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1급 시각장애 딛고 교사 된 윤서향씨의 '행복한 도전']

해암도 2014. 4. 16. 16:47

앞 못보는 선생님의 강연… 아이들은 '꿈'을 보았다


주변 도움 없인 걷기도 힘들어 길 잃고 몇 번이나 울었던지…
괜히 대학 갔다고 후회도 했죠
더 많은 아이들 가르치고 싶어 특수학교 아닌 일반학교 택해


15일 오후 서울 강북구 국립재활원 교육행정동 강당. 76명의 중학생이 앉아 있는 이곳에 윤서향(23) 서울 삼선중학교 영어 교사가 들어섰다. 학생들 시선이 윤씨와 함께 입장한 안내견 '루시'에 잠시 머물다, 허공을 향해 흔들리는 윤 교사의 눈동자로 옮겨갔다. 1급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올해 중학교 영어교사가 된 윤 교사가 이날 지역 중학생을 대상으로 '꿈을 향한 행복한 도전'이란 제목의 특별 강연을 했다.

"오늘 강의 주제가 '행복한 도전'이지만, 솔직히 도전은 행복하지 않아요. 고통스럽죠."

안내견 루시와 함께… 15일 서울 강북구 국립재활원에서 윤서향 서울 삼선중학교 교사가 안내견과 함께 단상에서‘꿈을 향한 행복한 도전’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안내견 루시와 함께… 15일 서울 강북구 국립재활원에서 윤서향 서울 삼선중학교 교사가 안내견과 함께 단상에서‘꿈을 향한 행복한 도전’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윤동진 객원기자
윤 교사 고백에 학생들이 일제히 숨을 죽였다. 예정일보다 약 3개월 일찍 태어난 윤 교사는 날 때부터 시력을 잃었다. 주변 사람의 도움 없이는 길을 걷기도 힘들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문학교인 서울맹학교를 다녔던 초·중·고교 시절은 그나마 천국이었다. 일반 학생과 동일하게 경쟁하고 싶다는 생각에 장애인 특별전형이 아닌 일반전형으로 숙명여대에 입학한 윤씨는, '대학, 괜히 왔다'고 후회할 정도로 혹독한 시련을 맛봤다고 했다.

"여러분은 학교에서 나눠주는 교과서를 받기만 하면 되죠? 난 2월 초부터 강의에 필요한 모든 교재를 복지관에 부탁해 파일로 만들어야 했어요. 그래야 점자로 변환해 읽을 수 있으니까요.지하철로 왕복 2시간 걸리는 길을 통학할 땐 안내견 루시에게 온갖 짜증을 부리고 주저앉아 울었을 만큼 길도 수없이 잃었고요."

하지만 윤 교사는 좌절하지 않았다. 영어는 처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준 과목이었다. 윤씨는 남들보다 더 많은 영어 원서를 읽으며 준비했고, 올 초 중등 영어 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한 학급에 학생이 8명밖에 안 되는 특수학교보다, 다양한 학생을 만나는 일반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 일반 학교 교사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손으로 읽어내려간 강연문 사진
손으로 읽어내려간 강연문… 15일 서울 강북구 강당에서 시각장애인 영어 교사 윤서향씨가 ‘점자정보단말기’로 미리 적어온 강연문을 점자를 통해 읽고 있다. /윤동진 객원기자
꿈에 그리던 교사가 됐지만 그에게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수업 중 학생들의 태도를 점검하는 일부터 공문서 쓰는 일까지 만만한 일이 하나도 없다.

"공문서를 작성하는 업무관리시스템과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음성지원시스템이 충돌해 간단한 서류 하나 만드는 데도 몇 시간씩 걸립니다. 그럴 때면 눈이 안 보이는 저를 배려해 '선생님, 저희 교과서 26페이지 펴뒀어요'라고 말해주는 착한 학생들을 떠올리며 힘을 낸답니다."

이날 특강을 들은 손가희(화계중 2)양은 "포기하지 말라던 선생님 말을 평생 잊지 않고 살겠다"고 말했다.
최윤아 | 기자   입력 : 2014.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