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판사와 작가의 이중생활 - 정재민

해암도 2014. 8. 17. 06:38


정재민 작가의 본업은 판사다. 주중엔 판사로, 주말엔 작가로 글을 써온 그가 올해 세계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 <보헤미안 랩소디>는 그가 고인이 된 어머니에게 바치는 송가다.


	[여성조선] 판사와 작가의 이중생활

정유정, 김별아, 백영옥을 배출한 세계문학상이 올해 두 명의 공동수상자를 발표했다. 이 중 <보헤미안 랩소디>로 수상을 거머쥔 정재민 작가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현직 대구가정법원 판사로, 글쟁이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음 직한 그는 어쩌다 작가가 되었나.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주말부부의 삶을 살고 있는 그를 만났다.

판사와 작가, 두 개의 페르소나

소설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인공은 하지환이다. 그의 직업은 판사. 3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사기 진료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피의자로 의심되는 의사를 사기죄로 고소하며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병원과 언론, 검사와 의사의 끈끈한 유착은 진실을 은폐하기 바쁘다. 소설은 이 같은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가 싶더니 이내 정신분석으로 방향을 튼다. 무너질 줄 모르는 견고한 벽 앞에 정신과 상담을 받는 주인공은 무의식에 몸을 숨긴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 이 소설은 작가가 십여 년 전 세상을 뜬 어머니의 일기장을 토대로 개작한 작품이다.

“(멋쩍어하며) 제가 글 쓰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쓰고 싶을 때 쓰고 아닐 때 안 쓰면서 조금씩 써왔어요. 이 작품은 10년 전 세계문학상에 한 번 출품한 적이 있어요. 그때 떨어지고 한동안 묵혀놨다가 이후 정신분석도 받고 사기꾼 의사도 만나면서 내용을 보완해 다시 출품하게 됐어요.”

세계문학상 1회 때 출품했다가 보기 좋게 떨어진 작품을 몇 년 만에 다시 손봐 내놓은 것이 꼭 10년 만. 판사로, 작가로 이중생활을 해온 그는 드디어 어머니의 글을 세상 앞에 내놓는 데 성공했다.

인생의 8할을 소위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정재민 작가는 서울대 법대 재학 중에 사시에 합격했고 사법연수원 생활을 마친 뒤 판사로 임용됐다. 그런 그가 본업에 충실하기도 모자랄 시간에 소설을 쓰겠다고 하니 주변의 반응은 냉담했다.

“주변에서 다 말렸어요. 뭐 하는 짓이냐, 본업에 더 충실해서 판사로 성공하고 출세할 생각을 하라고요. 심지어 우리 집사람은 ‘당신은 글 쓰는 데 타고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까지 했으니까요.”(웃음)

수상작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해 소설가 구효서는 ‘무엇보다 정신분석학을 이야기에 끌어들였다는 점이 이 소설의 인상을 강렬하게 한다. … 이 판사 작가에게 이제는 죄와 벌, 역사와 사회에 대한 베른하르트 슐링크적인 전문성을 기대해도 좋겠다’라고 평했다. 그가 가장 인상적으로 꼽는 평 이기도 하다.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누군가 찾아봤어요. 알고 보니까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인 <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를 쓴 작가더라고요. 딸, 아내와 불화를 빚는 남자가 주인공으로 나와요. 그 남자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자신의 과거 때문에 누구와도 깊게 소통을 하지 못하죠. 소설은 정신분석을 통해 주인공 남자가 치유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요. 독일 작가 소설로는 최초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했다고 해요. 39개국에 번역이 되었을 정도로 아주 히트를 했고요. 근데 그 작가가 판사였대요. 물론 그 사람의 글은 제 글보다 수천 배 좋겠지만 (비교를 해주니) 기분은 좋더라고요.”(웃음)

이미 눈치챘겠지만 소설 <보헤미안 랩소디>에는 정신분석이 주요하게 작용한다. 작가는 자신의 정신분석 상담 경험을 소설에 무리 없이 녹여냈다.

“언젠가 집사람이 심리학 전문서적들을 읽고 있길래 저도 한번 봤어요. 근데 재밌더라고요. 정신분석학이 100년 전에 탄생한 짧은 학문이고 그만큼 논란도 많지만, 어쨌든 문학이나 의학 등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봐요. 어느새 ‘나도 한번 상담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싸지만 내친김에 해보자 해서 했죠.”

무의식 속의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은 작가로 하여금 몰랐던 자신을, 타자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그의 말마따나 “작가든 판사든 결국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빛바랜 오랜 일기는, 이렇게 아들의 경험과 상상이 보태어진 끝에 세상에 공개됐다.

“쓰면서 (어머니) 생각도 많이 났고 눈물도 흘렸죠. 근데 이제는 떠나보내야겠다 싶어요. 어머니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정신분석학적으로 인간은 부모의 영향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해요.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조차 50대가 넘어서 아버지가 죽고 난 뒤에야 자신이 아직까지 아버지의 영향에서 못 벗어났다는 걸 깨달아요. 저 역시 그랬지만 이제는 많이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고 독립한 것 같아요. 이제야말로 홀가분한 느낌이에요.”

서울대 법대 사법연수생, 글쓰기로 결심하다

그에게 어머니의 존재가 유달리 컸던 데는 이유가 있다. 포항 촌구석에서 자란 그는 동네에서 손에 꼽는 대학 졸업자였다. 게다가 그 대학은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서울대 법대. 암으로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한 어머니의 ‘거부할 수 없는’ 바람이기도 했다.

“제가 중학생 때 어머니가 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시작하셨어요. 그래서인지 집이 편하진 않았어요. 집에 가면 늘 아픈 엄마, 그래서 더더욱 예민한 엄마가 있었으니까요. 어머니는 책에도 나오다시피 병에 걸리셨을 때부터 ‘너는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 법대를 가 판검사 돼서 나의 한을 풀어달라’고 하셨어요. 그 말이 귀에 메아리치듯이 큰 강박을 주었던 것 같아요. 내 맘대로 하고 싶어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픈 엄마를 보면 그럴 수가 없었어요.”


	[여성조선] 판사와 작가의 이중생활
책에 엄마의 기대나 바람이 실제보다 과장되게 묘사되어 있지만, 그가 받은 압박이 어마무시하게 컸던 것만은 사실이다.

“결국 고등학교도 엄마가 원하는 학교로 갔어야 했어요. 대학도 경제학과나 미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바람으로) 별 뜻도 없는 법학과에 가게 됐고요. 법학은 너무 답답하고 재미없을 것 같았거든요.(웃음) 그러면서 답답하니까 소설을 조금씩 쓰기 시작했어요.”

그때가 대학교 3학년 무렵이다. 독문과 수업 중 교수가 건넨 한마디는 소설을 대하는 그의 시각 자체를 바꾸어버렸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읽었어요. 그때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나중에 대학 가서 독문과 교수님 수업을 듣다가 생각이 나 물어봤더니, 그게 바로 소설이래요. 헤르만 헤세는 소설지상주의자인데, 그 이유는 소설에는 모든 사상문학, 사상, 예술, 철학, 음악, 종교가 다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요.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부끄럽지만 소설은 그냥 재미로 읽는 거라고만 생각했지 그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정말 소설에는 다 들어갈 수 있더라고요. 나도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조금씩 쓰기 시작하게 됐죠.”

그러던 차에 사법연수생 시절 쓴 단편이 첫 호응을 얻었다.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는데 마침 행정자치부 문예대전이 생겼어요. 그때 장려상을 받았어요. 날아갈듯이 좋더라고요. 맨날 남들이 좋다는 것, 시키는 것만 하다가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서 얻은 결과니까요. 비록 장려상이지만 인정을 받았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그때 기분은 하… 사법시험 붙었을 때보다 더 좋았어요.”(웃음)

이후 “끔찍했던” 사법연수원 시절을 바탕으로 쓴 장편 <사법연수생의 짜장면 비비는 법>이 KBS 라디오극장 극화로 1달간 방송되기도 했다.

“‘흑역사’라고 하죠.(웃음) 그 책에도 표현했지만, 지우고 싶은 과거예요. 고시 공부는 나 혼자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면 되거든요. 근데 연수원은 맨날 숙제 내주고 시험 치고 한 반에 60명씩 모아놓고 서로가 서로를 관찰하면서 경쟁해요. 등수도 1등부터 800등까지 매겨버리니까 매일이 경쟁이에요.”

지독한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은 유일하게 글쓰기였다.

“힘들면 술 마시고 놀면서 스트레스를 풀듯이 소설을 썼어요. 그때 교수님이나 동료들이 다 말렸죠. 공부나 열심히 해서 점수 잘 받고 좋은 데 임관할 생각을 하라고요. 근데 그런 게 너무 싫더라고요.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이 가치관이 다르고 저마다의 매력이 있는데, 왜 사회는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성공을 바랄까. 1등이 아니면 인정해주지 않잖아요. 근데 그 1등도 몇 년 지나면 2등, 3등으로 추락해요. 돈 많고 학벌 좋은 사람은 그것만 보이겠죠. 근데 사람은 전부 다 그런 매력으로만 사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 것에 대한 반감이랄까, 나의 고유 본성을 지키고 싶은 방어랄까, 그런 게 소설(을 쓰는 이유)이기도 해요.”

연수원에서도 꽤 괜찮은 등수를 유지한 그가 일부러 지역 법관에 지원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대학에서 고시 공부, 연수원에서 시험… 여태껏 너무 바쁘게 살아왔는데 이젠 좀 인간답게 살고 싶더라고요. 판사들이 너무 바빠요. 의사가 1분 만에 환자 보듯이 기계처럼 후다닥 판결문 찍어내는 건 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람도 오래 보고 책도 좀 읽고 싶었거든요. 판사 1~2년 하더라도 그렇게 해보자, 그러려면 지방에 있어야 되겠다, 해서 내려왔어요.”

고향인 포항에서 판사직을 시작한 그는 현재 대구가정법원에서 근무 중이다. 바쁜 건 어쩔 수 없지만, 소신대로 여유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지속 가능한 작가질’ 할래

앞서 언급했듯이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인공 이름은 하지환이다. 작가가 2009년 <독도 인 더 헤이그>라는 소설을 낼 당시 사용한 필명이기도 하다.

“저는 인간이 매우 다면적이라고 생각해요. 회사에는 동료의 모습이 있고, 집에 가면 아버지의 모습, 자식의 모습, 남편의 모습이 있죠. 인간은 여러 가지 페르소나를 갖고 살아요. 어떤 사람은 페르소나가 진정한 자기 자신과 일치해야만 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판사라면 법원에서나 집에서나 늘 도덕적이어야 한다고요. 그렇지 않으면 위선이라고 말하죠. 근데 전 판사로서 법원에 설 때만 반듯하고 실생활에서는 남들과 똑같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건강한 거 아닐까요?”

그는 다시 한 번 페르소나의 의미를 짚고 넘어갔다.

“판사일 때 도덕적인 건 판사라는 페르소나에 충실한 거라고 봐요. 연기자가 연기할 때 배역에 충실하면 되지, 실생활에서도 그 배역처럼 살아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한쪽에는 도덕적인 페르소나, 다른 한 쪽에는 비도덕적인 페르소나가 있을 수 있고 그건 당연한 거거든요. 그래야 ‘나는 나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자존감의 붕괴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그게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것 중 하나고요. 저 역시 글을 쓸 때는 판사와 다른 페르소나가 있어요. 그래서 하지환이라는 필명을 썼어요.”

근데 왜 이번 소설에서는 필명 대신 본명을 썼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 압권이다.

“주변에서 자꾸 ‘왜 이러냐, 너 정재민인 거 다 아는데 유치하다’ 그래요. (좌중 폭소) 가명까지 써가며 글 쓰는 걸 잘난 척하냐고 삐딱하게 보는 사람도 많고요. (이번에 본명을 쓴 건) ‘알았다, 그럼 정면돌파할게’라는 선언이기도 해요. 이제 하지환이라는 필명을 안 쓴다는 생각에서 소설 속 주인공 이름으로 넣어버렸어요.”

앞으로도 본업인 판사에 매진하되 짬짬이 글을 쓸 거라는 그는 작가로 더 욕심낼 계획이 없다. 어떠한 강박도 마감에 대한 부담도 없이 즐기면서 취미 삼아 쓸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고 싶어서다.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밴드의 목표가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이에요.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제가 이걸로 대단한 작가가 돼서 상을 받거나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전혀 관심 없어요. 일단 저를 위해서 쓰는 거예요. 저의 치유와 유희를 위해서요. 저는   저한테는 글 쓰는 일이 제 고유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에요. 제가 만약 성공했다면, 그게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생각해요.”  

  • 취재 김가영 기자 조선: 2014.08.13

  • 사진 신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