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취미의 대물림

해암도 2015. 4. 2. 06:55

17년 전 내가 재즈 클럽을 연 지 두 달쯤 지났을 때 일본 오사카에서 온 아마추어 재즈 밴드가 무대에 오르고 싶다고 했다. 한국 여행 온 차에 우리 클럽에서 연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제안을 가볍게 생각한 나는 공연 휴식 시간 30분 동안 연주할 수 있게 해주었다.

각양각색 직업을 가진 60대 부부 15명가량이 왔다. 일행이 비디오와 사진 촬영을 하는 가운데 이 밴드는 딕시랜드(1910년대 뉴올리언스 초창기 재즈)를 신명나게 연주하는데 수준이 프로와 다르지 않았다. 순간 내 생각이 짧았음을 직감했다. 이들은 연주를 생업으로 하지 않을 뿐, 대학생 때 결성해 40년 가까이 연주 활동을 해온 밴드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이들은 오사카에서 작은 클럽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로부터 2주 후 소홀한 대접을 사과하는 뜻으로 그들의 오사카 클럽에 찾아갔더니 젊은 친구들이 똑같이 연주하고 있었다. 한국에 왔던 밴드 멤버의 자녀들로, 역시 재즈 밴드를 결성해 활동 중이었다. 일본이 직업을 대물림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취미까지 대물림하다니. 형용할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악기로 맺어진 멤버들 간의 수십 년 우정과 가족 간 우애와 화목을 확인했다. 그들은 나에게 "재즈 클럽 한 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물었다. "두 달밖에 안 됐다"고 대답한 게 창피해서 "준비하는 데만 20년이 걸렸다"고 객기 부리던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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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도 친구들끼리 모여 밴드를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늘었다. 그런 취미를 대물림하고 자신이 쓰던 악기를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멋있을지 상상해본다. 혼자만의 망상일까. 자식은 돈을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미혼인 내가 이제라도 결혼하고 아이 낳아 기르고 내가 쓰던 색소폰을 물려주려면 아흔 살까지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아, 꽃 피는 춘사월 남산 길을 비장한 각오로 좀 더 힘차게 걸어야겠다.

 고등학생인 나에게 공부하라는 말 대신 색소폰을 사주셨던 부모님을 회상하며, 내가 물려준 악기로 친구들과 연주하는 미래의 자식을 상상하며 말이다.



        임재홍·재즈 클럽 '원스인어블루문' 대표 사진  임재홍·재즈 클럽 '원스인어블루문' 대표   입력 : 2015.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