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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메달이 동메달보다 不幸한 까닭

해암도 2014. 2. 13. 06:45


시상대에서 시무룩한 銀메달 수상자, 사진으로 분석한 행복감 銅보다 낮아… 金메달 눈앞에서 놓치고 후회하는 탓
銅은 노메달 면했다고 만족도 높아
'1등 至上주의' 강한 우리나라 심각… 질타보다 따뜻한 공감으로 격려해야

이영완 산업2부 과학팀장
이영완 산업2부 과학팀장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펼쳐지는 얼음 위 드라마에 온 국민이 웃고 울고 있다. 당당히 올림픽 2연패에 성공한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 선수의 질주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마저 시원하게 뚫어줬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누군가는 힘이 부치거나 또는 운이 없어서 금메달 문턱에서 주저앉을 것이다. 그럴 땐 금메달을 딴 것보다 더 큰 박수를 보냈으면 한다. 시상대에서 은메달을 딴 선수만큼 슬픈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은메달의 딜레마에 가장 먼저 주목한 과학자는 미국 코넬대 토머스 길로비치(Gilovich) 교수였다. 그는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하계올림픽에서 1위가 결정되는 순간과 시상식 장면을 찍은 사진을 대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선수들의 행복도를 1에서 10까지 매기도록 했다.

1995년 국제학술지 '인격과 사회심리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우승자가 호명되는 순간을 찍은 사진에서 은메달 수상자는 평균 4.8을 받았다. 동메달 수상자는 7.1이었다. 시상식 사진을 보고 평가한 결과도 은메달 4.3, 동메달 5.7이었다. 물론 두 경우 모두 금메달 수상자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2006년에도 같은 학술지에 비슷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번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립대의 데이비스 마쓰모토(Matsumoto) 교수와 '월드 유도 매거진'의 밥 윌링엄(Wilingham)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2004년 하계올림픽의 유도 경기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경기가 막 끝났을 때, 메달을 받을 때, 그리고 시상대에서 포즈를 취할 때 선수 84명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를 분석했다.

예상대로 금메달 수상자는 14명 중 13명이 결승전이 끝나는 순간 바로 웃음을 지었다. 동메달 수상자도 26명 중 18명이 미소를 띠었다. 반면 은메달 수상자 가운데 경기가 끝나고 웃는 얼굴을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은메달 수상자의 표정으로 본 감정 상태는 슬픔이 43%로 가장 많았고, 모욕도 14%나 됐다. 연구진은 "은메달 수상자는 금메달 수상자보다 덜 행복한 정도가 아니라 분명히 부정적인 감정을 나타냈다"고 분석했다.

시상식에서는 은메달 수상자도 96.4%가 시상대에서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문제는 미소의 성격이었다. 금메달과 동메달 수상자는 심리학에서 '뒤센 스마일(Duchenne smile)'이라고 부르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프랑스 신경심리학자인 기욤 뒤센(Duchenne)이 처음 발견했다고 해서 붙여진 것으로, 눈과 입 주변이 모두 움직여 만들어내는 진짜 웃음이다. 반면 은메달 수상자의 미소는 부자연스러웠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가식적인 미소를 '팬 아메리카 스마일(Pan America smile)'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팬 아메리카 항공사 승무원들이 상업적으로 거짓 미소를 짓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은메달이 동메달보다 不幸한 까닭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심리학자들은 은메달 수상자의 감정을 '사후 가정 사고(counterfactual thinking)'로 해석한다. 실제로 이룬 객관적 결과를 하지 않았거나 못한 일과 비교하는 심리다. 동메달 수상자는 사후 가정 사고에서 자신과 4위를 비교한다. 따라서 '자칫하면 메달을 못 딸 뻔했다'며 안도하는 마음을 갖는다. 반면 은메달 수상자는 자신과 1위의 차이에 집중한다. '금메달이 될 수도 있었는데'라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물론 은메달 수상자의 후회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람은 후회를 통해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은메달 수상자도 분루(憤淚)를 삼키고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후회가 심할수록 더 강하고 조직적인 훈련을 해 다음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딸 수도 있다.

주위 격려도 절실하다. 이때는 여성적인 공감(共感)이 필요하다. 여자 친구가 직장 일로 화를 내면 남자들은 보통 "내가 들어보니 너도 잘못한 게 있네"라고 말해 감정을 악화시킨다. 반면 여성은 "무조건 네가 옳아"라고 하며 같은 편이 된다. 스스로 후회를 하는 은메달 수상자에게 "내가 봐도 그때 잘못한 게 많았어"라고 하면 무슨 도움이 될까.

이 점에서 우리 선수들은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사후 가정 사고의 피해를 가장 크게 볼지 모른다. 다른 나라는 올림픽에서 국가 순위를 매길 때 메달 색에 상관없이 딴 메달의 숫자를 합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금메달 숫자만 따진다. 금메달 수가 같으면 그때야 은메달, 동메달 순으로 따진다. 시상식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은메달을 목에 걸고 눈물을 흘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전 세계 이인자라는 자부심보다 1등을 놓친 상실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큰 박수를 쳐주는 성숙한 사회만이 은메달 수상자의 슬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영완 | 산업2부 과학팀장 : 2014.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