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커버스토리] 나 키우기 그렇게 힘들어?

해암도 2014. 8. 28. 09:48

엄마에게 원수, 외계인, 애인 같은 아들
겉으론 "아들이 너무해"
말 안 듣고 눈치도 없어 사춘기 되면 반항하며 엄마 눈물 쏙 빼
속으론 "아들이 너무 예뻐"
시대 달라져도 아들·딸에 갖는 기대치 달라 여자에 치인다 생각에 더 애틋하게 챙겨



정말 키우기 힘든지 엄마 25명에게 물었더니
"아들, 사람 맞나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천방지축인 아들은 엄마를 미치게 한다. 아들은 원래 그렇게 태어났는데, 엄마는 아들을 너무 모른단다. 딸은 어떨까.

어릴 적엔 매일매일 내 아이를 빛나게 하는 헤어스타일로 꾸며 주고, 예쁘고 활동하기 편한 옷을 입히며 서로 소꿉놀이하듯 지낸다. 딸이 훌쩍 크면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면서. 한 인터넷 서점 검색창에 ‘아들’이나 ‘남자아이’, 혹은 ‘딸’이나 ‘여자아이’를 검색한 결과만 보면 현실이 이렇다. <하단 표 참고>

이런 관점이 옳으냐하는 문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까지 모두 각자의 판단에 달렸지만, 분명한 건 아들 키우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거다.

정말 그럴까. 아니, 왜 그런 걸까. 남녀 쌍둥이부터 연년생 형제, 또 유아부터 대학생까지, 성향과 연령대가 각기 다른 여러 아들을 둔 엄마 25명에게 직접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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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아들은 …

원수 아들 둔 엄마, 특히 형제나 남자 쌍둥이라도 뒀다면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전사(戰士)로 거듭난다. 목소리는 커지고 행동은 거칠어진다. 아들이 엄마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아들이 엄마 말을 진짜로 못 듣기 때문이다. 초5·초4 연년생 형제를 둔 조윤희(44·서초동)씨는 “말을 안 듣는 게 제일 힘들다”고 말한다. “단순히 시킨 걸 안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물론 이건 기본이다) 진짜로 내가 하는 말을 못 듣는 것 같다. 심지어 혼날 때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그냥 흘려버린다.”

조씨 혼자의 생각이 아니다. 초1과 2세 형제를 둔 박모(35·분당)씨는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데엔 일체 신경을 안 쓴다”며 “만화책 볼 때 말을 걸면 정말 안 들리는 건지, 아니면 귀찮아서 대답을 안 하는 건지, 바로 앞에 가서 눈을 마주 보고 ‘지금 너한테 말하는 거야’라고 정확히 콕 집어 말하지 않으면 몇 번을 말해도 대꾸를 안 한다”고 했다.

더 슬픈 건 엄마가 무슨 말 하는지 다 들었다 해도 못 들은 거나 별 차이가 없다는 점. 초2 이란성 쌍둥이 남매를 둔 김모(43·방배동)씨는 “똑같이 ‘네가 이러면 엄마가 힘들다’ 고 말해도 딸과 아들의 반응이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예컨대 딸은 바로 수긍하고 행동을 고치는데, 아들은 “내가 더 힘들어”라면서 하던 미운 짓을 계속 한단다. 2남1녀(초5 아들·초2 딸·3세 아들)를 둔 이모(39·홍재동)씨 역시 “아들은 모든 상황마다 말로 일일이 설명하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한다”고 답답해했다. “딸은 엄마 표정만 봐도 엄마가 화났으니 조심해야겠다고 상황을 딱 파악하는데, 아들은 한마디로 눈치가 없다”는 것이다.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대참사 수준의 성적표를 받아 왔을 때도 아들은 딸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초4 딸과 초2 아들을 둔 배수향(39·성수동)씨는 “딸은 성적을 조금만 나쁘게 받아 와도 내 눈치를 본다”며 “그런데 아들은 받아쓰기 50점을 받아 오고서도 ‘나보다 못한 애가 2명이나 더 있어’라거나 ‘20점 받은 애도 있어’라는 식으로 당당하니 답답하다”고 했다. 이럴 땐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욕심이 없는 건지 헷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누가 더 높은 데서 뛰어내리는지 내기하다 양 팔에 깁스를 하거나 친구한테 없는 레어템(갖기 어려운 희귀한 것)을 갖고야 말겠다면서 캐릭터 카드를 계속 사 모으는 식의 엉뚱한 경쟁을 하는 걸 보면 눈치 없다는 쪽에 무게가 더 실린다.

눈치가 없다는 건 결국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이럴 땐 분노의 화살이 같은 남자인 남편을 향하기도 한다. 6세·3세 형제를 둔 김모(41·판교)씨는 “눈치 없는 건 아들이나 남편이나 똑같다”며 “그래서 남편을 ‘큰아들’ 키우기에 빗대나보다”고 했다.

말보다는 뭐든지 몸으로 해결하려는 아들들, 그렇다면 무슨 일이든 잽싸게 몸을 움직여 할 일을 마칠까. 정반대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 못 하고 아무 이유 없이 어디서나 항상 무조건 뛰면서도 그런데 정작 해야할 일을 맞닥뜨렸을 때는 그렇게 느릴 수 없다.

조윤희씨는 “학교 갈 시간이 5분밖에 안 남았는데 잠옷 입고 놀고 있는 걸 보면 기가 막힌다”며 “빨리 준비 좀 하라고 소리치면 ‘5분이나 남았는데 왜 화를 내냐’고 하니 속이 터진다”고 했다. 고1 딸과 초5 아들을 둔 이은주(48·도곡동)씨는 “아들은 뭘 해도 우당탕”이라며 “뭘 ‘하지 마라’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이미 와장창 깨먹고,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뛰어나가버린다”고 말했다. 고2 딸과 초6 아들을 둔 윤모(42·분당)씨도 동의한다. 그는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차분히 오래 앉아있을 수 있어야 하는데 아들은 책상 앞에 억지로 앉혀놔도 조금만 지나면 ‘다 했다’면서 휙 일어서 천방지축 뛰어다닌다”고 했다. 이젠 대학생이 된 아들 하나를 둔 강모(49·일산)씨는 “애 어릴 때 엉덩이 안 떼고 한 번에 밥을 얌전히 다 먹은 적이 없다”며 “밥 한 숟가락 입에 넣고는 온 집안을 뛰어다니다가 다시 식탁에 오곤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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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아들은 …

외계인 남자가 여자보다 열등해서 그런 것이려니 하고 넘기려다가도 아들 키우는 엄마들이 황당한 순간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서열 따지는 모습을 볼 때다.

조윤희씨는 “12살짜리 형이 11살짜리 동생한테 ‘나이 어린 게 왜 이렇게 버릇이 없냐’면서 싸우길래 ‘난 마흔넷인데, 너희들은 왜 내 말 안듣냐’고 했다”며 어이없어 했다.

꽤 큰 아들이 집에서 막 벗고 돌아다닐 때도 엄마는 난감하다. 배수향씨는 “딸만 셋을 둬서인지 우리 아버지는 집안에서도 항상 옷차림에 조심하셨다”며 “그래서인지 더욱 더 아들이 막 벗고 돌아다니는 걸 보는 게 편치 않고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러다 더 커서 사춘기가 오면 크게 두 가지 때문에 엄마는 더 힘들어한다. 하나가 여자친구(여친) 문제다.

이은주씨는 “공부하라고 해도 들은 척도 안 하던 초5짜리 아들이 어느 날 방에서 조용히 공부 하길래 웬일인가 했더니 숙제 해오라는 여친 말 듣고 그러는 거더라”며 “화가 나서 머리 쥐어박고 나왔다”고 했다.

이건 약과다. 이젠 대학생이 된 아들을 둔 강모씨는 “고1 때 여친 생겼다며 아무 때나 히죽거리더니 성적이 순식간에 곤두박질 쳤다”며 “여자애들은 남친 생겨도 성적 유지하는데 남자애들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는 못하는 모양”이라고 했다. 잘 사귀면 그래도 다행이다. 강씨는 “한번은 여친한테 차이고는 몇날 며칠을 집에 틀어박혀 짐승처럼 우는데 그때는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회상했다.

사춘기의 또 다른 위험요소는 반항이다. 딸과 달리 엄마가 위협을 느낄 정도다. 중3 아들·초6 딸 둔 김모(49·우이동)씨는 “조금만 잔소리를 해도 반항한다”며 “엄마쯤은 힘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눈빛이 무섭다”고 했다. 그는 “그걸 보면 엄마는 정말 상처받는데 정작 아들은 자기가 뭔 짓을 했는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이런 여러 당혹감은 남녀라는 성별 차이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자녀양육에 적극적인 친구 같은 아빠가 많이 등장했다고는 하지만 양육 책임은 여전히 엄마 몫이다. 여자인 엄마가, 남자인 아들을 다뤄야 하다 보니 당혹스런 순간 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화성 남자 금성 여자’는 연애하고 결혼하는 남녀 사이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라, 모자(母子) 사이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셈이다.

그렇다 보니 아들을 이해하려는, 혹은 이해하라는 책이 쏟아진다. 국내에 번역된 책만 봐도 저자 국적이 영국(루신다 닐 『아들은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 미국(셰리 풀러 『아들은 엄마의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중국(창랑·위안샤오메이 『엄마는 아들을 너무 모른다』), 일본(오야노 메구미 『아들은 왜:상상초월 아들행동설명서) 등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다. 풍성한 아들 양육서에 비해 딸 키우기 책은 턱없이 적다. 『남자아이 여자아이』(레너드 삭스)나 『남자아이 여자아이 키우는 법이 다른 이유』(베라 비르켄빌)처럼 딸 양육법은 남자아이와 대비하려는 의도로 언급하는 정도로 그치는 게 대부분이다. 또 여자아이를 다룬 본격 양육서라고 해도 아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여자아이 자존감:외모와 몸매 스트레스 벗고 당차게 성장하는 비결』(로빈 실버만)이나 『여자아이 예쁘게 키우기』(하타노 미키)처럼 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잘 키울지를 막바로 얘기한다. 여자인 엄마에게 딸은 말 안통하는 외계인이 아니라 친근한 친구인 거다.

엄마에게 아들은 …

애인 “아들이라 힘든 거요. 그냥 전부 다~요. “ (분당 윤모씨)

“뭐가 제일 힘드냐니요. 어휴~. (한동안 침묵) “ (우이동 김모씨)

아들 둔 엄마들끼리 만나면 한참 넋두리를 한 뒤 “아들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진심이 아니다. 뭔가 못하고 부족해서 미운 게 아니라 여기엔 더 챙겨주고 싶은 애틋함이 담겨 있다. 또 애초에 아들과 딸에게 원하는 기대치가 다르기에 더 힘들다고 느끼기도 한다.

초5 아들과 중3 딸을 둔 조윤희(44·염창동)씨는 “여자애들은 약아서 혼자 다 알아서 하는데 남자애들은 어리숙해서 지 밥그릇도 잘 못챙긴다”며 “그러니 엄마 손이 더 많이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가하면 초1 아들과 3세 딸을 둔 최혜선(35·남양주)씨는 “아들은 나중에 자기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번듯한 사람이 되야 하니 딸보다 이런저런 목표를 더 높게 잡는다”고 했다. 초4 아들과 초6 딸을 둔 한승희(42·성수동)씨도 “과거 남자한테 요구하던 경제적 능력은 당연히 갖춰야 하는데 가사분담과 여자와 소통도 잘해야 하니 어쩔 땐 안쓰럽다”고 털어놨다.

엄마 없으면 안될 것 같고, 그래서 계속 더 챙겨주던 아들에게 어느날 여친이 생기면 애인이 변심한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는 엄마도 있다.

대학생 딸과 고1 아들을 둔 김모(47·대치동)씨는 “학교 학부모총회 끝나고 아들 태워 같이 오려고 문자까지 보냈는데 아들이 먼저 가버렸다”며 “여친이랑 먼저 나갔다는 얘기를 듣고 혼자 운전해서 오는데 살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아팠다”고 했다. 그는 “남편은 ‘아들이 애인도 아닌데 왜 그러느냐’지만 난 아들이 마치 내 아들이 아닌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고 덧붙였다.

겉으로는 원수니, 외계인이니 하며 흉을 봐도 아들을 향한 엄마의 속내는 상당히 다른 셈이다.

겉과 속 다른 엄마

이런 엄마 속마음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분석이 하나 있다. 올초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면에 실린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인 세스 스티븐스-다비도위츠(Seth Stephens-Davidowitz)가 쓴 ‘내 아들은 천재인가’라는 제목의 기고문이다. 미국 부모의 구글링(검색포털 구글을 통한 검색)을 분석했더니 21세기가 10년 이상 지난 지금도 아들과 딸에게 각각 기대하는 바가 완전히 다르더라는 내용이다. 예컨대 ‘내 두 살 짜리 아이는’으로 시작하는 검색문장은 ‘재능을 타고 났나’라는 질문으로 끝맺는 경우가 많았는데, 주어를 아들·딸로 각각 따로 썼을 때 빈도에 큰 차이가 났다. ‘내 아들이 재능 있나’라는 질문이 ‘내 딸이 재능 있나’보다 2.5배 많았던 거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아들을 주어로 했을 때는 지능이나 학업능력과 관련한 질문이 많았고, 딸에 대해서는 비만 등 외모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다. <위 그래픽 참고> 아들이 딸보다 특별히 명석함을 더 보이거나, 혹은 딸이 아들보다 특별히 더 뚱뚱해서 이런 질문을 한 게 아니다. 현실에서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영재학교에 11% 더 많이 가고, 과체중 비율은 남학생(33%)이 여학생(30%)보다 더 높다.

또 출산 전 아들·딸 선호도를 봤더니(※이런 내용의 검색은 주로 여성이 한다) 아들 선호도가 10% 가량 더 높았다. 지금까지 많은 설문을 통해 엄마는 딸을 선호한다는 결론을 짓곤 했는데 실제 검색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거다.

똑같이 남매를 둔 같은 학교 학부모인 김은경(39)·배수향·유혜연(37)·한승희씨는 한참 동안 아들 흉을 보더니 슬그머니 이렇게 말을 맺었다. “솔적히 똑같은 짓을 해도 아들이 딸보다 더 귀여워요. 대체 왜 이렇게 통제가 안될까 싶은데 그래도 예뻐요. 한없이 사랑스럽죠. 딸은 다 잘하는데 가만보면 내 적이야. 애정은 아들한테 훨씬 훨씬 많아요.”

아들 키우기 힘들다는 건 분명 생물학적인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엄마가 아들에게 각별한 애정과 기대를 한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기대가 큰 만큼 좌절도 크다. 딸보다 아들 키우기 어렵다는 아우성과 호들갑의 배경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는 게 혹시 아닐까.

글=안혜리 기자 hyeree@joongang.co.kr, 취재=윤경희·김소엽·박형수·송정·전민희·정현진·심영주·조한대 기자 [중앙일보] 입력 2014.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