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을 예방하고 건강, 장수하는데 있어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은 잘 아실 겁니다. 엄격한 유교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명문집안의 선비이자 높은 벼슬아치가 직접 음식을 만들었는가 하면 그 아들은 수많은 음식에 대한 품평을 책으로 쓴 경우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명문가인 양천 허씨 집안의 ‘허엽(許曄)’이라는 분이고, 그의 아들은 ‘홍길동전(洪吉童傳)’의 저자인 허균(許筠)이죠. 딸도 여류시인으로 이름난 허난설헌(許蘭雪軒)입니다.
높은 벼슬에 있으면서 음식을 직접 만든 허엽은 누구인가?
국사 시간에 선조 임금 때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갈라져 당파싸움이 시작되었다고 배웠을 것인데, 그 때 김효원과 함께 동인의 영수가 되었던 분이 허엽입니다. 동인과 서인의 싸움이 심해진 탓에 당의 우두머리를 중앙정치 무대에서 멀어지게 하는 방법에다 왜국(倭國)의 동향이 심상치 않았기에 허엽은 경상도 관찰사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상주(尙州)의 객관에서 객사하고 말았습니다. 허엽은 유학자이면서도 도가(道家)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은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기에 도교에도 관심을 가졌던 분이죠. 허엽이 두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허엽이 만들었다는 두부는?
허엽은 조정에 상소를 올렸다가 좌천되어 강릉부사로 내려갔습니다. 근심도 달래고 머리도 식힐 겸 관청 뜰에 있는 우물물을 떠다 마시곤 했는데 물맛이 좋았습니다. 평소 두부를 좋아하던 터라 그 물로 두부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는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직접 두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두부를 만들려면 끓인 콩물을 응고시켜야 하고, 그러려면 끓인 콩물에 간수를 넣어야 했지만 강릉에는 천일염이 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때 허엽은 소금 대신 동해의 깨끗한 바닷물을 간수로 사용해서 두부를 만들었습니다. 바닷물로 간수를 대신한 것인데, 기발한 아이디어였던 것이죠.
높은 벼슬에 있으면서 음식을 직접 만든 허엽은 누구인가?
국사 시간에 선조 임금 때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갈라져 당파싸움이 시작되었다고 배웠을 것인데, 그 때 김효원과 함께 동인의 영수가 되었던 분이 허엽입니다. 동인과 서인의 싸움이 심해진 탓에 당의 우두머리를 중앙정치 무대에서 멀어지게 하는 방법에다 왜국(倭國)의 동향이 심상치 않았기에 허엽은 경상도 관찰사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상주(尙州)의 객관에서 객사하고 말았습니다. 허엽은 유학자이면서도 도가(道家)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은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기에 도교에도 관심을 가졌던 분이죠. 허엽이 두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허엽이 만들었다는 두부는?
허엽은 조정에 상소를 올렸다가 좌천되어 강릉부사로 내려갔습니다. 근심도 달래고 머리도 식힐 겸 관청 뜰에 있는 우물물을 떠다 마시곤 했는데 물맛이 좋았습니다. 평소 두부를 좋아하던 터라 그 물로 두부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는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직접 두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두부를 만들려면 끓인 콩물을 응고시켜야 하고, 그러려면 끓인 콩물에 간수를 넣어야 했지만 강릉에는 천일염이 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때 허엽은 소금 대신 동해의 깨끗한 바닷물을 간수로 사용해서 두부를 만들었습니다. 바닷물로 간수를 대신한 것인데, 기발한 아이디어였던 것이죠.
- 허엽이 손수 만들었다는 초당두부.
초당두부를 만드는 데는 콩을 불리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12시간, 봄가을에는 8시간, 여름철에는 6시간을 불리고 난 뒤에 콩을 갈기 시작합니다. 갈아진 콩을 올이 촘촘한 천으로 걸러 콩물만 빼낸 다음, 커다란 가마솥에 붓고 장작불로 끓이면서 젓습니다. 두부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불의 세기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과 간수 맞추기인데, 간수가 얼마나 들어가느냐에 따라 순두부가 부드러워지기도 하고, 딱딱해지기도 하기 때문이죠. 간수는 바닷물을 미리 떠다가 불순물을 가라앉히고 사용했습니다.
두부의 효능
두부는 단 맛에 서늘한 성질로서 기운을 더해 주고 비위장을 조화롭게 하므로 병후에 몸이 허약하고 입맛이 없으며 숨이 가쁠 때 좋습니다. 대장의 탁한 기운을 내려주므로 대변을 잘 나오게 하며 배가 불러 있는 것을 꺼지게 해 줍니다. 폐의 열을 내리고 기침을 멎게 하며 가래를 삭여 주고, 몸에 물기를 생기게 하여 건조한 것을 윤기 있게 하므로 뱃속에 열이 있어 입이 마른 것을 그치게 합니다. 그래서 소갈(消渴), 즉 당뇨병에 좋은 음식이 되지요. 신장의 기가 허약하여 소변이 잘 나오지 않거나 조금씩 자주 보는 경우, 소변이 뿌옇게 나오거나 붓는 경우에 씁니다. 그밖에도 고혈압, 심근경색, 동맥경화의 예방과 치료에 좋으며, 아이들의 발육과 기억력을 증가시키는 효과도 있지요. 잉어와 함께 끓여 먹으면 산후에 젖을 잘 나오게 합니다.
콩이 해독제로 뛰어난 효과가 있기에 콩으로 만든 두부도 마찬가지로 해독 효능이 있습니다. 특히 유황과 소주의 독을 푸는데 뛰어나므로 소주의 안주로 적합하지요. 만약 소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가슴이 뜨거우며 견디기 힘들어 할 때는 두부를 뜨뜻하게 데워 전신에 붙이고 식으면 바꾸고 해서 깨어날 때까지 하면 됩니다.
음식에 대한 품평을 책으로 쓴 허균
초당공의 아들인 허균 선생은 <도문대작(屠門大嚼)>을 썼습니다. 광해군 때 전라도 함열(咸悅, 지금의 익산)로 귀양을 갔는데, 유배지이니만큼 허접한 음식만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데다 굶주림에 시달여야 했죠. 그래서 주린 배를 쥐고 밤을 새다가 이전에 먹었던 맛있는 음식을 생각나는 대로 쓴 책입니다. 도문(屠門)은 소나 돼지를 잡는 푸줏간의 문이고, 대작(大嚼)은 크게 씹는다는 뜻이죠. 그러니 현재 먹을 수 없는 고기를 생각하며 푸줏간 문을 향해 입맛을 다신다는 의미입니다.
- 도문대작
특별한 선비 허균의 특별한 점은?
허균은 최초의 한글 소설인 <洪吉童傳>의 저자일 뿐만 아니라 시문에 뛰어나 조선 최고의 천재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시대의 이단아’, ‘시대를 앞선 풍운아’라는 별칭이 있지요. 유성룡 선생에게 배우다가, 둘째 형의 친구인 손곡 이달(蓀谷 李達) 선생에게 배웠습니다. 26세에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섰고, 29세에 문과 중시에 장원하였습니다. 명문집안 출신에다 재주도 뛰어났지만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대북파에 밀려 요직에 오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44세에 홍길동전을 지었는데, 스승 이달을 비롯하여 서양갑, 박응서 등 출세가 어려웠던 서자(庶子)들의 처지에 비애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시문에 능하고 중국어 실력도 출중하여 중국 사신들이 올 때면 항상 종사관으로 추천되었는데, 명나라 3대 문사 중의 하나인 주지번을 영접하면서 명문장으로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러나 변혁의 세상을 꿈꾸어 오다가 역모죄로 체포되어 능지처참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기생 데리고 황해도 부임하다 파직당한 허균, "성욕은..."

- 정지천
- 동국대 분당한방병원 내과 과장
- E-mail : kyjjc1931@naver.com
- 1985년에 동국대학교 한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부속한방병원에서 ..
입력 : 2014.09.12
명문가 출신의 선비인 허균이 음식에 관한 책을 지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균의 <도문대작>에는 당시의 음식을 병이지류(餠餌之類), 과실지류(果實之類), 비주지류(飛走之類), 해수족지류(海水族之類), 소채지류(蔬菜之類) 등의 5가지로 분류하여 각 식품의 특징과 명산지를 기록해 놓았습니다. 병이지류는 떡과 죽, 엿, 두부 등이고, 비주지류는 날짐승 고기이죠. 그리고 당시 서울의 시식(時食), 즉 계절음식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조선 팔도의 미식(美食) 134종을 품평한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허균은 원조 ‘푸드 칼럼리스트’인 셈이죠.
-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왼쪽)과 <도문대작>.
“먹는 것은 몸과 생명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선현들도 음식을 가지고 말하는 것을 천하게 여겨왔다. 먹는 것을 가리켜 이(利)에 따른 것이라 하여 좋지 않게 말해 온 전통이 뿌리 깊었다.”
성리학이 주도하던 조선시대에 사대부들은 형이상학적인 가치관에 매여 있던 터라 형이하학적인 영역인 음식에 관심을 가진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렇지만 부친인 허엽도 손수 두부를 만든 데다 홍길동전에서 알 수 있듯이 워낙 시대를 앞섰던 허균이기에 우리 몸과 생명에 중요한 음식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문대작 이전에는 안동 지방에 살았던 명문 광산김씨 집안의 ‘김유(金綏, 1481~1552)’라는 선비가 1540년 경에 저술한 <수운잡방(需雲雜方)>이라는 필사본 요리책이 있습니다.
산해진미를 두루 많이 먹어도 문제 없을까? 허균은 도문대작의 서문 말미에 이런 말을 써 놓았습니다.
“세상의 부귀한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경계하여 지나치게 음식 사치를 말아야 한다. 절약하지 않고 마구 먹으면 그 부귀영화가 항상 있지 못할 것이다.”
좋은 음식이라도 과도하게 먹지 말라고 강조한 것이죠. 게다가 허균은 기본적으로 한의학을 공부했기에 음식의 성질과 약효를 알고서 체질과 몸 상태에 맞는 음식을 가려먹을 줄 알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무공해 음식, 유기농 음식만을 먹었던 당시에도 그러했으니 요즘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식생활 문제가 심각한 지경이니만큼 음식으로 치료하는 의사인 ‘식의(食醫)’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음식에 대한 관심을 상당히 기울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식가이자 식생활 전문가였던 허균은 불과 50세의 나이에 역모죄로 능지처참을 당하지만 않았더라면 오래 장수하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도문대작에서 허균이 극찬한 방풍죽(防風粥)
방풍죽은 방풍나물의 어린 싹을 썰어 멥쌀과 섞어서 쑨 죽인데, 그 맛이 얼마나 뛰어났으면 “향기가 입에 가득하여 3일 동안 가시지 않는다”며 “속간에서 으뜸가는 진미”라고 하였습니다. <증보산림경제>에도 이른 봄에 나는 방풍의 새싹으로 죽을 쑤면 그 맛이 매우 향미롭다고 나와 있고, 그밖에 상당히 많은 문헌들에서 ‘단맛이 입안에 그득하여 속간에서 으뜸가는 것이다’라고 그 맛을 칭송했을 정도로 예로부터 맛이 유명하였죠.
방풍죽을 끓이는 방법은 “새벽이슬이 앉은 방풍의 새싹을 따다가 죽을 쑨다. 햇빛을 본 것은 좋지 않다. 멥쌀로 죽을 쑤어 쌀이 익고 반쯤 퍼졌을 때 방풍잎을 넣어 센 불에서 끓인다. 알맞게 되었을 때 차가운 사기그릇에 떠서 반쯤 식은 상태에서 먹는다. 반쯤 식은 상태로 죽의 적온을 맞추어 먹으면 그 향미가 더욱 가득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육당 최남선 선생이 지은 <조선 상식>에 강릉의 방풍죽이 평양의 냉면, 진주의 비빔밥, 대구의 육개장 등과 함께 지방의 유명한 음식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 갯방풍
방풍(防風)은 미나리과의 초본으로 산과 들에도 나지만 바닷가 모래땅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갯방풍을 윗길로 칩니다. 허균의 외가가 있던 강릉 경포대 해안에 방풍이 많이 났던 모양입니다. 뿌리를 한약재로 쓰는데, 풍을 막는다는 의미이니 중풍, 두풍, 통풍, 피풍, 산후풍 등 여러 가지 풍증의 치료에 활용됩니다. 따뜻한 성질이고 달면서 매운 맛으로 두통을 없애고 머리를 맑게 하며 거담, 진해, 피로회복 효능을 가지고 있지요. 수험생이나 직장인을 비롯하여 머리가 항시 맑지 못하고 흐려 있는 사람에게 좋습니다.
허균의 자연스런 정욕 발산
허균은 남의 이목이나 법도에 신경을 쓰지 않고 행동하여 선천적인 반항아로 불리어졌습니다. 사람을 사귀는데도 신분을 가리지 않았으니 몰락한 양반, 서얼, 아전, 중인계급 의사 등등 나름대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교 사회의 제도 하에서 소외된 삶을 살던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정욕을 금기시했던 유학을 공부했으면서도 정욕을 긍정하여 자연스러운 발산을 옹호했고 자기에게 주어진 본성대로 살았습니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31세에 황해도사에 임명되었으나 기생을 데리고 부임하는 바람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33세에 해운판관이 되어 세미(稅米) 징수와 운반을 감독하였는데, 그 때 부안의 명기 매창(梅窓)을 비롯한 여러 기생들과 어울렸다고 합니다. 특히 홀어머니의 상을 당하였으나 3일장을 마치고 공무를 집행하기 위해 계속 충청, 전라도를 다녔는데 상중임에도 기생들과 어울렸다고 합니다.
엄청난 비난을 받은 허균
엄격한 유교 사회였기에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자 허균은 “남녀의 정욕(情慾)은 식욕(食慾)과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육접(肉接)은 그저 식사처럼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일 뿐이다. 옛 사람들이 먹는 것을 천하다고 한 것은 너무 밝히지를 말라는 뜻이지 어찌 먹지 말라고 한 것이겠는가. 도덕은 성인이 말한 것이요, 성욕은 하늘이 말한 것이니, 나는 성인보다 하늘을 따르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실제로 성욕이란 생리적인 현상으로서 건강한 남녀에게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양반들은 여러 명의 처첩을 거느리면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즐겼던 것이고, 허균은 당시로서는 노골적으로 성생활을 한 것이 문제였던 것이죠. 불세출의 천재이면서 세상을 바꿔볼 야심을 가졌지만 중앙과 지방을 오르내리며 자주 파직당하거나 유배되는 등 순탄치 못한 관직 생활을 하던 허균에게 성생활은 해방구이자 스트레스 해소처가 되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현대에 와서 활발한 성생활을 통해 스트레스 완화, 면역기능 증강, 통증 완화, 체중감소, 그리고 고혈압, 골다공증, 전립선질환, 우울증, 요실금, 갱년기장애 등의 질병 예방 및 노화 방지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먹으면 300살이 넘도록 살 수 있다는 약재

- 정지천
- 동국대 분당한방병원 내과 과장
- E-mail : kyjjc1931@naver.com
- 1985년에 동국대학교 한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부속한방병원에서 ..
허균은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강릉에서 지낼 때 양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던 중에 태화현(太和縣)에서 임세속(任世續)이라는 노인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자기 나름대로의 양생술(養生術)을 깨닫고 ‘임노인 양생설(任老人 養生說)’이란 수필을 지었습니다. 허균이 임노인을 만난 것은 중국 송나라의 소동파(蘇東坡)가 강남의 노인을 만나 양생법을 들은 것과 비슷합니다.
‘임노인 양생설’에 나오는 임노인은?
임노인은 113세가 되었는데도 살결이 어린아이 같으며 얼굴에 잘 익은 대춧빛이 나서 50세 남짓한 사람 같으며 보고 듣는 것이 쇠하지 않았다. 계묘년, 1603년에 만나 보았는데, 그가 무릎을 꿇고 절하는 모습이 젊은이와 다름이 없었다. 이력을 물었더니, “젊었을 적에 갑사(甲士)로 있다가, 신해년, 1551년에 나이가 차서 명부에서 빠져 이곳에 살았다”고 했다. 허균이 묻기를, “노인장은 특별한 방술(方術)이라도 있습니까? 어쩌면 이와 같이 건강하십니까?”하니, 노인이 말하기를, “야인(野人)이 무슨 수로 방술을 지녔겠소” 하였다. 허균이 “그럼 약이라도 복용합니까?”하고 물으니, 노인이 “복용한 적이 없소”하기에, 다시 묻기를 “세상에 진정 수양을 하지 않고도 오래 수명을 누린 이가 있습니까?”
임노인이 스스로 밝힌 생활상
노인이 말하기를 “내가 어릴 때 병이 많아 일찍 쇠약해져서 어쩌다 조금만 배불리 먹고 나면 반드시 뱃속이 더부룩하였다. 그래서 매일 5홉 정도의 묵은 쌀만 먹고, 기름진 살코기며 날것 또는 찬 음식은 먹지 아니하였다. 그렇게 10여 년을 계속하니 병이 점점 나아갔다. 40세에 아내를 잃었는데, 이때는 두 아들이 장성하여 나를 봉양하기에 충분하므로 첩을 두지 아니하고 전답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줘서 그들로 하여금 번갈아가며 먹여 주도록 하였다.
그리고 겨울과 여름에는 두꺼운 갖옷과 시원한 홑옷을 형제가 교대로 마련해 주도록 한 다음 바람이 닿지 않는 으슥한 방을 골라 거처하였다. 내 두 아들이 봉양을 잘하여 성낼 일도 없고 살림살이를 애타게 걱정하지도 않으며, 일없이 조용히 앉아서 주리면 먹고 피곤하면 잠자면서 살아온 지 60여 년이 되었다. 집이 산골짜기에 있어서 날마다 삽주뿌리와 황정(黃精)을 캐 먹었다. 이러한 세월이 오래되자 눈이 점점 밝아지고, 귀가 점점 잘 들리며, 빠졌던 이가 다시 돋아나고, 다리 힘이 점점 강건하여졌다. 두 아들이 죽은 이후에도 손자 다섯이 있어 그러한 봉양을 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진기(眞氣)를 보존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내게 어찌 별다른 방술(方術)이 있겠는가?”
임노인의 생활상에 대한 허균의 분석
“내가 노인장의 말씀을 듣고 양생하는 방술을 얻었습니다. 신선이 되는 사람은 반드시 정(精)과 기(氣)와 신(神)을 보전하는 법입니다. 노인장이 다시 장가들지 아니한 것은 ‘정(精)’을 보전한 것이고, 음식물을 가리고 배부르게 먹지 아니한 것은 ‘기(氣)’를 보전한 것이며, 화를 내거나 가사를 걱정하지 아니한 것은 ‘신(神)’을 보전한 것입니다. 이 3가지가 갖추어졌으니 그 많은 수명을 누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더구나 자신의 타고난 진기를 흔들지 않고 다만 주리면 먹고 피곤하면 잠자는 것은 바로 마음을 정정(靜定)시키는 첫째 관문이며, 삽주뿌리와 황정 또한 약 중에서 상등품입니다. 노인장은 능히 그 일을 실행하고 또 능히 그것을 복용하였으니 신선이 되어 높이 올라갈 날이 어찌 멀겠습니까?
노인이 보전했다는 정, 기, 신이란?
한의학에서 우리 몸의 삼보(三寶), 즉 3가지 보물이 정(精), 기(氣), 신(神)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죽고 사는 관건이기 때문이죠. 동의보감의 양생법(養生法)이 바로 삼보를 중시하는 체제입니다. 정(精)은 인체를 구성하고 생명활동을 유지하는 기본물질로서 음식물을 먹어서 생기는 수곡(水穀)의 정과, 자손을 이어가게 하는 생식(生殖)의 정의 2가지입니다.
기(氣)는 온몸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생명활동을 유지하게 하는 근원이 되는 것으로서 무형(無形), 무상(無象)이기 때문에 직접 관찰하기가 어렵습니다. 몸속에 기가 통행하는 곳이 경락(經絡)이고, 경락 중에서 기가 많이 모이는 곳이 경혈(經穴)로서 침과 뜸을 놓고 지압을 하는 곳이죠.
신(神)은 정신 활동의 총칭입니다. 정(精)이 기(氣)를 생기게 하고, 기(氣)는 신(神)을 생기게 하며, 또한 기(氣)는 정(精)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정, 기, 신은 서로 밀접한 관계로서 하나가 존재하면 모두 존재하고, 하나가 망하면 모두 망하는 것이죠.
그 당시에 113세가 넘게 살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사실 요즘의 최고 수명이 125세 정도라고 하는데 400년 전에 113세가 넘었다는 것은 선뜻 믿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정말 그대로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일리가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임노인이 오래도록 먹었다는 삽주뿌리와 황정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많이 쓰이고 있는 한약재로서 노화 억제 효과가 밝혀졌습니다.
삽주뿌리의 효능
삽주뿌리는 한약명으로 ‘창출(蒼朮)’인데, 불로장수의 선약으로서 일명 ‘산정(山精)’이라고 합니다. 따뜻한 성질이며 쓰고 매운 맛으로 비장을 건실하게 하고 위장을 튼튼하게 하며 땀이 나게 하고 습기를 물리치는 효능이 있습니다. 뱃속을 따뜻하게 하고 체기를 물리쳐서 소화가 잘 되게 하고 입맛을 좋게 하며 구토와 설사를 멎게 하고 관절이나 근육의 통증에도 좋습니다. 특히 비만을 방지하는 작용이 큰데, 지방세포를 억제하고 비만 흰쥐의 체중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보고되었습니다.
‘임노인 양생설’에 나오는 임노인은?
임노인은 113세가 되었는데도 살결이 어린아이 같으며 얼굴에 잘 익은 대춧빛이 나서 50세 남짓한 사람 같으며 보고 듣는 것이 쇠하지 않았다. 계묘년, 1603년에 만나 보았는데, 그가 무릎을 꿇고 절하는 모습이 젊은이와 다름이 없었다. 이력을 물었더니, “젊었을 적에 갑사(甲士)로 있다가, 신해년, 1551년에 나이가 차서 명부에서 빠져 이곳에 살았다”고 했다. 허균이 묻기를, “노인장은 특별한 방술(方術)이라도 있습니까? 어쩌면 이와 같이 건강하십니까?”하니, 노인이 말하기를, “야인(野人)이 무슨 수로 방술을 지녔겠소” 하였다. 허균이 “그럼 약이라도 복용합니까?”하고 물으니, 노인이 “복용한 적이 없소”하기에, 다시 묻기를 “세상에 진정 수양을 하지 않고도 오래 수명을 누린 이가 있습니까?”
임노인이 스스로 밝힌 생활상
노인이 말하기를 “내가 어릴 때 병이 많아 일찍 쇠약해져서 어쩌다 조금만 배불리 먹고 나면 반드시 뱃속이 더부룩하였다. 그래서 매일 5홉 정도의 묵은 쌀만 먹고, 기름진 살코기며 날것 또는 찬 음식은 먹지 아니하였다. 그렇게 10여 년을 계속하니 병이 점점 나아갔다. 40세에 아내를 잃었는데, 이때는 두 아들이 장성하여 나를 봉양하기에 충분하므로 첩을 두지 아니하고 전답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줘서 그들로 하여금 번갈아가며 먹여 주도록 하였다.
그리고 겨울과 여름에는 두꺼운 갖옷과 시원한 홑옷을 형제가 교대로 마련해 주도록 한 다음 바람이 닿지 않는 으슥한 방을 골라 거처하였다. 내 두 아들이 봉양을 잘하여 성낼 일도 없고 살림살이를 애타게 걱정하지도 않으며, 일없이 조용히 앉아서 주리면 먹고 피곤하면 잠자면서 살아온 지 60여 년이 되었다. 집이 산골짜기에 있어서 날마다 삽주뿌리와 황정(黃精)을 캐 먹었다. 이러한 세월이 오래되자 눈이 점점 밝아지고, 귀가 점점 잘 들리며, 빠졌던 이가 다시 돋아나고, 다리 힘이 점점 강건하여졌다. 두 아들이 죽은 이후에도 손자 다섯이 있어 그러한 봉양을 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진기(眞氣)를 보존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내게 어찌 별다른 방술(方術)이 있겠는가?”
임노인의 생활상에 대한 허균의 분석
“내가 노인장의 말씀을 듣고 양생하는 방술을 얻었습니다. 신선이 되는 사람은 반드시 정(精)과 기(氣)와 신(神)을 보전하는 법입니다. 노인장이 다시 장가들지 아니한 것은 ‘정(精)’을 보전한 것이고, 음식물을 가리고 배부르게 먹지 아니한 것은 ‘기(氣)’를 보전한 것이며, 화를 내거나 가사를 걱정하지 아니한 것은 ‘신(神)’을 보전한 것입니다. 이 3가지가 갖추어졌으니 그 많은 수명을 누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더구나 자신의 타고난 진기를 흔들지 않고 다만 주리면 먹고 피곤하면 잠자는 것은 바로 마음을 정정(靜定)시키는 첫째 관문이며, 삽주뿌리와 황정 또한 약 중에서 상등품입니다. 노인장은 능히 그 일을 실행하고 또 능히 그것을 복용하였으니 신선이 되어 높이 올라갈 날이 어찌 멀겠습니까?
노인이 보전했다는 정, 기, 신이란?
한의학에서 우리 몸의 삼보(三寶), 즉 3가지 보물이 정(精), 기(氣), 신(神)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죽고 사는 관건이기 때문이죠. 동의보감의 양생법(養生法)이 바로 삼보를 중시하는 체제입니다. 정(精)은 인체를 구성하고 생명활동을 유지하는 기본물질로서 음식물을 먹어서 생기는 수곡(水穀)의 정과, 자손을 이어가게 하는 생식(生殖)의 정의 2가지입니다.
기(氣)는 온몸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생명활동을 유지하게 하는 근원이 되는 것으로서 무형(無形), 무상(無象)이기 때문에 직접 관찰하기가 어렵습니다. 몸속에 기가 통행하는 곳이 경락(經絡)이고, 경락 중에서 기가 많이 모이는 곳이 경혈(經穴)로서 침과 뜸을 놓고 지압을 하는 곳이죠.
신(神)은 정신 활동의 총칭입니다. 정(精)이 기(氣)를 생기게 하고, 기(氣)는 신(神)을 생기게 하며, 또한 기(氣)는 정(精)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정, 기, 신은 서로 밀접한 관계로서 하나가 존재하면 모두 존재하고, 하나가 망하면 모두 망하는 것이죠.
그 당시에 113세가 넘게 살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사실 요즘의 최고 수명이 125세 정도라고 하는데 400년 전에 113세가 넘었다는 것은 선뜻 믿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정말 그대로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일리가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임노인이 오래도록 먹었다는 삽주뿌리와 황정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많이 쓰이고 있는 한약재로서 노화 억제 효과가 밝혀졌습니다.
삽주뿌리의 효능
삽주뿌리는 한약명으로 ‘창출(蒼朮)’인데, 불로장수의 선약으로서 일명 ‘산정(山精)’이라고 합니다. 따뜻한 성질이며 쓰고 매운 맛으로 비장을 건실하게 하고 위장을 튼튼하게 하며 땀이 나게 하고 습기를 물리치는 효능이 있습니다. 뱃속을 따뜻하게 하고 체기를 물리쳐서 소화가 잘 되게 하고 입맛을 좋게 하며 구토와 설사를 멎게 하고 관절이나 근육의 통증에도 좋습니다. 특히 비만을 방지하는 작용이 큰데, 지방세포를 억제하고 비만 흰쥐의 체중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보고되었습니다.
- 삽주뿌리
세종대왕 때 편찬된 의서로서 한, 당, 송, 원나라와 고려 후기 이후의 방서들을 참고하여 편찬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이 있습니다. 수많은 질병과 그에 대한 처방 및 약물이 기록되어 있는데, 특히 이름 그대로 향약, 즉 우리나라에서 나는 약재들을 모두 모아 놓은 책이죠. 향약집성방의 ‘신선방(神仙方)’에는 삽주뿌리를 먹고 불로장생하는 방법들이 나옵니다. 삽주뿌리를 가루 내어 먹거나 오래 달여 고약을 만들어 꾸준히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온갖 병이 사라져 장수하게 된다고 하였죠. 한나라의 유향(劉向)이 펴낸 신선설화집 <열선전(列仙傳)>에도 ‘연자’라는 사람이 삽주뿌리를 먹고 300살 넘게 살면서 비바람을 마음대로 일으킬 수 있었다고 적혀 있고, 신선 방약과 불로장수의 비법을 서술한 도교 서적인 <포박자(抱朴子)>에서도 신선이 되는 선약으로 삽주뿌리가 으뜸이라고 밝히고 있지요.
황정의 효능
황정(黃精)은 만물을 기르는 황토의 정기를 듬뿍 지니고 있는 약재라고 하여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예로부터 신선들이 즐겨먹는 양식이라 하여 ‘선인유량(仙人遺糧)’, 사슴이 즐겨 먹는 풀이라 하여 ‘녹죽(鹿竹)’이라는 별명도 있지요. 황정은 뿌리를 약재로 쓰지만 줄기, 꽃, 열매, 싹 모두 먹을 수 있습니다. 황정과 비슷한 약재가 흔히 차로 마시는 둥굴레입니다.
황정은 오랫동안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주안(駐顔) 즉, 젊은 사람의 얼굴빛과 같이 얼굴을 늙지 않고 그대로 있게 하며 수명을 연장하여 늙지 않게 하고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불로초에 속한다고 보시면 되겠죠. 오장을 보하고 비위장을 튼튼하게 하며 기운을 끌어올려주고 피부를 곱게 하며 근골을 튼튼하게 하고 안색을 선명하게 하며 머리카락을 검게 하고 이빨을 다시 나게 합니다. 또한 성욕이 감퇴되기 시작한 사람에게 좋은 약재로서 정력을 왕성하게 합니다. 질병을 앓은 뒤에 몸이 쇠약하고 활력이 없으며 수척해진 경우에 좋은 보약이 되고, 폐가 허약하여 마른기침을 하는 경우에도 좋습니다.
- 황정
옥렬이라는 신선은 황정을 먹고 338세에도 청년의 모습 그대로였다고 하며, 윤첩이라는 사람은 황정의 꽃을 먹고 수백세 장수를 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나라 무제가 어느 고을을 지나다가 밭일을 하는 한 노인의 등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보고 기이하게 생각하여 물은 즉, 동안의 이 노인이 윤이 흐르는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오직 야산의 정기를 듬뿍 간직한 황정을 캐다가 떡을 만들어 먹은 것뿐"이라고 아뢰었다는 일화도 전해옵니다. 이처럼 황정은 자음(滋陰) 강장(强壯) 효능이 대단한 약재입니다. 또한 소갈, 즉 당뇨병의 치료에도 활용되어 왔는데, 동물실험에서 당뇨병이 유발된 흰쥐의 혈당을 저하시키고 고지혈증을 유도한 흰쥐의 혈액 내 지질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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