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 비거리를 늘리려면 하체가 튼튼해야 한다./조선일보DB
여하튼, 모든 골퍼들에게 ‘비거리’는 숙제다. 2013년 KPGA 한국오픈에 참가한 로리 맥길로이와 동반 플레이를 했던 국내 정상 선수들도 언론 인터뷰에서 맥길로이의 드라이버 비거리에 놀랐다는 말을 했다. 그러니 주말 골퍼들에게는 오죽하랴.
사정이 이렇다보니 골프클럽 신제품이나 골프공 광고의 핵심은 모두 ‘비거리를 많이 내준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비거리 10~20m씩 더 보내준다는 드라이버가 십 수년 이상 나왔으니, 이제는 모두가 300m 이상 날려야 되는 것 아니냐”는 씁쓸한 농담까지 나왔을까. 비거리 욕망을 마케팅에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300야드’라는 말만 들으면 귀를 쫑긋 세운다.
‘장비’를 제외하고도 비거리를 늘리는 방법은 많이 나와 있다. ‘헤드업을 하지 마라’ ‘레이트 히팅(late hitting)을 하라’ ‘하체 위주로 스윙을 하라’ ‘티(tee)높이를 높게 하라’ 등등이다. 또 클럽 피팅 전문가들은 골퍼의 스윙 습관이나 헤드 스피드, 키와 근력 등에 맞는 적절한 클럽을 사용하면 비거리를 늘릴 수 있다고 조언한다.
스트레칭 5분만 해도 드라이버 비거리 6m 이상 늘어
골프 이론은 교습가들에게 맡기고, 나는 의학적인 관점에서 비거리에 영향을 주는 두 가지를 짚어보려고 한다. 첫째는 스트레칭, 둘째는 적절한 체중이동이다.
스트레칭이 골프에서 중요하다는 것은 골퍼들이라면 다 안다. 많은 골프장에서 티오프 전 캐디가 골퍼들에게 간단한 스트레칭을 시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스트레칭은 골프 비거리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까?
대한스포츠의학회지에 실렸던 논문을 보자. 연구팀은 남자 프로골퍼 20명, 핸디캡 13 이하의 아마추어 골퍼 22명, 핸디캡 18 이상의 초보자 16명 등 총 58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프로골퍼의 나이는 29.7±6.9세, 아마추어 고수 35.1±8.7세, 초보자 34.8±7.1세 등이었다.
그리고 5분, 30분 스트레칭을 각각 한 뒤 비거리, 헤드 스피드, 관절가동범위 등을 측정했다. 스트레칭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체 실험 참가자의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204.14±45.05m, 5분 스트레칭 뒤에는 210.36±48.14m, 30분 스트레칭 후에는 216.37±47.89m로 각각 측정됐다.
스트레칭 하기 전과 비교하면 5분 스트레칭을 한 뒤에는 평균 6.2m, 30분 스트레칭 때는 평균 12.2m가 각각 늘었다.
스트레칭은 어떻게 비거리를 늘려줄까? 비거리에 영향을 주는 관절가동범위(ROM), 헤드스피드, 샷의 효율성 등으로 설명된다. ROM은 어깨와 몸통 등이 얼마나 굽어지거나 회전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척추의 가동범위를 나타내는 ‘흉추굴곡’을 보자. 스트레칭을 하기 전 프로선수는 48.40±14.23으로 아마추어 고수(41.50±12.65)보다는 7도, 초보자(39.95±13.96)보다는 9도 높았다. 이런 차이는 5분, 30분 스트레칭을 한 뒤에도 비슷하게 유지되었다. ROM이 높은 것은 몸의 유연성이 좋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프로골퍼는 아마추어에 비해 확실히 더 유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헤드 스피드는 프로선수는 아마추어 고수보다 2.91km/h 빨랐고, 아마추어 고수는 초보자들보다 8.53km/h 높았다. 프로골퍼의 드라이버 비거리는 아마추어 고수보다 평균 22.19m, 아마추어 고수는 초보자들보다 22.66m 더 길었다. 프로골퍼들이 공을 멀리 치는 이유는 근력 등 많은 요인이 있지만, 뛰어난 유연성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논문이다.
- 유연성이 좋을수록 골프 비거리는 더 늘어난다. 사진은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모습 /조선일보DB
대한스포츠의학회지에 실린 다른 논문을 살펴보자. 제목은 ‘야구 투수 시 볼 스피드에 따른 족저압 분포에 관한 분석’이다. 야구 투수가 와인드 업을 했다가 볼을 던지기까지 오른발(오른손 투수)로 옮겨졌던 체중이 왼발로 이동하는 동작이 볼 스피드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에 대한 것이다.
연구는 프로선수 6명, 아마선수 4명 등을 대상으로 평균 볼 스피드가 130km/h인 A집단과 140km/h인 B집단 등 각각 5명으로 나눠서 이뤄졌다. 이들이 투수판에서 공을 던질 때 신발 안에 깔창모양의 센서를 넣어 발바닥에 가해지는 압력(족저압)을 측정했다.
연구 결과를 보면 B집단 선수들의 오른발과 왼발바닥의 바깥 쪽에 가해지는 족저압이 A집단 선수들보다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빠른 공을 던지려면 발을 강한 힘으로 바닥에 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다리의 바깥쪽 근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다리 바깥쪽 근육의 중요성은 골프에도 적용된다. 오른손잡이 골퍼의 경우 백스윙 시 오른 다리로 체중이 이동되는데, 이때 오른다리가 바깥쪽으로 밀려나지 않게 버텨주는 것이 중요하다. 즉 ‘스웨이(sway)’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반대로 다운스윙 시에는 체중이 왼발로 이동하는데, 임팩트 순간에 왼다리가 바깥 쪽으로 밀리지 않고 잘 버텨주어야 한다. 골프 교습가들이 스윙할 때 발바닥으로 땅을 강하게 딛는 느낌을 확인해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골프 스윙에서 임팩트 순간에 왼쪽에 ‘벽’을 만들어주라고 레슨 프로들이 가르친다. 바로 야구에서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 왼다리를 강하게 지탱해주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야구에서 왼다리가 바깥쪽으로 밀리면 손에서 공을 던지는 순간 힘을 실어주지 못해 볼 스피드를 내기 어렵다. 골프에서는 임팩트 순간에 헤드 스피드가 떨어져 비거리가 줄어든다. 오른손잡이 기준으로 우~좌로 체중이동을 하는 과정에서 오른쪽과 왼쪽 다리 바깥으로 체중이 밀려나가지 않게 잘 지탱해주는 것이 야구에서는 볼 스피드, 골프에서는 비거리를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튼튼한 하체는 야구의 볼 스피드, 골프의 비거리에 큰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다. 투구동작의 체중이동은 골프의 체중이동과 똑같지는 않지만, 볼에 힘을 실어주는 동작 중에 하체로 단단하게 받쳐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골퍼들도 참고할만한 연구이다.
요약하면 비거리 증가의 ‘비법’은 유연성을 기르고, 하체를 단련하는 것이다. 비법 치고는 좀 싱겁다. 상체의 근력을 늘리는 것이 골프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프로골퍼 중에서도 근력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짱’이 됐지만, 선수 생명이 일찍 끝난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청소년 선수나 근력이 부족한 중년의 아마추어들에게 근력 운동은 바람직하다. 다만 근력 운동만 무리하게 해서는 안 되며, 스트레칭이나 요가, 필라테스 등 유연성을 길러주는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골프 시작 전에 캐디들이 시키는 스트레칭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5분만 스트레칭을 잘 해도 비거리가 확실히 늘어난다는 사실은 앞에서 나온 바 있다.
비거리를 갉아먹는 주적의 하나인 스웨이를 예방하려면 강한 하체가 꼭 필요하다. 프로골퍼들이 아마추어들보다 멀리 똑바로 칠 수 있는 이유를 한 가지만 꼽으라면 튼튼한 하체다. 박인비, 김효주, 배경은 선수 등 유명한 프로골퍼들을 여러 명 진료해본 경험이 있는데, 하체가 약한 선수는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었다. 올 겨울 유연성과 하체 운동을 열심히 한다면 내년 봄에는 장타자 소리 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입력 : 2013.12.16
- 서동원
-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동시면허
- E-mail : s9187@hanmail.net
- 더 완벽한 스포츠 손상 전문가가 되기 위해 전문의 자격증 2개 ..
- 더 완벽한 스포츠 손상 전문가가 되기 위해 전문의 자격증 2개 취득.
국내에서는 드믈게 재활의학과 및 정형외과전문의 과정 8년을 수료함.
하버드 의대에서 2년간(97년-99년)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스포츠의학 연수. 스포츠 손상 및 재활치료 전문 병원을 목표로 2004년 개원함.
2005년 의무분과위원으로 세계청소년 축구대회 팀주치의로 참가.
2012년 런던올림픽 대표팀 주치의로 약 4주간 참가. -
- 고려대학교 대학원 의학 박사
- 바른세상병원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