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탈북 청소년 '그룹홈' 8년 김태훈씨]

해암도 2014. 7. 24. 16:49


탈북자는 우울? 이렇게 밝은 '가족'도 있다.

부모 없거나 형편 어려운 9명 한집에… 16개월 밀착 촬영한 다큐 오늘 개봉
"사랑과 보살핌 받아야 무시 안 당해… 전교 회장까지 배출… 감격적 순간
어렵게 찾은 행복, 더 소중히 생각"

2004년 1월 김태훈(39)씨는 하나원(탈북자 교육기관)에서 알게 된 탈북 모자(母子)의 집에 방문했다. 어머니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지방에 갔고, 여덟 살 하룡이만 불 꺼진 집에서 TV를 켜놓은 채 잠들어 있었다. 그 뒤 김씨는 혼자 있는 아이를 자주 찾았다. 어느 날 "자고 가면 안 돼?" 묻는 아이에게 그는 자기도 모르게 대답했다. "알았어. 짐 챙겨서 올게."

그 후 김씨는 어머니의 동의를 얻어 하룡이와 함께 살았다. 그가 탈북 청소년을 돌본다는 소식을 듣고 탈북 과정에서 부모를 잃거나 경제 사정 때문에 부모와 살 수 없는 탈북 청소년 9명이 그의 집으로 오게 됐다. 김씨는 다니던 어린이책 출판사를 그만두고 2006년 탈북 청소년 그룹홈을 운영하기로 했다. 이름은 '가족'. 아이들은 김씨를 '삼촌'이라고 부른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 자택에서 찍은 탈북 청소년 그룹홈의 ‘가족’ 사진. ‘가족’을 이끄는 김태훈(뒷줄 맨 오른쪽)씨는 “가장 어려운 것이 아이들 밥 짓기”라고 했다. 김도현(뒷줄 맨 왼쪽)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 가족’엔 김태훈씨가 밥 짓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 자택에서 찍은 탈북 청소년 그룹홈의 ‘가족’ 사진. ‘가족’을 이끄는 김태훈(뒷줄 맨 오른쪽)씨는 “가장 어려운 것이 아이들 밥 짓기”라고 했다. 김도현(뒷줄 맨 왼쪽)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 가족’엔 김태훈씨가 밥 짓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덕훈 기자

김씨와 그룹홈 '가족'을 다룬 다큐멘터리 '우리 가족'(감독 김도현)이 오늘(24일) 개봉한다. 지인을 통해 김씨의 이야기를 들은 김도현(42) 감독이 2012년 6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1년 4개월 동안 서울 정릉동에 사는 '가족'을 카메라에 담았다. 김 감독은 "일단은 탈북 청소년들과 사는 총각이 누군지 궁금했다"고 했다. 김씨는 "매체에서 보여주는 탈북자는 불쌍하고 우울하다. 이렇게 잘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 촬영에 응했다"고 했다.

김 감독은 "아마 의심을 가진 이도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초기의 탈북 청소년 그룹홈은 오해를 자주 받았다. 대부분 '종교시설'이 운영하기 때문이다. 지역 경찰서는 혈연관계도 아닌 미성년자들을 데리고 사는 김씨를 '앵벌이 왕초'라고 의심했다. 아들이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을 꾸리길 바랐던 김씨의 어머니는 2년간 연락을 끊었다. 당시 김씨를 조사했던 형사는 이제 그룹홈 후원자가 됐고, 어머니는 그룹홈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낸다. 어머니는 "그룹홈에 처음 찾아간 날, 라면 한 번 안 끓여본 내 아들이 아이들을 위해 밥 짓고 빨래를 하는 모습을 보니 말이 안 나와 눈물만 흘렸다"고 했다.

그룹홈에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있다. 김씨는 "아이들은 탈북 전까지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중학 2~3학년이 여기 와서 구구단을 배운다. 통계상으로도 탈북 청소년 10명 중 한두 명만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친다"고 했다.

아이들의 '고졸'을 목표로 한 김씨의 노력은 여느 '극성 엄마' 못지않다. 하룡이가 친구들에게 "전쟁을 일으킨 주범"이라고 놀림 받으며 맞고 다녔을 때 그는 학교에 가서 항의했다. 학급회장에 출마하려는 하룡이를 담임교사가 제지했을 때 김씨는 더 이상 학교를 찾아가지 않았다. 대신 소풍 때 담임교사의 5단 도시락을 직접 쌌고, 그 뒤 하룡이는 학교에 적응했다.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아무도 업신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김씨는 학교 행사를 쫓아다니며 교사·학부모들과 얼굴을 익혔고, 전교 학부모회장과 학교 운영위원을 맡았다. 결국 그룹홈에 있는 한 아이가 지난해 중학교 전교 회장에 당선됐다. 김씨는 "탈북 청소년이 전교 학생회장이 된 건 전국에서 처음일 것"이라며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이었다"고 했다.

러닝타임 90분인 다큐멘터리에서 아이들끼리 싸우거나 아이들과 김씨가 갈등을 겪는 모습은 한 번도 안 나온다. 김씨가 아이들에게 시험 공부 하라며 등짝을 치거나 채소를 많이 먹으라고 잔소리하는 게 전부다. 10대 남자아이 아홉 명이 사는 집치고는 평화롭다. 김 감독은 "1년 반을 지켜봤지만 싸우거나 사이가 나쁜 아이들은 없다. 서로 감정을 다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고 했다. "탈북까지 해서 어렵게 새 가족을 찾은 아이들이라 그런 것 아닐까요? 이 행복이 깨질까 봐 소중하게 다루는 것 같았어요."                                         변희원 기자 조선 : 2014.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