛은 언제 먹어도 중독성이 강하다. 

막국수 집이지만 식사 메뉴로 소내장탕(7000원)이 있다. 일행 가운데 면식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에겐 대안 메뉴가 되어준다. 푸짐하게 들어간 내장 건더기와 빨간 국물이 먹음직스럽다. 해장국 스타일의 탕반 음식이다. 내장 특유의 잡내가 없는데다가 고명으로 올린 깻잎 향이 압권이다. 얼큰한 국물과 쫄깃한 내장은 소주 안주로도 그만이다.

	숯불 불고기와 내장무침
숯불 불고기와 내장무침
본격적인 안주 메뉴로 내장무침(1만3000원)도 있다. 무거운 기존의 내장 요리에 비해 캐주얼한 음식으로 풀어냈다. 조미료 없이 간장, 식초, 설탕 등 간단한 양념 몇 가지로만 조미했다. 새콤달콤하면서 뒷맛이 담백 깔끔하다. 얼핏 냉채족발을 먹고 난 뒷맛과 비슷하다. 술안주로 먹을 땐 고추와 파채를 집어 함께 먹어야 칼칼한 제 맛이 난다. 저녁에 젊은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호천식당>의 주메뉴는 역시 막국수다. 밀면의 바다, 부산에 막국수의 섬이 생긴 셈이다. 굳이 강원도나 수도권까지 가지 않아도 괜찮은 막국수 맛을 볼 수 있게 됐다. 부산의 막국수 마니아에게 올 여름은 행복한 여름이 될 것 같다.


<호천식당> 부산 해운대구 중동1로 25-2, 051-741-3258

글 사진 이정훈(월간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      
조선    입력 : 2016.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