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건축

천천히, 행복하게 …가구 디자이너 신현호의 이촌동 집

해암도 2014. 9. 9. 06:36

가구 디자이너 신현호가 만든 가구를 본 적이 있다면 이 코너가 그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빈티지 조명과 부부의 이야기가 담긴 소품, 그리고 아내가 좋아하는 포스터가 어우러져 다정한 코너가 만들어졌다.

40년 된 아파트의 빛바랜 외관을 뒤로하고 내부로 들어서자 부부가 모은 물건들이 가득한 실내가 다정하게 펼쳐졌다. 가구 디자이너 남편과 감각 좋은 아내가 꾸민 전셋집 이야기.

기획 홍주희 레몬트리 기자
사진=전택수(JEON Studio)

신현호 씨는 큐어리어스 랩(www.curious-lab.co.kr)과 크래프트 브로 컴퍼니(www.craftbrocompany.co.kr), 두 개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고, 아내 이윤아 씨는 패션 브랜드의 마케팅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둘은 이탈리아 유학 시절에 만났으며, 감성과 인생관이 두루 통하는 친구 사이.

나무 가구, 황동과 만나다

날렵한 선의 테이블에 다리는 고작 세 개. 그중 하나인 황동 다리는 상판 위 스탠드 조명으로 유려하게 이어진다. 북유럽 디자인이 한국의 리빙 시장을 휩쓸면서, 비슷비슷한 가구를 여럿 보아오던 차였다. 이러한 상황에 만난 크래프트 브로 컴퍼니라는 생소한 이름이 반가웠던 건 다리 세 개 테이블에서 뚝심이 느껴졌기 때문. 한편으론 청동을 믹스하여 만든 가구들이 다정한 기운을 담고 있는 듯 보였다. “크래프트 브로 컴퍼니는 가구 디자인을 하는 저와 금속 디자이너인 이상민 씨가 함께 전시를 준비하며 프로젝트성으로 만든 브랜드였어요. 가구를 만들다 보면 금속이 필요한 부분이 많고, 또 금속으로 조명이나 오브제를 만들면 나무가 필요한 부분이 있거든요. 서로 상부상조하다가 나무와 금속, 그리고 테이블과 조명이 결합된 테이블을 생각해냈던 거죠. 테이블은 사각형에 다리 넷, 벽에 붙이는 것이란 고정관념도 깨고 싶었어요. 그래서 마름모 꼴의 테이블이 탄생했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아 아예 브랜드로 이어나가게 되었고요.” 그런데 나무 파트의 제작자이자 디자이너인 신현호 씨가 처음부터 가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고. 이탈리아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고 요트 회사의 디자이너로 일했던 그는 한국에 돌아와 다음 일을 모색하는 중에 우연히 가구 만들기 클래스를 접하게 됐다. 취미로 집에서 쓸 소품이나 만들러 갔던 공방에서 그는 나무의 매력에 쏙 빠져들었고, 이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디자인 전문가이자 컬렉터인 김명한 대표가 이끄는 aA 디자인 뮤지엄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것. 이후 자신의 브랜드 큐어리어스 랩을 론칭하고, 또 시간이 흘러 크래프트 브로 컴퍼니를 만들었으니 대학에서 가구를 전공하고 뚝딱 브랜드를 만들어 이름을 알리는 다른 이들에 비하면 조금 늦은 템포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가구가 독창적이라 주목을 받는 것은 이처럼 다양한 경험 끝에 가구를 만났던 덕분이 아닐까. 앞으로 만들고 싶은 디자인 또한 무궁무진하다고 하니, 느리게 돌아온 것이 오히려 행운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물건이 많은 이 집에서 안방도 예외가 없었다. 오른쪽에 보이는 그림은 결혼 기념 선물로 받은 커플 그림이고, 왼쪽 선반장은 남편 현호 씨가 제작한 것. 학을 접은 독특한 디자인의 조명은 국내 편집숍에서 구입한 것인데, 지금은 품절이 되었다고.

한강맨션 27평 아파트는 방 세 개, 욕실 하나, 그리고 여닫이문으로 공간이 분리되는 주방이 딸린 살뜰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거실은 부부의 취향을 한껏 드러내는 공간. 20대를 외국에서 보낸 이들답게, 마치 유럽의 아파트처럼 부부의 이야기가 있는 물건들을 자유롭게 집 안에 펼쳐놓았다.

서재에서 아내가 무려 1996년부터 모았다는 패션 잡지들을 발견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잡지 탐독하는 것으로 쌓은 감각을 패션 마케터로서 펼치고 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다리 셋 테이블이 현호 씨가 직접 제작한 크래프트 브로 컴퍼니의 제품이다.

주방의 식탁 의자는 어느 것 하나 짝이 맞는 게 없다. 찰스 레이 임스의 DSW 체어,장 프루베의 스탠더드 체어 등을 하나씩 모아서 매치한 것이기 때문. 다양한 물건과 색감이 오히려 멋스럽다 느껴지는 공간이기도 했는데, 이 모든 데코는 아내 윤아 씨의 솜씨로 완성된 것이다.


이야기 담긴 물건, 장식이 되다

가구 디자이너 신현호 씨의 집은 1970년대에 지어진 이촌동 한강맨션 아파트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최초의 중산층 아파트로 개발되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로망이 되었던 곳. 지금은 세월에 외관이 바랬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짜리 아파트이기에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집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는 시선을 가리지 않는 낮은 키의 건물과 나무들이 한가로이 위치하고 있는 풍경 모두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전세로 계약한 집이기에 개조 공사도 전혀 하지 않았다는데, 디자이너 남편과 감각 좋은 아내의 손길이 닿자 전혀 다른 공간으로 새단장되었다. “아내와 저는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만났는데 둘 다 물건 모으는 것을 좋아하고 집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다른 점이라면 저는 장난감 피겨를 모으고, 아내는 예쁜 포스터를 좋아한다는 거죠. 결혼 후 8년이 지나, 올해 초 이 집으로 이사를 할 때는 이삿짐 센터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로 물건이 많아졌지요. 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담고 있으니까, 그 어떤 예술 작품보다 의미 있는 장식품이라 생각했고 집 안에 펼쳐놓게 되었죠.” 그러니 부부의 물건들에는 하나하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거실의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포스터 중 여인이 움직이는 모습을 담은 사진은 심상치 않은 포스가 느껴지는데, 패션 브랜드의 마케팅 담당자인 아내 이윤아 씨가 행사가 끝난 뒤 버려질 뻔한 것을 가져온 것. 벽면 시트지였던 것을 액자에 담고 벽에 턱 기대니 유명 사진가의 작품 저리 가라 할 법한 액자로 탄생됐다.

윤아 씨는 잡지에서 발견한 예쁜 일러스트나 포스터를 모았다가 액자로 만들기도 하고, 테이프로 테두리를 둘러 벽면에 그대로 붙이기도 한다. 아내가 타고난 감으로 집 안을 단장한다면 남편은 손으로 뚝딱 집 안의 가구들을 재정비했다. 화장실의 오래된 수납장을 떼어낸 뒤 나무로 제작한 장을 달았고, 안방과 거실에서도 그의 손길이 닿은 가구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멋 없는 형광등을 빈티지 펜던트로 교체하자, 마흔 살 아파트의 외관에서는 떠올릴 수 없었던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공간으로 완성! 물론 오롯이 부부의 손으로만 단장을 했기에 두 달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그래서 혹자는 이야기한다. 전세로 잠깐 머무르는 집에 뭐 그리 정성을 쏟느냐고. 그럴 때마다 부부는 매일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은 집이 있다는 게 큰 행복이라고 대답한다니, 일상의 행복감을 높이는 법, 이들 부부의 방법에서 힌트를 얻어보면 어떨까.

남편이 만든 수납장으로 단장한 욕실의 모습.

윤아 씨가 20대 시절, 가족과 함께 상해에 거주할 당시 아버지가 선물로 사준 장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현관에 폭 좁은 테이블을 놓아 외출 전에 바로 뿌리는 향수를 올려두었다.

이탈리아에서 함께 바다를 건너온 빈티지 철제 장.

스메그 냉장고 위에 슬며시 올라가 있는 현호 씨의 장난감 피겨들.

                                      [중앙일보] 입력 2014.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