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무법인 ‘이촌’ 정주현 대표변호사 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저 등을 다 바꾸면 소형 화력발전소 두 개를 짓지 않아도 됩니다. 한여름이면 전력난으로 몸살을 앓는 우리 입장에서는 전력을 아낄 수 있는 지름길이 있는 셈입니다.”
정주현(50) 변호사가 가리킨 것은 사무실 창밖의 가로등이었다. 지난 6월 27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길거리 가로등을 LED등으로만 다 바꿔도 전력난 해소에 획기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발광 다이오드(light emitting diode)로 불리는 LED등이 기존 등에 비해 수명이 길고 전력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하지만 전국에 가로등이 280만개(골목의 보안등 포함)나 있고 이를 모두 LED등으로 바꿀 경우 전력 감소 효과가 엄청나다는 것은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다.
정 변호사는 “지자체를 통해 알아본 바로는 전국적으로 도로의 가로등 130만개와 골목의 보안등 150만개 등 모두 280만개의 등이 설치돼 있다. 이를 모두 LED등으로 바꾸면 50~70% 전력 감소 효과가 있어 매년 가로등에서 112만3000㎿h, 보안등에서 64만8000㎿h의 전력을 아낄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는 평택 화력발전소 1, 2, 3, 4호기 전체에서 생산하는 전력량의 49%에 이르는 막대한 양”이라고 강조했다.
정 변호사는 서울 서초동에서 법무법인 ‘이촌’을 운영하는 평범한 변호사지만 LED에 대한 그의 남다른 관심에서 짐작하듯 최근 변호사로서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일을 시작했다. 법무법인과 별도의 법인(삼진)을 설립해 전국의 가로등을 LED등으로 교체하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평소 전력난과 그 해결책에 관심이 있던 차에 가로등을 LED등으로 교체하는 사업이 지지부진하다는 사실을 접하고 아예 본업과는 다른 ‘샛길’로 빠진 것이다. 그는 “정부에서 2020년까지 모든 공공기관의 조명을 LED등으로 설치하도록 정하고 있으나 LED등 교체는 지지부진한 실정”이라며 “LED를 매개로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사업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의 말대로 LED는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미래산업이다. 일자리 창출 등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기대하는 분야다. 정부가 지난 6월 개정 고시한 ‘공공기관 에너지 이용 합리화 추진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2013년부터 가로등, 보안등, 터널등의 도로조명시설을 신규로 교체할 때는 30% 이상을 LED 제품으로 설치해야 한다.
이 비율은 2015년부터는 60% 이상, 2017년부터는 100%로 올라간다. 정부의 연도별 LED 보급 목표에 따르면, 2013년 신규 건축물을 포함해 전체 건축물의 40%를 시작으로 2020년에는 모든 공공건축물에 100% LED등이 보급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는 목표치일 뿐 현실은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관리과의 한 관계자는 “2만개 공공기관에 공문을 보내 LED등 설치를 권하고 있지만 가까스로 목표치를 쫓아오는 정도”라며 “특히 가로등을 관장하는 지자체와 도로공사 등은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기존 등을 교체하는 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에서도 2020년까지 모든 공공기관의 등을 모두 LED등으로 설치한다는 목표는 설정해 두고 있지만 아직 LED등의 단가가 높아 쉽지 않은 과제”라고 했다. 에너지관리공단이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LED등 교체, 설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전국 2만개 공공기관에 공문을 보냈지만 회수율이 낮아 구체적인 실태 파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실제 LED등은 기존 등에 비해 전력 효율이 높고 수명이 길지만 가격이 비싼 게 흠이다. LED등은 삼파장 전구 대비 수명은 5배, 60% 절전 효과가 있으며, 백열등 전구 대비 수명은 50배, 87%의 절전 효과가 있다. 하지만 개당 가격이 100만원 정도인 기존 가로등에 비해 LED 가로등은 30% 정도 비싸다. 가로등의 설치와 유지를 맡는 기초자치단체로서는 빡빡한 살림에서 선뜻 LED등 교체를 위한 예산을 할애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 변호사가 착안한 것은 LED등으로 교체할 경우 지자체들이 당장 전기료를 아낄 수 있다는 점이다. 지자체로서는 LED등 교체로 새로운 재원이 생기는 셈이다. 정 변호사는 “일단 민간 자본을 유치해 우리가 지자체의 기존 가로등을 LED등으로 교체해 주고, 그 비용은 전기료 절약액으로 점차 상환받으면 지자체들이 별 부담 없이 LED등으로 교체할 수 있다”고 자신의 사업구상을 설명했다.
전기료 절약뿐 아니라 LED등은 기존 등에 비해 수명도 길기 때문에 지자체로서는 유지·관리비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태양빛과 비슷한 LED등은 조도가 높아 설치 시 주변이 밝아지는 등 환경개선 효과도 있다.
LED등 설치로 아낄 수 있는 전기료는 구체적으로 얼마나 될까. 가로등과 보안등을 LED등으로 바꾸면 연간 등 한 개당 1296㎾h, 280만개 전체로 따지면 177만1200㎿h의 전기 절감량이 발생한다. 이를 현재의 전기요금으로 계산하면 1769억원에 이른다는 게 정 변호사의 계산이다. 현재 가로등은 쓰는 전기량에 따라 요금을 내는 종량등, 보안등은 정액등으로 요금이 산정돼 있다. 한국전력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가 가로등, 보안등의 전기요금으로 낸 돈은 2011년 기준 2742억원(사용량 314만5400㎿h)에 이른다.
가로등, 보안등 전력 사용량과 이에 따른 전기요금은 2002년의 경우 1374억원(207만5900㎿h 사용량) 정도였으나 매년 가로등 보안등 설치가 늘어나면서 사용량과 전력요금도 증가해 왔다. 정 변호사는 “기존 가로등을 LED등으로 바꾸면 지자체들은 기존 전기요금의 절반 이상을 줄일 수 있다”며 “LED등의 경우 보통 수명보증기간이 5년인데 이 5년간의 전기 절감양을 돈으로 계산하면 9777억원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LED등으로 교체하면 전기료 절감액 이외의 추가 절약 요인도 생긴다는 게 정 변호사의 주장이다. 기존 가로등의 경우 잦은 고장, 전구 교체 등으로 유지·보수비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 정 변호사가 지자체를 통해 파악한 바로는 가로등은 연간 660억원, 보안등은 500억원 정도의 유지·보수비가 1년 예산에 잡혀 있다. 하지만 LED등으로 교체할 경우 이런 유지·보수비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게 정 변호사의 주장이다.
연간 전기요금 절감액 1769억원에, 유지·보수비 1164억원까지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연간 2934억원의 절감액이 발생하고 이를 수명보증기간인 5년치로 환산하면 무려 1조5877억원의 돈을 아낄 수 있다고 한다. 정 변호사는 “우리의 기본적인 사업구상은 이 절감액 1조5877억원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방식으로 사업비를 조달해 LED등으로 교체해 준 후 5년간 지자체로부터 실제 절감액을 상환받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이러한 사업구상을 바탕으로 제1금융기관으로부터 7000억원 규모의 대출의향서를 발급받아 놓은 상태다.
그의 주장대로 1조5000억원 정도면 전국의 가로등과 보안등을 모두 LED등으로 바꾸는 게 가능할까. 현실은 간단치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LED등의 단가를 감안하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실제 조달청 단가를 적용하면 LED등 교체 사업비는 1조5000억원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다.
LED 가로등의 경우 조달청 평균 단가가 개당 109만원, 보안등은 57만원에 이른다. 이 금액을 가로등 130만개, 보안등 150만개에 적용할 경우 무려 2조2600억원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LED등 구입비만 드는 게 아니다. 설치비(가로등 개당 11만3000원, 보안등 9만4000원)도 든다. 설치비도 280만개를 적용하면 2879억원에 이른다. 결국 조달청 단가를 적용한 전체 예상 사업비는 2조5479억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숫자다. 정 변호사가 계산한 1조5000억원 규모의 사업비로는 턱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 변호사는 “기술 개발과 규모의 경제 등으로 1조5000억원 정도의 사업비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LED등이 비싼 것은 교류를 직류로 바꿔주는 SMPS라는 컨버터 가격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요즘 기술 개발로 훨씬 저렴한 부품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실제 우리와 업무협약을 맺은 대성엔텍이라는 조명회사는 이 컨버터를 IC칩으로 만들었습니다. 저희들 계산으로는 조달청 가격인 109만원이 아니라 그 절반 이하 가격으로 LED 가로등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현 조달청 가격인 개당 LED 가로등 109만원은 소량 납품할 때의 가격이다. 만약 지자체에서 예산을 확보해 대량 주문할 경우 단가는 확 내려갈 수 있다. 정 변호사의 계산으로는 지자체가 예산을 확보해 가로등, 보안등 280만개를 바꿀 경우 1조9286억원이면 설치가 가능하다. 정 변호사는 여기서 가격을 더 내릴 수 있다고 자신한다. “대량 납품으로 규모의 경제 효과까지 기대하면 가로등은 개당 30만원, 보안등은 20만원대로 납품이 가능합니다. 이럴 경우 전체 사업비는 1조3314억원이면 충분합니다. 당초 계산한 전기료, 유지·보수비 절감액에 기초한 사업비 1조5877억원 보다 훨씬 돈이 덜 드는 겁니다. 이 차액으로 금융조달비와 수익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정 변호사는 “금융조달 비용을 제외하고 수익은 최소화해 공익 목적을 위해 이 사업을 벌이자는 게 내 취지”라며 “5년 보증 기간 동안 비용을 회수하고 그 후는 LED등의 소유권을 지자체에 돌려줄 계획”이라고 했다. 지자체에 기부체납 형식으로 LED등의 소유권을 돌려줄 경우 LED등의 수명이 보증기간 5년을 훨씬 넘어 10년 이상도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자체로서는 LED등 구입, 설치비를 제하더라도 상당한 추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로서는 또 다른 추가 이익도 가능하다. 2015년부터 탄소거래제가 시행되기 때문에 절감된 전력을 돈으로 바꿀 수 있다. 5년 기준 전력 절감량은 가로등 561만6000㎿h, 보안등 324만㎿h 등 합계 885만6000㎿h에 이른다. 이를 CO₂ 배출량으로 환산하면 394만t으로, 이를 시장에서 거래할 경우 372억원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외국의 경우도 LED등 교체로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린 지자체들의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 정 변호사의 말이다. 미국 LA의 경우 기존의 고압나트륨등 대신 LED등으로 가로등을 교체해 연간 1600만달러 정도의 전기료 절감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해밀턴시의 경우도 기존의 메탈헬라이트등을 LED등으로 교체해 전력량을 60% 정도 줄였다. LED등 교체 후 노면 조도도 5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정 변호사는 자신의 사업 모델과 이런 외국 사례를 들고 지자체를 잇따라 접촉할 예정이다. LED등 제조업체들이 회원사로 있는 한국광산업진흥회와도 업무협약을 맺어 우수 제품 발굴 지원 등의 협조를 약속받았다. 정 변호사는 “여러 업체와 금융권이 참여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을 구성해 일을 되도록 만들겠다”며 “원전 하나 제대로 짓기 힘든 현실에서 무조건 전기를 아끼자고만 할 게 아니라 전력난을 막을 윈윈게임을 위해 모두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정 변호사는 사법시험 40회 출신으로 2001년부터 서울에서 변호사 업무를 해왔다. 정장열 부장대우 조선 : 2014.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