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프랑스 정계의 별이 된 '김종숙' - 한국계 입양아 출신인 플뢰르 펠르랭(41) 프랑스 통상국무장관

해암도 2014. 8. 28. 06:45


한국계 입양아 출신인 플뢰르 펠르랭(41) 프랑스 통상국무장관이 26일 문화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펠르랭은 2012년 5월 중소기업·혁신·디지털경제부 장관 입각을 시작으로 통상관광장관을 거쳐 이번이 세 번째 장관직이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펠르랭의 문화부 장관 임명 소식을 전하면서 “프랑스 정계의 ‘떠오르는 별’”이라고 보도했다. 프랑스에서 한 해 문화 예술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570억유로(약 76조원)로, 프랑스 자동차 산업의 7배, 전자통신산업의 2배가 넘는다. 프랑스 전체 근로자의 2.5%인 67만명이 문화예술에 종사한다. 지난해 문화부 예산은 73억유로(약 9조7000억원)였다.
2013년 3월 26일 오후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안리더십컨퍼런스 제1세션에서 플뢰르 펠르랭 프랑스 장관이 연설하고 있다/조선DB
2013년 3월 26일 오후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안리더십컨퍼런스 제1세션에서 플뢰르 펠르랭 프랑스 장관이 연설하고 있다/조선DB
펠르랭이 연이어 장관에 임명된 건 업무 추진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펠르랭은 2012년 처음 장관에 취임한 뒤 200억유로(약 26조7000억원)를 투입해 프랑스 전역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보급했다. 파리에 대규모 IT 단지를 건설하고, IT 창업을 지원하는 ‘프렌치 테크’ 프로젝트를 추진해 호평을 받았다. 지난 4월 그가 중소기업·혁신·디지털경제부 장관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기업인들을 중심으로 인터넷에서 ‘플뢰르 지키기’ 캠페인까지 벌어졌다. 결국 펠르랭은 퇴임 일주일 만에 통상관광 장관으로 재입각했다.

그는 1973년 출생 직후 서울 거리에서 발견돼 생후 6개월 만에 프랑스로 입양됐다. 그에게 한국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의 양부모는 한국에서 직접 펠르랭을 데리고 프랑스로 돌아갔다. 양아버지 조엘 펠르랭은 원자물리학 박사였다. 국립과학연구소(CNRS) 연구원이었던 조엘은 은퇴해 의료기기 회사를 차렸는데 좌파적 성향이 강했다. 양부모는 펠르랭이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잊지 않기 위해 고아원에서 지어준 ‘김종숙’이라는 한국 이름을 프랑스 이름과 함께 호적에 남겼다. 펠르랭은 파리 근교에서 여동생과 함께 컸는데, 그 역시 양부모가 한국에서 입양한 아이였다.

펠르랭은 남들보다 2년 빠른 16세 때 바칼로레아(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명문 상경계 그랑제콜인 에섹(ESSEC·고등경영대학원)을 거쳐,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국립행정학교(ENA) 등 프랑스 최고 명문 학교를 졸업했다. ENA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펠르랭은 26살부터 감사원에서 문화·시청각·미디어·국가교육을 담당하는 관료로 일했다.

그는 “공부를 잘한 특별한 비결은 없다”며 “부모님이 지적 호기심과 경제적 자립심을 갖도록 교육을 했다”고 말했다. 또 “양어머니 애니는 학교 교육은 내가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당부하곤 했다”며 “어머니의 가르침이 학업에 대한 강력한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펠르랭은 “양부모는 내가 아시아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않게 했다”고 했다.

펠르랭은 2002년 리오넬 조스팽 사회당 대통령 후보의 연설문을 작성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올랑드 대통령의 전 동거인이기도 한 세골렌 루아얄이 2007년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는 미디어 담당으로 조력자 역할을 했다. 그는 당적을 초월한 소수 민족 출신 여성 엘리트 정치인들의 모임인 ‘21세기 클럽’의 멤버로 가입해 2010년 회장직까지 맡았다. 당시 올랑드 대통령과 맺은 인연으로 그는 2012년 올랑드 대선 캠프에서 IT정책 보좌관을 맡았다.

지난해 3월 조선일보 주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석하며 입양 후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했다. 당시 그는 “한국의 앞선 IT가 프랑스에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과 프랑스 관계 증진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펠르랭은 참사원 공무원인 남편과 여덟 살짜리 딸을 두고 있다.
입력 : 2014.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