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건축

조상들이 에어컨 없이 여름 난 비밀, 한옥에 숨어 있다

해암도 2014. 6. 16. 09:19


뜨거운 여름이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턱턱 막혀오는 더운 계절이죠.

이런 날씨에는 찬 바람이 나오는 에어컨 앞으로 향하게 됩니다.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없던 옛날에는 어떻게 더위를 이겨냈을까요.

답은 ‘한옥’에 있습니다. 옛날 집이라 살기 불편하다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한옥에는 자연을 활용한 과학의 원리가 녹아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양식으로 만들어진 한옥은 더운 햇빛을 막아주고 시원한 바람이 드나들 수 있는 구조로 설계돼 있어요.

한옥의 비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품격 있고 우아한 분위기, 늘씬한 곡선형의 기와 지붕은 한옥의 특징 중 하나다. 하지만 한옥의 중요한 특징은 따로 있다. 기술이나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햇빛과 바람이라는 자연 환경을 과학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기후는 덥기만 한 열대나 추운 한대와 달리 사계절로 나뉜다. 계절에 따라 바뀌는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은 좋지만, 사람의 몸을 너무 덥거나 춥지 않게 하는 ‘열 환경’의 관점에서 보면 불리한 점이 더 많다. 더운 여름에는 바람이 잘 불지 않고 날씨가 습하며, 겨울에는 시베리아 벌판과 몽골 고원에서 건조한 바람이 불어와 춥다. 연교차(1년간 측정한 평균 최저·최고기온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 생활 조건을 맞추기 힘들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어려운 조건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서양처럼 기계에 의존해 자연을 제압하려 들지도 않았다. 이화여대 건축학부 임석재 교수는 “조상들은 한옥을 통해 여름과 겨울이라는 기후 요소에 순응하고 이를 활용하려 애썼다”며 “한옥은 이런 상황에 대한 모범답안”이라고 설명했다.

한옥은 햇빛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집이다. 대청(집의 가운데에 있는 마루)과 지붕은 통풍과 채광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구조로 돼 있다. 뜨거운 햇빛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바람을 집 안 가득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햇빛이 비추는 각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지구의 자전축은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햇빛이 지상에 꽂히는 각도가 계절마다 다르다. 여름에는 햇빛이 수직에 가깝게 비춰 덥고, 겨울에는 낮은 각도로 완만하게 비춰서 춥다. 북위 34~44도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태양이 내리쬐는 각도는 하지(낮이 가장 긴 24절기의 하나)에 약 70~80도, 동지(밤이 가장 긴 24절기의 하나)에는 26~36도 사이다.

이런 조건은 고층 빌딩이 많은 도시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한옥은 다르다. 햇빛 각도에 맞춰 지붕과 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처마와 벽 색깔, 천장 높이로 단열

한옥에서 햇빛을 조절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먼저 지붕의 돌출 길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처마(지붕에서 벽 바깥으로 뻗어나온 부분)를 여름 햇빛과 겨울 햇빛의 각도 사이에 위치하도록 돌출시키면 된다. 이렇게 하면 여름 햇빛은 튕겨내고 겨울 햇빛은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38도선 지역의 하지 태양 각도는 75.5도, 동지 32.1도인데 이 사이에 처마가 위치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뜨거운 햇빛은 방에 들어오지 못하고 해가 질 때까지 처마에만 머물게 된다. 여름에 모자나 파라솔을 써서 햇빛을 가리는 원리로, 한옥의 처마가 길게 늘어진 이유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란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

두 번째는 벽의 색, 창과 방의 높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처마에서 햇빛을 1차적으로 튕겨내도 간접적으로 들어오는 반사광까지 막기란 어렵다. 한옥의 벽이 흰 회반죽(실내 벽과 천장에 쓰이는 재료)으로 된 것은 이런 간접 반사광을 튕겨내기 위해서다. 겨울을 생각하면 빛을 흡수하는 검은 색이 유리하겠지만, 겨울에는 창을 통해 햇빛이 직접 들어오기 때문에 여름 햇빛을 튕겨내는 쪽을 택한 것이다.

창의 크기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해야 한다. 창이 클수록 바람이 많이 들어와 시원할 것 같지만 불필요한 햇빛을 불러올 수 있어서다. 한옥에서의 창은 문을 겸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끔 적당한 크기를 유지해야 한다. 위치도 중요한데, 밑부분은 바닥에 닿지 않게 하고 윗부분은 지붕 선에 닿지 않도록 중간쯤에 내야 햇빛을 적당히 차단하며 바람을 들어오게 할 수 있다.

방의 천장은 건물 높이에 비해 낮게 만들어져 있다. 이는 방 위 지붕 속 공간이 크다는 뜻이다. 한옥에서는 보통 그 속을 흙으로 채우거나 일부를 비워 공기의 층으로 둔다. 흙과 공기층은 열을 차단하는 단열 효과가 뛰어나 여름에 너무 덥지 않게 해준다.

1 한옥 안채에 부는 바람은 ‘바람길’을 따라 안대문과 대청을 지나 집 뒤로 빠져 나간다.▷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 대청에 앉아 있으면 마당에 모인 시원한 공기 덕분에 더위를 잊을 수 있다.

여름 남동풍 따라 만든 바람길

바람이 잘 통하는 구조 역시 한옥의 특징이다. 바람이 절실히 필요한 여름에 바람이 부는 방향에 맞춰 길을 낸 것이다. 바람이 드나드는 일명 ‘바람길’이다. 바람길은 집의 양쪽을 가로질러 일직선으로 뚫려 있다. 맞바람(사물의 진행 방향과 반대로 부는 바람)이 불 수 있도록 건물 앞 뒤로 구멍을 뚫는, 통풍·환기·순환을 이용한 원리다.

우리나라는 여름에 남동풍이 불기 때문에 여기에 맞춘 바람길을 내야 한다. 방위를 기준으로 하면 한옥은 남동향(남동쪽을 바라본 방향)을 바라보는 구조가 이상적이다. 우리나라의 집이 남향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바람길은 여성이 사는 안채에 있다. 안채의 입구에 남향으로 난 안대문(바깥채와 안채 사이에 있는 대문)에서 시작돼 안마당과 대청을 거쳐 집 뒤로 빠져나가는 길이다. 한옥의 안채는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으로, 보통 사각형 구조로 돼 겨울에는 아늑하지만 여름에는 답답할 수 있다. 이를 바람길로 극복한 것이다. 안대문을 열면 바람이 문을 통과해 마당을 가로질러 대청을 올라 방을 거쳐가기 때문에 무척 시원하다.

사랑채는 남성이 손님을 맞이하거나 공부를 하는 공간이다. 개방적인 구조로 돼 있어 바람길을 내기 쉽다. 보통 방의 앞·뒷면에 마주보도록 창이 나 있기 때문에 창만 열면 바람은 잘 통한다. 한옥의 바람길은 우리나라에서 여름에 남동풍이 지나는 자연 경로를 축소해 놓은 것과 같다. 실제 남동풍은 바다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와 만주 방향으로 빠져나간다. 간단한 자연의 통풍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복사·대류 이용해 마당에 찬 공기 채워

마당을 비워 집을 시원하게 하는 ‘찬 공기 주머니’ 원리도 한옥에 적용됐다. 바람길의 원리가 거시 기후(계절 같은 큰 시간 단위를 기준으로 한 기후 현상)를 활용한 것에 있다면, 찬 공기 주머니는 미시 기후를 활용해 만들어진다. 미시 기후란 숲과 산세, 지세와 물길 등 집의 주변을 둘러싼 개별적 상황에 따라 나타나는 기후 현상이다.

찬 공기 주머니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마당을 비워야 한다. 한옥 마당에 잔디나 꽃나무를 심지 않는 이유다. 바람의 순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다. 여름에 마당의 공기가 열을 받아 더워지면 위로 올라가 그 자리에 진공 상태가 만들어진다. 복사열의 원리다. 그러면 진공을 채우기 위한 대류 현상으로 바람이 마당으로 불어오게 된다. 시원한 바람이 대청을 거쳐 마당으로 들어오면 일부는 빠져나가 통풍이 되고, 일부는 복사·대류의 원리에 따라 찬 공기 주머니를 만든다. 한옥의 돌출된 지붕 처마는 찬 바람이 흩어지는 것을 늦춰주며 오래 머물도록 돕는다. 찬 공기는 밑으로 가라앉는 성질이 있다는 점도 한 몫 한다.

한옥의 낮은 담도 집을 시원하게 해준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담이 지나치게 높은 것을 경계했는데, 집이 담에 가려지면 가난해 보인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바람길에 대한 고려도 있었다. 바람길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치는 담은 안채의 대청 뒤쪽 담이다. 임 교수는 “집 전체에서 보면 뒷담에 해당되는데, 뒷산 나무 숲에서 오는 찬 바람이 대청을 통해 안채 안마당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글=김록환 기자 , 사진=건축도시공간연구소 국가한옥센터 제공,
도움말=이화여대 건축학부 임석재 교수

김록환 기자   입력  2014-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