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노벨상 왕국’으로 만든 이스라엘의 교육, 도대체 어떻길래?

해암도 2015. 9. 21. 06:32


▲ 예루살렘의 ‘핸드 인 핸드’ 학교 중2 교실. photo 최준석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을 따라 이스라엘로 이민을 갔다. ‘세계에세 제일 똑똑한 민족’ ‘세계를 쥐락펴락한다는 유대인’…. 어릴 적부터 유대인에 대한 좋은 말들을 들어서인지 많은 기대감과 긴장감을 갖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로 떠났다.
 
히브리어(이스라엘어) 단어 몇 개 아는 것이 전부였지만 부모님은 나를 이스라엘 현지 학교로 용감히 보내주셨다. 교실에 들어가자 당시 담임선생님이 나를 소개해줬고 어떤 여자아이 옆에 앉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본 첫 수업 광경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엄숙했던 한국의 초등학교 교실 분위기와 정반대로 내 눈앞에서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싸우고 있었다. 버릇없는 학생들, 그리고 그에 맞서 호통치는 선생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세계에서 제일 똑똑한 유대인들’이라는 말이 와닿지 않았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버릇없고 개념 없는 유대인들로 보였다. 그래서 질이 좋지 않은 학교에 나를 보낸 부모님이 무척 원망스러웠다.
   
   더욱 충격적인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난장판’ 수업들이 초·중·고·대학교 심지어 이스라엘에서의 직장생활까지 계속 이어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난장판 수업들이야말로 유대인 교육의 중심이었다. 난장판 수업이 유대인 교육의 일부라는 것을 히브리어를 이해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히브리어를 이해하고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내가 처음 학교에서 본 난장판 수업은 선생님과 제자들이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막장토론’을 했던 것이고 이런 막장토론 문화는 심지어 대학교까지 이어졌다.
 
대학교는 강의 진도를 진행하지 못할 정도로 교수와 학생들이 토론으로 수업을 이어갔다. 이게 이스라엘에서 진행되는 유대인 교육, 그리고 유대인 토론 방식이었던 것이다.
   
   최근 이스라엘 출장 중에 은사인 로버트 아우만(Robert Aumann·200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히브리대학 교수, 이스라엘 최초 여성 노벨상 수상자(2009년)인 아다 요나스(Ada Yonath) 와이즈만 과학대 교수와 긴 대화를 나눴다. 그분들과 작은 나라인 이스라엘이 어떻게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는지, 그 비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요나스 교수는 노벨상 왕국의 가장 큰 비밀은 유대인의 탈무드 교육에 있다고 얘기했다. 그리고는 ‘유대인의 과학에 대한 깊이’라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전 세계를 배회하면서 학문에서 탈출구를 찾았다고 한다. 유대인이 과학에 대해 깊게 파고들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녀교육이 노벨상 왕국을 만든 큰 요소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내가 이스라엘에 살면서 보아온 유대인의 자녀교육은 극성스럽다. 교육열이라면 세계 제일가는 한국의 부모도 놀랄 정도이다. 그 결과 세계 인구의 0.25%밖에 안 되는 유대인이 노벨상 수상자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 800만명의 작은 국가가 노벨상 수상자를 13명이나 배출했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교수의 절반 이상이 유대인이며 구글·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총수를 포함하여 금융기관과 언론사 상당수가 유대인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내가 만난 교수들 말로는 유대인이 자녀교육에 이토록 극성인 이유는 유대인의 역사 때문이라고 한다. 1948년 이스라엘이란 국가를 세울 때까지 유대인은 국가 없이 전 세계를 배회하는 민족이었다.
 
이들이 2000년 만에 다시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첫째 요소가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유대교 신앙이었다. 유대교는 유대인이 핍박받는 원인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핍박을 이겨내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고난의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서 유대인이 매달렸던 것은 신앙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신앙 못지않게 자녀교육에 매달렸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탈무드 자녀교육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나를 가르쳤던 아우만 교수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는데 그 역시 어릴 적부터 탈무드 교육을 받았다. ‘탈무드 초등학교’까지 다니면서 깊은 탈무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오늘날에도 논쟁을 통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유대교의 구약성경과 탈무드 자체가 자녀교육을 중시하고 있다. 나 역시 어릴 적에 탈무드 교육을 기반으로 공부를 했다. 어릴 적부터 유대인 선생님들은 항상 ‘왜?’라고 물으며 나에게 학문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나는 서슴없이 궁금증에 대한 나만의 철학을 내세웠다. 이런 교육이 수천 년 전부터 유대인이 만들어온 탈무드 교육이다. 탈무드 교육은 랍비(선생)와 제자가 토론에서 지혜를 얻는다. 즉 랍비는 제자에게 항상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 반박할 수 있게 하고, 궁금증을 유발시키며, 제자는 반박과 여러 논리를 펼친다.
 
 그러면서 랍비는 제자가 충분히 원리와 논점에 다가갈 수 있도록 방향을 인도해 준다. 즉 학문은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으로 생각하게 하여 스스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유대인의 생각이다.
   
   이 탈무드 교육은 학교뿐만 아니라 창업국가가 된 이스라엘 내 기업문화에도 깊숙이 들어가 있다. 내가 다니는 요즈마그룹 역시 회장이 진행하는 임원 투자결정회의에서도 이런 문화가 적용된다. 회의실에 들어간 순간 모든 계급장을 뗀다. 회장이든 사장이든 혹은 발표하는 말단사원이든 모든 계급이 같아진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기획에 대해 반박할 수 있고 심지어 그룹 회장의 주장에 대해서 사원들이 반대의견을 제시하면서 자신들의 논리를 펴는 경우도 간혹 보게 된다. 한국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광경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회사 수장 역시 이런 문화에 기분 나빠하지 않는 이유는 이런 수평적 토론 덕분에 회사들이 창의적으로 성공했고 글로벌 경쟁시대에서는 무조건 창의적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오히려 임원들은 더 뜨거운 토론이 될 수 있도록 부추긴다.
   
   이런 교육문화, 기업문화가 오늘날 이스라엘을 세계적인 창업국가로 만들었고 특히 이스라엘을 노벨상 왕국으로 만들었다. 유대인에게는 자녀교육이야말로 그들만의 유일한 ‘창조경제’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글 | 이원재 요즈마그룹 한국법인장  조선 2015,09,21

이원재
   
   한국·이스라엘 상공회의소 부회장,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사업화 자문위원, 전 ‘Israel·Korea Chamber of Commerce’ 경제자문관, 이스라엘 12대 총리 아시아경제자문관. 저서 ‘창조경제 이스라엘에서 배운다’(2013), ‘시작부터 글로벌’(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