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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 메마른 지구 등지고 한 움큼 희망 찾아 우주로…

해암도 2014. 10. 31. 09:00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인류의 지구 엑소더스 계획인 ‘나사로(Lazaros)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우주비행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우주를 인간의 욕망과 불안이 뒤섞인 적막한 시선으로 펼쳐 보인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도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던가. 우주는, 슬펐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메멘토’(2000년)부터 배트맨 시리즈와 ‘인셉션’(2010년)까지 그는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그리고 신작 ‘인터스텔라(Interstellar·다음 달 5일 개봉)’를 통해 다시 손을 내민다. 도시와 꿈을 떠나 이제 하늘로 가자고.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언제나 감독은 한계를 몰랐다. 함께 각본을 쓴 동생 조너선은 4년이나 상대성이론을 배웠단다. 세계적 이론물리학자 킵 손이 자문을 맡았다. 그 공력을 끌어다 상상을 펼쳐낼 공간으로 지구는 비좁았다. 카메라는 태양계를 벗어나 다른 차원의 우주로 넘나든다.

때는 머지않은 미래. 지구를 덮친 환경 재앙. 세계 식량 시스템은 파탄 났다. 정부와 경제 역시 유명무실. 과학자보다 농부가 더 요긴한 세상이 됐다. 우주조종사였던 쿠퍼(매슈 매코너헤이)도 옥수수농장 일꾼 신세. 허나 불가사의한 일을 겪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연이 닿고…. 가족의 만류에도 인류가 이주할 행성을 찾는 프로젝트에 뛰어든 쿠퍼. 브랜드 박사(앤 해서웨이) 등과 함께 토성 근처 웜홀(다른 시공간을 잇는 우주구멍)로 향한다.

상영시간 169분에 이르는 영화는 압도적이다. 거창한 액션이나 분주한 전개가 거의 없는데도 몰입하게 된다. 물론 웜홀이나 블랙홀과 연관된 과학용어는 낯설다. 이를 얼개로 마련한 시공간 개념도 녹록지 않다. 그러나 고요하되 찬란한 우주 환상곡 앞에 멍하니 이성을 놓아버린다.


뭣보다 놀런 감독 특유의 ‘묵시론적 세상에 뿌리는 희망 한 움큼’은 은하계에서도 여전하다. 세상이 등져도 자신은 고담을 놓지 않는 다크나이트처럼. 소수의 인류는 희생을 심어 미래를 싹틔운다. 하지만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도 인간이었다.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는 소신공양(燒身供養·자기 몸을 불태워 공양을 바침)은, 때로 덫이 되고 지뢰가 된다. 우주로 간들 인성(人性)은 변함이 없다.

그런 인류의 부족함을 상쇄시켜 주는 건 다름 아닌 사랑이다. 밋밋하다고? 원래 정답은 그 모양이다. 사람들이 뻔한 길을 두고 돌아갈 뿐. 쿠퍼의 딸(매켄지 포이)에 대한 애정, 딸의 아빠를 향한 그리움은 순수하기에 에너지가 넘친다. 수만 광년이 떨어져도 코끝에 맞닿은 숨결. 희망을 희망으로 버티는 이유는 마음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만큼 참혹한 게 또 있을까. 목숨 같은 자식을 지키려 이별을 택하고, 다시 못 볼 줄 알면서도 손을 흔든다. 인류의 생존? 온기 없는 우주에 내던져진 이에게 제아무리 대의명분을 외친들. ‘별들 사이에서(인터스텔라)’ 인간은 떠도는 부초인 것을. 그래도 떠나야 했던 건 각인처럼 잔인한 사랑 때문이었다.

이제 알겠다. 영화가 왜 이리도 슬펐는지. 예전엔 푸른 별밤이 황홀한 줄 알았다. 허나 아버지가 떠나버린 저 창공이 딸에게도 아름다울까. 우리 곁을 떠난 그들은 어디쯤 가고 있을지. 기약 없이 갔을지언정 먼지로라도 안부를 전해주면 좋으련만. 하나둘씩 별이 진다. 사금파리 세월 한 줌만 남긴 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