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동안 수술용 메스로 나무를 파내 船體 만들어…
딱따구리가 부리만으로 나무를 쪼아 파내는 것처럼"
"아들도 교통사고로 장애 얻어… 이 몸으로 부모님 속 썩인 것
나도 부모가 되어 그 고통을 공평하게 겪고 있는 게 아닐까"
딱따구리가 부리만으로 나무를 쪼아 파내는 것처럼"
"아들도 교통사고로 장애 얻어… 이 몸으로 부모님 속 썩인 것
나도 부모가 되어 그 고통을 공평하게 겪고 있는 게 아닐까"
한적한 읍내 왕복
2차선 도로변에 있는 시계 수리점.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주인 서우하(62)씨와 동네 친구들, 며느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좁은 공간이 꽉
찼다. 상반신을 비스듬히 세운 채 엎드려 있던 서씨가 한편에 있는 자기 휠체어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했다.
"서울서 신문기자분이 오신다고 해서 동네 친구들을 불렀어요."
인터뷰하러 갔다가 '구경꾼'들을 만나는 상황은 처음이었다. 경북 성주군까지 다섯 시간가량 운전해 간 것은 그가 유명 인사나 뉴스메이커여서가 아니었다. 배를 타본 적 없는 하반신 장애인 시계 수리공이 실물처럼 정교한 모형 선박을 만들어왔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짠했기 때문이다.
과연 좁은 가게 안에는 모형 함선 열댓 척이 전시돼 있었다.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배를 만들었지만 내가 배를 타고 있는 꿈은 딱 한 번밖에 못 꿨어요. 물론 꿈에서 내 몸은 이렇지는 않죠."
"서울서 신문기자분이 오신다고 해서 동네 친구들을 불렀어요."
인터뷰하러 갔다가 '구경꾼'들을 만나는 상황은 처음이었다. 경북 성주군까지 다섯 시간가량 운전해 간 것은 그가 유명 인사나 뉴스메이커여서가 아니었다. 배를 타본 적 없는 하반신 장애인 시계 수리공이 실물처럼 정교한 모형 선박을 만들어왔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짠했기 때문이다.
과연 좁은 가게 안에는 모형 함선 열댓 척이 전시돼 있었다.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배를 만들었지만 내가 배를 타고 있는 꿈은 딱 한 번밖에 못 꿨어요. 물론 꿈에서 내 몸은 이렇지는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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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하씨는“지금까지 배를 만들었지만 내가 배를 타고 있는 꿈은 딱 한 번밖에 못 꿨다”고 말했다. /성주=최보식 기자
"세상에 나와 지금까지 이 동네에서만 살았어요. 바다에는 가봤지만 몸이 이래서 배를 탈 엄두를 못 냈죠. 몇 달 전 한 방송사에서 촬영 와서 저를 배에 태웠는데 애를 많이 먹었지예."
―처음 모형 선박을 어떻게 만들게 됐나요?
"열댓 살 때 함선 화보를 처음 봤는데 속이 다 시원합디다. 배를 타고 바다에 떠있다면 생각만 해도 좋잖아요. 남들처럼 나도 멋있게 일하고 싶었는데…, 그런 욕망을 잊으려고 더 몰두한 거죠. 배를 만들기 시작하면 밥 먹는 것도 시간 가는 줄도 몰라요. 잠자다가 밤에 일어나서도 만들지예."
―배 실물을 본 적이 없고, 순전히 사진만 보고 배를 만들었던 겁니까?
"옛날에는 화보를 봤고 지금은 인터넷을 검색해 보지예. 인터넷에도 배의 폭과 길이만 나오지 부품별 재원은 안 나와요. 사진을 몇 달씩 계속 봐서 배의 모든 형태를 머릿속에 집어넣어요. 축약해서 작업하는 거죠. 내 머리 안에 설계도가 들어 있는 거지예."
―나무를 깎고 붙이는 목공 기술을 따로 배웠나요?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우예 하다 보니 만들게 됐어요. 선체(船體)는 수술용 메스로 두 달 동안 나무를 파내서 만들어요. 딱따구리를 생각하면 돼요. 연장 없이도 부리로만 나무를 쪼아 파내잖아요. 육안으로 잘 안 보이는 정교한 부품은 돋보기를 쓰고 만들지예. (한 모형 군함을 집어 들고) 이게 '세종대왕함'인데 여기 뚜껑이 열리면서 미사일이 펑펑 발사돼요. 저기 '천안함'은 폭침 사건 보도를 보고 난 뒤에 만들었어요. 손장난이 너무 심하지요."
여전히 그는 비스듬히 엎드린 상태다. 허리 통증으로 앉는 게 어렵다고 했다.
"집에서 식사할 때도 방바닥에 그릇을 놓고 나만 엎드려 먹어요. 이런 몸으로 살아오니 간과 신장이 안 좋고 혈압 당뇨도 있어요. 심장이 멈춰 119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했지요. 진통제를 하루 10알 이상 먹어요."
―선천적인 장애였습니까?
"출생했을 때는 괜찮았대요. 돌이 되기 한 달 전쯤 엄마 등에 업혀 시장에 갔다가 많이 놀랐다고 해요. 몸이 불덩어리처럼 펄펄 끓었답니다. 다 죽어가는 걸 살렸는데 아랫도리가 처져 있더라는 겁니다. 내가 외아들이었으니 부모님 마음이 어떠했겠어요."
―어릴 때는 집 안에서만 지냈겠군요.
"기어다니는 처지라도 집 안에만 있으면 답답하잖아요. 어른들이 농사일을 하러 논밭으로 나가고 동네가 비었다 싶으면 몰래 외출을 했어요. 나무 짝짜기처럼 판자를 손바닥에 대 묶은 뒤 바깥으로 기어 나갔어요."
―왜 동네에 사람이 없을 때 외출했나요?
"어린 마음에 창피한 게 있었나 봐요. 동네 어른들이 농사일을 마치고 들어오기 전에는 돌아와야 했어요. 그 시간을 못 맞추고 늦어질 때가 있어요. 그러면 사람들과 마주칠까 봐 논두렁길에 숨었다가 어둑해지면 기어왔어요. 그러는 동안 부모님은 저를 찾느라 속을 태웠지요."
―학교는요?
"집에서 한글은 배웠어요. 그러다가 아홉 살 때 저를 초등학교에 데려갔어예. 부친 친구였던 교감 선생님이 제 신체 상태를 보더니 '어차피 학교에 오래 다니지 못할 테고 쟤 한글 실력이면 2학년으로 입학해도 되겠다'고 했어요."
―학교 친구들과는 잘 지냈나요?
"기어다니는 내가 불쌍했는지 놀리지는 않았어요. '소변이 마렵다' 하면 친구들이 화장실까지 업어 가거나 깡통을 갖다 주고…. 학교는 1년 반쯤 다니고 끝났지예. 학교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은 한 거지예."
―아니, 왜 그만뒀지요?
"등하교가 어려웠어요. 학교가 꽤 멀었는데 아버지가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가거나 엄마 등에 업혀서 다녔지예. 그때 내 덩치가 커서 엄마가 힘들었을 거라예. 여름철 농사일이 바빠지니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이제 그만 가라'는 말을 듣고는 영문을 몰라 많이 울었어예."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손님이 들어왔다. 여기서는 다들 아는 사람이었다. 그 손님이 집에 있는 고장 난 시계에 대해 얘기하면서 "자네 고칠 수 있겠나?" 하고 물었다.
"고칠 수 있심더. 시계를 맨드는 사람도 있는데 고치는 것쯤이야. 시계를 좀 많이 부숴 오이소. 그래야 고치는 값을 많이 받제."
그는 한바탕 너스레를 떨고는 나를 돌아보며 말았다.
"옛날에는 낯선 사람 앞에서 말을 많이 더듬었어요. 시계를 찾아갈 때 손님이 '얼마냐?'고 물으면 말이 안 나와 컥컥거리곤 했어요. 손님이 '야야, 종이에 적어라'고 하면 자존심이 상해 '냅두이소'라는 말밖에 안 나와요. 돈 안 내도 좋으니 그냥 가라는 소리지요."
―요즘 시계를 많이 고치러들 옵니까?
"가게 문만 열어놓지, 촌동네에 고칠 시계가 얼마나 있겠어요. 휴대폰에 시간도 다 나오는 시절이고. 집사람이 식당에 일 다니며 100만원쯤 버는 걸로 먹고살아요. 그런데 돈을 많이 벌어도 마음이 편치 않더라고요."
―그건 또 무슨 말씀인가요?
"시계방에서 금·보석을 진열해 팔았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큐빅을 하나 팔고 나면 '너무 많이 남긴 게 아닌가' 하며 가슴이 두근거려요. 장사는 이문을 남긴다는 걸 하늘도 알지만, 폭리를 취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몇 년 하고 그만두고 시계 수리와 도장 새기는 일만 해요."
―시계 수리 기술은 어떻게 배우게 됐습니까?
"난 배운 게 없어예. 아버지가 '니코' 손목시계를 사줬어요. 그걸 뜯어 분해했다가 고장을 내 읍내 시계점으로 고치러 갔어예. 주인이 저를 보더니 '여기서 시계 기술이나 배워라'고 했어예."
그의 나이는 열다섯 살이었다. 주인은 만날 당구를 치러 다니며 점포를 비웠다. 손님이 고치러 오면 별수 없이 그가 뜯어보고 용두(태엽을 감는 꼭지)나 시계침, 유리를 갈아줬다고 한다. 1년쯤 지나 주인은 그에게 시계방을 물려받지 않겠느냐고 했다. 집에서 밭 한 뙈기를 팔아 인수했다.
"시계 수리 기술을 배우지도 않았는데 우예 하다 보니 나중에는 시계 톱니바퀴 같은 부속품도 직접 깎아 만들 정도가 됐어요. 그런데 시계에 쓰인 글자가 영어라서 애를 먹었어요. 영어는 배워야겠다 싶어 야간 중학에 몇 달 다녔어요. 영어 단어를 대충 알아볼 정도가 되고는 그만뒀어요."
부모는 그가 야간 중학을 다닐 수 있게 학교 근처에 방을 하나 얻어주고, 밥해주는 여자를 딸려 붙였다.
"그 여자가 집사람이 됐어예. 남녀가 한방에서 지내다 보니…. '학생, 학생' 불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열여섯 살에 새신랑이 됐어요. 나는 총각 시절이 없었던 거지예. 집사람은 네 살 연상이고."
―그 나이에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군요.
"부모를 힘들게 한 걸로 끝이어야 하는데, 멋도 모르고 결혼하게 된다 말이에요. 그때 세상 이치를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텐데. 그 나이에는 그 정도 판단밖에 못 하는 거지예. 집안에 장애인이 있으면 부모는 온통 거기에만 매달려야 해요. 우리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것도 나한테 신경 쓰느라 그랬을 거예요."
―무슨 그런 말씀을.
"장애도 '유전(遺傳)'이 되나 봅니다. 내 작은아들이 교통사고로 하반신 2급 장애가 됐어요. 겉은 멀쩡해보여도 일을 못 해요."
―그건 유전이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이 몸으로 평생 부모님 속을 썩였으니, 공평하게 나도 부모로서 그 고통을 겪어보라는 뜻이겠지요. 장애인치고 돈 많거나 자식 교육을 제대로 한 이가 드물어요. 집사람에게도 너무 못할 짓을 했어요. 내 자격지심으로 애를 많이 먹였지요. 젊어서 술주정도 많이 했어예. '그때 왜 도망 안 갔나?' 물었더니 '당신이 불쌍해서 못 버리겠더라'고 하대요. 이런 빚을 언제 다 갚을 수 있겠어요."
―지금은 웃는 인상이 참 좋은데요.
"남에게 보태줄
재물은 없어도 몸으로 해줄 수 있는 게 '화안시(和顔施)'라고 합디다. 내 웃는 얼굴이 남을 도와주는 거죠. 내 삶이야 보잘것없지예. 하지만
이렇게 살다 가면 끝인가, 내가 살아갈 이유를 찾기 위해 공부하려고 했어요. 저것도 제가 깎은 거예요."
가게 창문 앞으로 빽빽하게 진열해놓은 소형 장승들을 가리켰다. 장승 140여 개마다 '희생의 대가' '죄와 벌' '버팀목' '내 인생의 유효기간' 등 자신에게 생각의 단서가 됐던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내 인생의 유효기간'이란 무슨 뜻인가요?
"사람들은 언제쯤이면 세상과 작별한다는 걸 대략 알면서도 그걸 회피하거나 잊고 살아가요. 이 아름다운 봄도 다 지나가잖아요. 세상의 낙(樂)이라는 것도 잠깐이고 내가 겪어온 아픔과 고통도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모든 게 과정이고 영원할 수 없어요. 내게 이런 삶이 주어진 것에도 어떤 뜻이 있을 거예요. 똑바로 살면서 그걸 찾고 싶어요."
동네 할머니가 도장을 새기러 들어왔다. 내가 앉아 있던 그의 휠체어에서 일어설 시간이 됐다.
가게 창문 앞으로 빽빽하게 진열해놓은 소형 장승들을 가리켰다. 장승 140여 개마다 '희생의 대가' '죄와 벌' '버팀목' '내 인생의 유효기간' 등 자신에게 생각의 단서가 됐던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내 인생의 유효기간'이란 무슨 뜻인가요?
"사람들은 언제쯤이면 세상과 작별한다는 걸 대략 알면서도 그걸 회피하거나 잊고 살아가요. 이 아름다운 봄도 다 지나가잖아요. 세상의 낙(樂)이라는 것도 잠깐이고 내가 겪어온 아픔과 고통도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모든 게 과정이고 영원할 수 없어요. 내게 이런 삶이 주어진 것에도 어떤 뜻이 있을 거예요. 똑바로 살면서 그걸 찾고 싶어요."
동네 할머니가 도장을 새기러 들어왔다. 내가 앉아 있던 그의 휠체어에서 일어설 시간이 됐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 입력 : 2015.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