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애자들은 누군가를 향한 성적 이끌림을 경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중 일부는 동성 또는 이성, 아니면 모든 성에 연애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동성이든 이성이든 어떤 상대에게도 성적 이끌림 못 느껴
성욕 없으면 질병?…“태어나고 죽을 때는 모두 무성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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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씨는 무성애자이지만 ‘흔한 연애 감정’은 경험한다. 남성과 여성을 두루 사랑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스스로 범성애적 무성애자라고 규정한다. 연애와 섹스를 동일시하지 않을 뿐이다.
무성애가 선천적일 수 있음을 암시하는 과학적 연구도 있다. 미국 양 연구소의 연구자들이 숫양들의 생산성을 늘리기 위해 2년 동안 실험한 결과다. 연구자들은 숫양과 발정기의 암양 두 마리, 숫양 두 마리를 일정 시간 함께 있도록 한 뒤 숫양 584마리의 ‘성적 취향’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절반 수준인 56%의 숫양만이 암양과 교미했다. 양들 가운데 9%는 숫양에게 반응을 보였고 12%는 어떤 성적인 반응도 나타내지 않았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기에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적어도 이성을 대상으로 한 성욕이 자연계의 절대 법칙은 아님을 확인한 셈이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무성애의 원인을 따지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견해도 있다.오정민(32·가명)씨는 ‘사랑하는’ 무성애자다. 무성애자라는 그녀와의 인터뷰에서 정작 가장 많이 나눈 대화 주제는 연애였다. 정민씨는 “인터넷상 분류로 ‘바이로맨틱 에이섹슈얼’(Bisexual Romantic Asexual·양성애적 무성애자)”이라고 말했다. 남성과 여성을 사랑하는 양성애자인데 성적 매혹은 느끼지 않는 무성애자다. 여러 명의 남자, 여러 명의 여자와 사귀었다.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의 만남이 가장 아픈 연애로 끝났다. 2008년부터 2년여간 사귀었던 애인은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만난 여성이었다. “아주 많이 좋아했거든요.” 그렇게 사랑하고도 이별을 예감한 것은 1년6개월이 지났을 무렵이다. 애인은 “몸을 밀착하고 있는 스킨십 자체에 엄청난 의미를 두는 친구”였다. 정민씨는 달랐다. “남의 침이 들어오는 걸 감수하고 키스하는 게 이해가 안 돼요. 섹스는 물론이고요. 그런 비위생적인 걸 감수하고 일상적으로 그런 걸 하려면 대단한 필요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니 (성적인 끌림이) 저한테 없는 게 확실해요. 대단히 필요하지 않거든요.” 로맨스 감정만으로 연애에 돌입하는, 불가해한 상태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섹스를 한다고 더 좋아진다거나 싫어진다거나 하지 않아요. 그냥 귀찮고 아프고 더럽고, 이게 다예요. 싫은데도 해야 하는 데이트 코스 같은 거죠.”‘오늘은 어떻게 거절할까’, 고민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 사람은 매일 성적인 관계를 원하고, 나는 싫어하기 때문에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좋아도 언제까지나 참을 수는 없잖아요.”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면서도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 “참다 참다 한계가 오면 끝나는 느낌”의 연애는 또 그렇게 끝났다. ‘말하지 못한 나’는 부당한 죄인이 되어야 했다. 털어놓을 공간은 마땅치 않다. 사람들은 정민씨에게 말했다. “여자는 서른 넘어서 느낀다더라.” “부모님이 혼전 순결을 강요하니?” 성애 중심 사회에서 무성애자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도 쉽게 무지의 폭력을 경험한다. 20대 후반까지 정민씨는 사람들의 말을 ‘믿고, 참고’ 기다렸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스스로 정체성 탐색에 나섰다. 정민씨는 욕망의 부재에 대한 결핍감이 없다고 했다. 유성애자는 모르지만, 결핍은 ‘있다 없으니까’ 생긴다. “키스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거나 하는 게 영화나 소설을 봐서 아는 거지, 나 혼자 살았으면 전혀 모르고 살았을 거예요.” 이렇게 누군가의 본능은 그녀에게 순전한 학습의 효과다. 이해받고 싶어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을 때 연우씨는 친구들로부터 “성적 트라우마가 있는 게 아닐까”라는 반응을 돌려받고 허탈했다. 소수자 이슈에 꽤 관용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무성애에 대한 반응은 비슷했다. “세상에 무성애 같은 건 없어. 네가 아직 미성숙한 거야.” 연우씨는 스스로를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들이 성애가 결합된 사랑을 할 거라고 예상하고, 성적 이끌림이 없는 사람을 미성숙한 존재로 여겨 교정하려는 건, 하나의 폭력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1980년대부터 ‘문제 상태’로 간주무시는 때로 혐오보다 강력하다. 막연히 독신주의자라고 생각했던 세하(26·가명)씨는 인터넷에서 무성애에 대한 정보를 처음 접하고 ‘멘붕’이 왔다. 사람들이 성애를 말할 때 그는 늘 “담벼락 너머에서 보는 느낌”이었다.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리라고 생각한 남동생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무성애자는 이러이러한 사람인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내가 그렇거든.” 남동생은 생각보다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세하씨의 성정체성을 뒤바꾼 일대 사건이, 동생에겐 시답잖은 수다로 여겨진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동생이 그걸 완벽하게 잊어버린 거예요.” 어렵게 말해도 중요한 진실로 여겨지지 않는 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