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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복거일의 고백 - “내가 과학을 공부하는 이유”

해암도 2014. 5. 5. 07:19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인류가 지닌 지식은 대체로 종교, 과학, 그리고 예술로 나뉜다. 이 셋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고 그것들을 또렷이 정의하기는 무척 어렵지만, 그런 분류는 널리 받아들여지고 쓸모도 크다. 실제로 그것들 사이의 차이는 상당히 깊어서, 우리는 새로 만나는 지식이 그 셋 가운데 어느 것에 속하는지 이내 알아차릴 수 있다.
   
   16세기 초엽부터 18세기 초엽에 걸쳐 ‘과학혁명’이 일어나서 과학적 방법론이 확립되고 이어 기술의 발전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인류 문명이 빠르게 발전한 뒤로, 과학은 중심적 자리를 차지했고 다른 두 분야들에 대한 우위를 늘려 왔다. 종교와 예술은 여전히 번창하지만, 사람들의 삶을 결정적으로 다듬어내는 힘은 역시 과학과 그것의 응용인 기술이다.
   
   이 사실은 기술의 발전이 종교와 예술에 미친 영향에서 잘 드러난다. 인쇄술의 발전이 성경의 보급을 불러 개신교의 출현을 도운 일부터 텔레비전을 이용하는 설교자들(televangelists)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기술을 잘 이용한 종파들이 득세해서 사람들의 신앙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인쇄술의 보급으로 소설이 예술의 중심이 되었다가 영화와 텔레비전의 출현으로 쇠퇴하는 모습에서도 기술의 영향은 잘 드러난다. 자연히 종교나 예술 분야에서 생업을 갖거나 관심을 많이 지닌 사람들이 과학과 기술에 관한 지식을 많이 지니기는 쉽지 않다. 지식의 양은 가파르게 늘어나는데 모든 분야에서 전문화가 점점 깊어진다는 사정은 그 일을 점점 어렵게 만든다.
   
   과학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인 나로선 그런 사정이 특히 곤혹스럽다. 직업적으로 소설을 쓰는 데 필요한 능력이나 지식을 갖추고 과학에 대한 상당한 지식까지 갖추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과학소설 작가들은 대체로 자연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다. 자연과학을 먼저 공부하고서 글쓰기 기술을 얻는 편이 글쓰기 수업을 먼저 하고서 깊은 과학 지식을 얻는 편보다 아무래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사숙한 과학소설 작가들은 그런 분들이 대부분이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화학을 전공했고, 아서 클라크는 수학과 물리학을, 로버트 하인라인은 물리학을, 제임스 블리시는 생물학을 공부했다.
   
   상과대학을 다닌 터라, 나는 경제학과 경영학을 공부했다. 경제학과 경영학도 과학의 한 분야니, 이론적으로는 전공한 분야의 지식을 활용하면 되었다. 실제로 내가 갖춘 경제학이나 경영학 지식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경제학이나 경영학은 기술을 직접 발전시키는 과학 분야들이 아니므로, 과학소설을 쓰는 데는 역시 자연과학 지식이 사회과학 지식보다 당장 쓸모가 크다.
   
   게다가 나는 6·25전쟁을 겪은 마지막 세대에 속해서, 어릴 적에 과학을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상업고등학교를 다녀서 주산을 열심히 배웠지만, 과학 실험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과학 지식을 얻는 데 뒤졌고 대학에 들어간 뒤에야 비로소 정색하고 자연과학 지식을 얻으려 애썼다.
   
   내가 자연과학 지식을 얻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은 미국 과학소설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책들이었다. 아시모프는 평생 500여권의 책을 쓴 경이적 저술가였다. 내가 아는 한, 그는 수준 높은 글들을 가장 많이 쓴 저술가다. 그는 현대에 가장 널리 알려진 과학소설 작가였을 뿐 아니라 과학 지식들을 널리 알리는 저자(popularizer)로서도 큰 명성을 얻었다. 그는 물리 법칙들을 소개하면서 그런 법칙들이 어떻게 우주의 생성과 생명의 진화에 기여했는가를 설명했다. 당연히, 그의 얘기들은 쉽고 재미있고 독자들의 호기심을 북돋았다. 물리학, 화학, 우주 생성론, 천문학에 관해 내가 처음 얻은 지식들은 거의 다 그의 책들을 통해서 얻은 셈이다. 내가 그의 책들을 읽었던 시절 뒤로 반세기 동안 물리학은 크게 발전했지만, 그의 책들은 아직도 우주의 지적 탐험에 좋은 안내자들이리라고 나는 믿는다.
   
   군대에서 복무하고 직장을 얻은 뒤에야, 나는 생물학에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 읽은 생물학 책들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들은 미국 인류학자 아이슬리(Loren Eisley), 미국 진화생물학자 심슨(George Gaylord Simpson),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들인 로렌츠(Konrad Lorentz)와 프리슈(Karl von Frisch)의 책들이었다. 그 책들은 내가 일상적으로 대하는 생명현상이 얼마나 경이로운가를 깨우쳐 주었다. 1973년 로렌츠와 프리슈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을 때, 나는 무척 흐뭇했다. 내가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생물학자들의 책들을 읽은 것은 우연만은 아니었다. 헌책방의 서가에서 뽑아 든 낯선 저자의 책이 돈과 시간을 들여 읽을 만한 책이라고 판단한 것은 내 몫이었다. 낯선 저자의 책을 우연히 만났을 때, 그 책의 가치를 가늠하는 ‘지적 후각’은 지식인에겐 무척 중요하다. 그저 책을 많이 읽는다고 옳은 지식들을 많이 얻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서 자신의 지적 후각에 대한 믿음은 창조적 작업을 하는 지식인들에겐 큰 자산이다. 창조적 작업은 본질적으로 정설이나 통념을 거스르는 일이므로, 자신의 판단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비우호적인 세평을 견디면서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
   
   물리학과 생물학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얻으면서, 나는 비로소 그동안 얻은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지닌 지식들은 대체로 물리학, 화학, 천문학과 같은 물리과학(physical sciences)이 바탕이 되고 생물학 및 심리학과 같은 생물과학(biological sciences)이 그 위에 세워지고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과 같은 사회과학(social sciences)이 그 위에 세워지고 다시 그 위에 문화 현상을 다룬 인문학(humanities)이 얹혀져서 하나의 유기적 체계를 이룬다. 내가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것은 이런 지식의 체계화에 도움이 되었다. 경제학은 사회과학 분야에서 계량화에 가장 먼저 성공한 학문이며, 덕분에 경제 현상에 관한 모형을 상당히 정교한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이런 사정은 나로 하여금 일찍부터 모든 지식들을 실재의 모형으로 바라보도록 만들었고 다른 분야들에 속한 지식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일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이런 지적 관심에서 모든 지식을 하나의 모형으로 결합시키려는 야심이 자라났다. 모형의 전범은 지도이므로, 나는 차츰 지식의 지도를 그린다는 꿈을 다듬어가기 시작했다.
   
   
   내 마음속의 내 모습은 중세 말기나 근세 초기에 리스본이나 암스테르담의 부두를 서성이는 지도제작자다. 돛배를 타고 위험한 바다를 건넌 뱃사람들에게서 얻어들은 토막 지식들로 먼 미지의 대륙의 모습을 어렴풋이 짐작해서 지도의 빈칸들을 조금씩 메워 가는 허름한 지도제작자다. 정부의 인가와 지원을 받는 공식 지도제작자들과는 경쟁할 수 없지만, 그래서 생계를 꾸리는 데 별 도움이 안 되지만, 차츰 모습을 드러내는 미지의 대륙들의 모습에 매료되어 평생 지도를 그려온 사내의 모습이다.… 모든 지식들은 본질적으로 실재의 모형들이다. 일상의 토막 지식들에서 온 우주에 적용되는 법칙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식들은 실재의 모형들이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실재를 파악하도록 돕는 것이므로, 모형은 되도록 간단하고 쉬워야 한다. 지도가 모형의 전범인 것은 바로 그런 사정 때문이다. 거대하고 복잡한 3차원의 세상을 몇 가지 특질들만을 뽑아서 2차원의 종이에 그렸지만, 아니 바로 그렇게 단순화한 덕분에, 지도는 쓸모가 크다.
   

-‘복거일의 자유롭게 한걸음’에서


   
   
   실재를 가장 잘 드러낸 모형들이므로, 과학적 지식들은 이 세상을 잘 설명한다. 자연히 과학은 흥미롭다. 우주의 비밀을 드러내는 이야기들보다 더 흥미로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우리 모두 잘 아는 것처럼, 과학은 쓸모가 크다. 과학은 인류 문명을 경이적으로 발전시킨 마법이고 과학의 지속적 발전은 인류의 미래를 보장하는 강력한 부적이다.
   
   그런 과학의 큰 이점들 가운에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과학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점이다. 과학은 자연이 강요한 한계들로부터 벗어나도록 사람을 돕는다. 과학을 통해서 사람이 점점 자유로워진 것은 인류 역사의 가장 두드러진 측면이다. 먼저 나온 것은 물론 사람이 육체적 한계들을 벗어나도록 돕는 기술들이다. 갖가지 기술들 덕분에 인류는 근육의 힘에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났고 이제는 지구에서 벗어나 외계를 개척한다. 과학은 또한 사람이 인식적 감옥(cognitive prison)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지각 능력이 아주 제약되었으므로, 사람은 자기 둘레의 현상들만을 인식할 수 있다. 과학이 제공하는 기구들과 축적된 지식들을 통해서만, 우리는 세상을 멀리 그리고 깊이 살필 수 있다.
   
   덜 눈에 뜨이지만, 과학은 우리를 ‘상식의 압제’로부터 풀어준다. 일상적 경험에서 얻어진 터라, 상식은 흔히 주먹구구다. 그래도 일상에서 쓸모가 워낙 큰 까닭에, 우리는 그것이 맞지 않는 분야들에도 적용하게 마련이다. 과학의 도움을 받아야, 우리는 상식과 어긋나는 이 세상의 참 모습을 볼 수 있다.
   
   ‘상식의 압제’와 연관된 문제는 내성(內省)의 한계다. 뇌는 본질적으로 자신이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기체의 생존을 도우려고 나왔다. 그래서 유기체의 생존에 결정적인 둘레의 국지적 상황에 관한 정보들을 처리하도록 진화되었다. 뇌의 본질이 그러하므로, 종교와 철학이 전통적으로 이용해온 내성만으로는 탐구의 방향이 그릇될 수 있고 조만간 한계에 부딪힌다. 과학이 제공하는 사실적 지식의 도움을 받아야, 우리 마음은 비로소 자신과 세상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다.
   
   과학을 공부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수학이다. 갈릴레오가 일찍이 설파한 것처럼, “자연의 책은 수학적 부호들로 쓰여진다”. 그래서 수학을 모르면, 과학을 제대로 공부할 수 없다. 물리과학과 생물과학을 아우르는 자연과학은 특히 그렇다. 그래서 수학과 과학에 관한 기초 지식은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여학생들은 수학과 과학을 잘하도록 격려받지 못한다. 실은 여학생들은 쉽게 수학과 과학을 배우는 것을 포기한다. 높은 지식 수준이 요구되는 현대사회에서 수학과 과학을 잘하지 못하면, 보수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직업이나 일자리를 얻을 수 없다. ‘성적 보수 격차(gender pay gap)’에서 가장 큰 요인은 ‘일하는 어머니’의 문제지만, 여학생들이 수학과 과학을 잘하도록 격려받지 못해서 쉽게 포기한다는 사정도 한몫 단단히 한다.
   
   더구나 수학과 과학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여학생들은 뒤에 자기 자식들이 수학과 과학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자식들이 수학과 과학에 흥미를 느낄 만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길을 알지 못한다. 그들의 자식들은 어머니의 태도에서 수학과 과학이 어렵고 딱딱한 것이라는 선입견을 물려받을 것이다. 이런 차이는 가난의 대물림을 조장한다.
   
   우리 사회에서 부모들의 교육열은 무척 높다. 그러나 수학과 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높다고 할 수 없다. 젊은이들이, 특히 여학생들이 수학과 과학의 중요성에 대해 잘 인식하고 흥미를 느끼고 열심히 배우도록 하는 길을 시민들이 함께 모색하는 일은 두루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복거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