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회학자 연구대상 된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①

해암도 2015. 5. 20. 19:20
  • '마리한화', '한화극장' 용어가 생겨난 이유는?


대기업 임원 H씨는 최근 대학생 딸이 보인 뜻밖의 변화에 흐뭇하기만 하다. 프로야구 하면 이승엽과 류현진이 아는 게 전부였던 딸이 프로야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H씨는 딸이 프로야구와 관련한 것들을 계속 물어오면서 자연스럽게 곁에 오는 일이 많아졌다. 기본적인 야구 규칙도 모르던 딸이 갑자기 프로야구에 꽂힌 것은 지난 4월 26일 대전에서 한화 이글스 경기를 관전하고 나서다. 이날 경기에서 한화 이글스는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5 대 4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2014년 시즌까지 한화 경기는 9개 구단 중에서 가장 재미없는 경기로 분류됐다. 2009~2014년 6시즌 동안 한화는 다섯 차례나 꼴찌를 기록했다. 한화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개막 15경기에서 하위권으로 밀려났다. 2013년에는 개막 13연패를 기록한 적도 있다. 3연패나 4연패는 식은 죽 먹듯 했다. 그러다 보니 한화는 상대팀들에 승수 쌓기의 제물이 되었다.

거액을 투자해 FA(자유계약) 선수인 정근우와 이용규와 계약하고, 김응용 감독을 영입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2013시즌에는 신생팀 NC 다이노스에도 밀려 꼴찌로 추락했다. 그러는 사이 선수들은 패배주의에 빠졌고 ‘찌질이팀’이라는 모욕적인 말까지 들어야 했다. 이 기간동안 한화를 응원하는 팬들을 다른 팀 팬들이 불쌍하게 여길 정도였다.

올해 프로야구의 최대 관심사는 한화다. 1위를 놓고 다투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가 아니다. 중위권의 한화는 마리한화와 한화극장으로 통한다. ‘마리한화’는 한화의 경기를 한번 보면 중독돼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마약(마리화나)과 같다는 뜻에서 나온 별칭이고, ‘한화극장’은 매 경기 한국시리즈 최종전을 치르는 것처럼 손에 땀이 나게 경기가 진행된다는 뜻에서 나왔다. 그 결과 한화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사의 시청률은 언제나 1위를 달린다.

이런 열기는 기록으로도 증명된다. 4월 한 달 12차례의 홈경기에서 매진을 3회나 기록했다. 원정경기 평균 관중은 1만3823명으로 10개 구단 중 2위다. 한화 유니폼 매출액은 4월 말 현재, 지난해에 비해 250% 늘었다. 매출액 1위는 김태균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이다. 그렇다면 2위는? 놀랍게도 김성근 감독이다. 한화팬들은 전광판에 김성근 감독 얼굴이 뜨면 열광한다. 1942년생이니 나이로 따지면 ‘할배’지만 한화팬들에게 그는 어떤 아이돌 스타보다 뜨거운 지지를 받는다.

이 모든 게 지난해 10월 말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고 나서 불과 6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김성근 감독은 전력이 약한 팀을 맡아 강팀으로 조련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지도자로 통한다. 그가 야신(野神)으로 불리는 이유다. 종목을 통틀어 프로감독이 청와대 비서실 직원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 것은 김 감독이 유일하다.
김성근 감독이 지난 4월 30일 기아와의 경기 도중 수첩에 뭔가를 메모하고 있다./뉴시스
김성근 감독이 지난 4월 30일 기아와의 경기 도중 수첩에 뭔가를 메모하고 있다./뉴시스
국내 프로스포츠 지도자의 리더십이 사회학자의 연구 대상이 된 사람이 김성근 감독이다. 연세대 김호기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4월 27일자 한국일보에 쓴 칼럼에서 김성근 리더십을 열정, 책임감, 냉정함 3가지로 압축한다. ‘열정’은 흔히 7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에게 직접 펑고(수비 연습을 위해 배트로 야수에게 쳐 주는 공)를 쳐주는 것으로 설명된다. 지난 5월 3일 김 감독은 팀이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3 대 6으로 지고 나자 유격수 강경학과 2루수 정근우를 경기장에 세워놓고 1시간 넘게 펑고를 쳤다. 감독이 얼마든지 타격코치에게 시킬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73세의 감독은 직접 나섰다. ‘책임감’은 감독은 팬들에게 성적으로 보답해야 한다고 믿는 데서 나온다. 세 번째인 ‘냉정함’은 뭘까? 김호기 교수는 냉정함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야구감독은 그라운드의 지배자다. 투수 교체, 타선 조정, 상황에 따른 작전 구사까지 게임을 크게, 그리고 미세하게 운영해야 하는 것은 감독이라면 갖춰야 할 자질이다. ‘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야구계의 격언에서 볼 수 있듯 승리를 위해선 비정할 정도의 냉정한 지략이 요구된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제는 박수를 치고 크게 웃는 등 감정표현을 숨기지 않지만 김 감독의 냉철한 작전 구사는 전혀 녹슬지 않았다.” <②편에계속>


사회학자 연구대상 된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

     
김성근 감독은 현직 감독으로부터도 배움의 대상이 된다. 실제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감독이 배울 게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야구 해설가들의 말과는 차원이 다르다. 넥센 히어로즈를 2013~2014시즌 연속으로 4강에 올려놓은 염경엽 감독은 지난해 9월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성근 감독의 디테일 야구와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노피어(No Fear) 정신을 선수들에게 불어넣으면 넥센은 언제든지 4강에 갈 수 있다.”

염경엽 감독이 말한 디테일 야구란 무엇인가. 이것은 김호기 교수가 말한 ‘미세하게 운영하는 야구’와 같은 말이다. 이는 또한 ‘주먹구구 야구’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야구는 평균이 지배하는 스포츠다. 타율과 방어율은 각각 타자와 투수의 능력을 가늠하는 평균치다. 김 감독은 타자와 투수의 데이터를 정확히 기억해둔 상태에서 매 순간순간 이를 작전에 적용한다는 뜻이다.

SBS스포츠 안경현 해설위원은 선수경력 19년이다. 두산 베어스에서 17년을 보내고 2008년부터 SK 와이번스에서 2년을 선수로 뛰었다. 두산에서 감독을 세 명 겪었고, SK에서 김성근 감독의 지도를 받았다. 김 감독은 2007~2011년 8월까지 SK 감독을 하면서 팀을 세 번이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지난 5월 5일 만난 안경현 해설위원은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김 감독은 다른 감독들처럼 연습하라고 그냥 놔두질 않는다. 선수 개개인에게 세밀하게 지적하며 변화를 시킨다. 프로라고 해서 감독과 코치가 다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다른 감독과 코치들은 기술적으로 관여하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김 감독은 전 과정을 관여한다. 경기에 나가기 직전까지 선수의 모든 것을 관리하고 준비시킨다.”

김성근 야구는 한마디로 말하면 관리야구다. 자율야구와는 대척점에 있다. 안 위원은 선수 시절 자율야구와 관리야구를 다 겪어본 경우다.

“자율야구가 훨씬 힘들다. 야구 연습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솔직히 힘들면 적당히 하다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런 때는 누가 관리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처음 SK에 와서 김 감독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느꼈던 게 바로 옛날에 했었지만 이론적으로 정립이 안 되었던 것을 확립시킨 것이다. 김 감독님의 지도를 받으면 잊고 지났던 것을 생각나게 했다. 내가 선수로서 좀 더 어렸을 때 김 감독님을 만났더라면 더 성장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김성근 감독(왼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 4월 30일 기아와의 경기에서 6-0 승리를 거둔 뒤 선수들과 손을 마주치고 있다./뉴시스
김성근 감독(왼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 4월 30일 기아와의 경기에서 6-0 승리를 거둔 뒤 선수들과 손을 마주치고 있다./뉴시스

야구 승패의 90%는 준비과정에서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투아웃 이후 진루와 선두타자 진루는 하늘과 땅 차이다. 선두타자가 안타나 포볼로 1루에 나가야만 감독의 작전 구사가 가능하다. 투아웃에 안타를 치고 나가면 그 다음 수는 감독이나 야구팬이나 똑같아진다. 선두타자가 안타를 치고 나가려면 타석에 서는 타자가 안타를 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김성근식 ‘디테일 야구’란 무엇인가? 이 부분은 선수로서 김 감독에게 지도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다시 안경현 해설위원의 설명을 들어본다.

“김 감독은 데이터를 참고로 해서 위험요소를 파악해 위험을 미리 예방하는 스타일이다. 다른 감독들은 A 투수가 잘 던지고 있으면 비록 A 투수에 강한 B 타자가 나와도 그냥 밀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김 감독은 다르다. 그런 위험요소를 미리미리 제거하는 스타일이다.”

그에 대한 비판 중의 하나가 ‘투수를 너무 자주 바꾼다’는 말이다. 이 비판은 바꿔 말하면 ‘디테일 야구’와 맥락을 같이한다. ‘경기를 재미없게 한다’는 비판도 마찬가지다.

톱클래스 타자들도 한 시즌을 치르는 동안 여러 번 슬럼프를 겪는다. 리더의 능력은 선수가 일시적인 부진에 빠져있을 때 적절한 처방으로 빨리 슬럼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한화의 1번타자 이용규는 지난해 타율이 0.288을 기록, 몸값을 못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5월 6일 현재, 타율 0.345(전체 6위), 27득점(전체 2위), 안타 39개(전체 1위)를 기록 중이다. 1번타자로서 펄펄 날고 있는 중이다. 이용규는 자신의 타격이 상승세인 비결을 김성근 감독의 적확한 지도로 공을 돌린다. 이용규는 5월 6일자 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성근 감독님이 최근 경기중에 상체를 숙이는 부분을 지적했다. 공을 보기 위해 그런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는데 ‘준비동작부터 편하게 서서 타격에 임하라’고 했다. 실제로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타석에 들어가면서 더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이용규의 말은, 김 감독이 선수 개개인의 상태를 정확히 머릿속에 넣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선수가 필요로 할 때 적절한 ‘한 수’로 타격 밸런스를 되찾게 하는 게 지도자의 능력이다.


사회학자 연구대상 된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

      
김호기 교수가 김성근 리더십 분석에서 놓친 게 하나 있다. 그것은 소통 능력이다. TV에서 비쳐지는 김 감독의 표정은 심각하고 엄숙하다. 얼핏 선수들이 접근하기 힘든 것처럼 보인다. 5년째 한화를 취재하고 있는 OSEN 야구담당 이상학 기자는 한화의 모든 경기를 현장에서 관전했을 뿐 아니라 해외 전지훈련 캠프를 취재했다. 이상학 기자는 “초반이긴 하지만 한화의 좋은 성적은 소통의 결과”라고 분석한다.

“김성근 감독은 이전 감독들과는 달리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한다. 선수들을 한 사람씩 일대일로 만나 대화를 하기도 하고 선수들을 모아놓고 강연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이전 감독들은 다 코치를 통해 메시지를 내려보냈지 김 감독처럼 세세하게 접근하지 않았다. 때로는 선수들을 직접 만지면서 정신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김 감독은 예상보다 훨씬 소통을 잘한다. 강연을 많이 하셔서 그런지 말로 선수들을 감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한화의 김광수 수석코치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감독님은 말을 짧게 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짧은 한마디에 많은 게 포함되어 있다. 또한 아주 타이밍을 잘 잡아 메시지를 던진다.”

그가 남긴 촌철살인 어록이 회자되는 이유다. 그는 투수 유창식을 기아로 트레이드하면서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보여달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야구팬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

프로야구팀들은 각기 2군을 두고 있다. 감독들은 대개 2군 감독의 보고를 통해 2군 선수들을 평가한다. 한화의 2군 캠프는 서산에 있다. 대전~당진 고속도로를 이용해도 2시간이 넘는 거리다. 이상학 기자는 “김 감독은 2군 선수들까지도 늘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한번은 감독이 직접 서산으로 내려갈 시간이 안 되니까 경기가 없는 날 2군 투수 10명을 대전 홈구장으로 오게 했다. 김 감독은 홈구장에서 2군 투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며 선수 개개인에게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김성근 감독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선수들을 혹사시킨다’ ‘지옥훈련으로 부상을 유발한다’ 등이다. 이 말에는 선수 훈련 방법이 구식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안경현 해설위원은 “해외 전지훈련 캠프에 가보면 우승한 팀이나 꼴찌를 한 팀이나 연습하는 게 거의 똑같다”면서 “꼴찌를 한 팀이 1위를 한 팀과 똑같이 연습하면 무슨 차이가 나겠나”라고 반문한다.

“선수들에게 힘들게 훈련을 시켰는데, 성적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선수들은 다음부터는 그런 훈련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화는 경기를 이기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선수 개개인도 성적이 오르는 것을 느낀다. 선수 본인이 스스로 바뀌었다는 것을 체감한다. 그러니까 힘든 연습과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김 감독은 ‘선수를 혹사시킨다’는 비판에 대해 지난해 12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밖에선 내가 선수를 혹사한다고 하는 데 나는 그런 말에 신경 안 쓴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현재 자기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오버워크(혹사)하면서 그걸로 한계를 새로 설정하고 또 오버워크하면 한계는 점점 더 높아진다. 그것이 내가 팀을 만들어가는 방법이고, 나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혹사라고 하고 선수를 망가뜨린다고 하지만, 거기에 도달하지 않으면 사람을 못 만든다.”

그는 ‘야구를 재미없게 한다’는 비판에 대해선 이렇게 반박했다.

“일을 하면 반드시 결과가 나와야 한다. 승부는 이기기 위해서 하는 거다. 지려고 하는 게 아니다. 세상 사람들 입맛에 맞춰 승부하다가는 진다. 지면 그 손해는 선수에게 간다. 내가 앞에서 욕을 바가지로 먹더라도 조직이 이기면 된다. 조직에 플러스가 되면 나에게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나는 그렇게 한다.”

한화 구단 홈페이지의 ‘김성근 감독’에 보면 팬들이 단 댓글을 볼 수 있다. 날짜별로 클릭해 보면 한화팬들이 지금 얼마나 행복해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그가 한화 감독을 맡은 지난해 10월 28일 댓글을 살펴보다가 이런 댓글에 눈길이 고정됐다. “감독님, 선수들 실력과 정신력 모두 싹 뜯어고쳐 주세요.” 불과 6개월 만에 ‘만년 꼴찌’ 한화는 기적처럼 달라졌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광수 수석코치는 그 비밀을 이렇게 말했다. “감독님은 믿음과 진솔함으로 선수들을 움직였다.”


  • 조성관
    주간조선 편집위원
    E-mail : maple@chosun.com
    문화기행작가, 천재연구가 여성부 자문위원 역임. 체코 정부 공..
  • 입력 : 2015.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