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줄기세포의 시계는 거꾸로 흐른다

해암도 2026. 5. 15. 12:46

그래픽=김의균

 

생체 시계 거꾸로 돌리는 '세포 회춘' 기술

 

피부 회춘시키고 흉터 줄여… 근육 재생도 촉진
iPS세포 역노화, 동물실험서 잇단 성과
 

2020년 12월 2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표지에 망막 사진과 함께 ‘시간을 되돌리다(Turning Back Time)’라는 제목을 큼지막하게 달았다. 영화나 소설에 더 어울릴 법한 이 제목은 데이비드 싱클레어 미국 하버드 의대 교수의 연구 논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버드 연구진은 유전자 3가지를 녹내장에 걸린 쥐와 늙은 쥐의 망막에 전달해 시력을 회복시켰다고 발표했다. 신경세포가 건강한 젊은 쥐와 같은 상태로 회춘(回春)한 결과였다.

 

늙은 세포를 젊게 되돌리는 영화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됐다. 싱클레어 교수가 세운 바이오 기업인 라이프 바이오사이언스는 녹내장 환자에게 6년 전 네이처에 발표한 것과 같은 방법을 적용했다. 이 회사는 올해 1월 미 식품의약국(FDA)에서 안과 질환 치료제 ER-100의 임상 1상 시험 승인을 받고 3월부터 실제 환자에게 투여하기 시작했다. 인류 역사상 세포의 생물학적 나이를 되돌리려는 시도가 실제 인간에게 적용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단순히 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몸이 젊어진다면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건강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 의료비가 줄어들 뿐 아니라 생산 가능 인력이 획기적으로 늘어난다. 구글과 오픈AI, 아마존 창업자 같은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이 세포 회춘 기업들에 수조 원대 투자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바야흐로 생체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노화 역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부품 교체’ 넘어선 ‘세포 재부팅’

 

세포 회춘의 원리는 20년 전 탄생했다. 2006년 일본 교토대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다 자란 피부 세포에 4가지 유전자를 주입해 원시 세포인 배아줄기세포 상태로 되돌렸다고 발표했다. 수정란(배아)에 있는 배아줄기세포와 마찬가지로 인체의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고 해서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induced Pluripotent Stem cell)’라 명명됐다. 야마나카 교수는 이 연구로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다 자란 피부 세포를 초기 상태로 거꾸로 되돌리는데다, 배아줄기세포처럼 인체의 다양한 세포로 자랄 수 있는 ‘만능’이어서 iPS세포는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았다. 특히 배아줄기세포는 수정란을 파괴해야 얻을 수 있어 생명 윤리 논란을 빚었지만, iPS세포는 환자 자신의 세포로 만들어 그런 문제가 없다.

그래픽=양진경
 

야마나카 교수는 iPS세포를 망막 세포로 분화시켜 실명 위기의 황반변성 환자를 치료하는 성과를 거뒀다. 미국에서는 iPS세포를 도파민 신경세포로 만들어 파킨슨병 환자 치료에 도전하고 있다. 하버드 연구진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환자의 세포에 이른바 ‘야마나카 인자’라 불리는 Oct4, Sox2, Klf4, c-Myc 유전자를 주입해 바로 젊게 만드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부품 교체가 아니라 프로그램을 다시 깔아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야마나카 인자를 모두 쓰면 신경세포가 아예 초기 줄기세포 단계까지 가버려 제 기능을 못 한다는 점이다. 이러면 세포가 마음대로 증식해 암이 생길 수도 있다. 하버드 연구진은 2020년 동물 실험에서 야마나카 인자 중 c-Myc를 뺀 3가지 OSK만 사용해 망막 신경세포라는 정체성은 유지하면서 시간만 되돌리는 리프로그래밍, 즉 ‘부분적 역노화’에 성공했다. 올해 시작된 임상시험도 같은 방식으로 한다.

 

부분적 역노화는 마치 낡은 컴퓨터의 하드웨어를 통째로 교체하는 대신, 시스템을 최적화하고 에러를 수정해 속도를 높이는 소프트웨어 재부팅에 비유된다. 재부팅하면 번거롭게 밖에서 iPS 세포 만들고 다시 대체할 세포로 분화시키고 주입하지 않고, 유전자만 주입해 바로 늙거나 병든 세포를 젊게 바꿀 수 있는 셈이다. 싱클레어 교수는 지난 2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세계정부정상회의에서 “노화는 숙명이 아니라 점점 더 치료가 가능해지고 있다”며 “인체는 마치 컴퓨터와 같아서, 프로그래밍하고 재프로그래밍하며 재부팅해 다시 젊어질 수 있다”고 발표했다.

 

피부 젊어지고 기억력도 향상

 

지금까지 노화는 DNA에 있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서 발생한다고 알려졌다. 유전자에 담긴 정보가 일부 누락되거나 다른 것으로 바뀌면 세포가 제 기능을 잃고 결국 장기 손상과 질병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사람이나 생쥐에서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많이 생겨도 노화가 빨라지지 않거나, 반대로 유전자 돌연변이가 거의 없는데 노화가 일어나는 일들이 관찰됐다.

 

과학자들은 태어날 때 물려받은 DNA 유전정보는 변함이 없지만 이후 성장하면서 DNA에 다른 물질이 붙는 것과 같은 구조적 변화로 유전자 기능이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와 같은 DNA의 구조적 변화를 후성유전체라고 한다. 하버드 연구진은 야마나카 인자 3가지로 후성유전체를 수정해 세포에서 노화 흔적을 지웠다.

 

부분적 역노화의 또 다른 비결은 시간 조절이다. 2016년 미국 솔크 생물학 연구소의 후안 크를로스 이즈피수아 벨몬테 박사 연구진은 쥐에서 야마나카 인자를 반복적으로 켜고 끄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노화가 빨라지는 조로증을 앓는 실험동물이 30% 더 오래 살았다. 연구진은 인체에서 안전성이 입증된 항생제를 야마나카 인자의 스위치로 사용했다. 항생제는 세포막을 잘 통과해 유전자 조절 부위에 닿기 쉽다.

 

부분적 역노화는 최근 동물실험에서 잇따라 성과를 거뒀다. 피부를 회춘시키고 흉터를 줄였으며, 근육 재생을 촉진했다. 병에 걸려 손상된 심장 세포도 재생됐다. 한 연구에서는 늙은 쥐에게 야마나카 인자를 주기적으로 발현시키면 기억력이 높아지는 결과도 나왔다. 과학계는 이번 임상시험이 성공한다면 노인들에게 빛을 되찾아주는 것을 넘어, 간이나 신장, 심지어 뇌까지 젊게 만드는 회춘의 시대가 열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래픽=양진경
 

실리콘밸리 거부들이 뛴다

 

세포 회춘 기술의 발전은 실리콘밸리 자본의 막대한 투자가 뒷받침했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와 DST글로벌 설립자인 유리 밀너가 투자한 알토스 랩스는 투자금 30억달러(약 4조4670억원)를 확보했다. 이는 바이오 스타트업에 대한 초기 투자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밀너는 2020년 10월 캘리포니아주 로스 알토스 힐스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이즈피수아 벨몬테 교수와 야마나카 교수 등 석학들을 초대해 이틀간 세포 역노화 가능성을 논의했다. 이날 그 가능성을 확인한 밀너는 이날 모임이 열린 지명을 따 이듬해 알토스 랩스를 세웠다. 이날 발표한 두 교수도 회사에 합류했다.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의 최고경영자(CEO)인 샘 올트먼은 2022년 출범한 레트로 바이오사이언스에 1억8000만달러(약 2680억원)를 투자했다. 이 회사는 세포 역노화로 건강 수명을 10년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제프 베조스와 페이팔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은 역노화 약물을 개발 중인 유니티 바이오테크놀로지에 투자했으며, 구글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2013년 항노화 기업 칼리코를 설립했다.

 

억만장자들은 노화 역전의 엄청난 경제적 가치에 주목했다. 싱클레어 교수와 영국 런던 경영대학원의 앤드루 스콧 교수, 옥스퍼드대 경제학과의 마틴 엘르슨 교수는 2021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노화’에 인류의 건강 수명이 1년 연장됐을 때 전 세계에서 38조달러(약 5경6574조원)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예측했다.

 

연구진은 질병 치료보다 노화 자체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더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수치화했다. 노화가 늦춰지면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생산 가능 연령이 높아지고 의료비 지출은 줄어들며 삶의 질이 개선되는 ‘복리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만약 건강 수명이 10년 늘어난다면 그 가치는 무려 367조달러(약 54경 6316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인 인사이트에이스 애널리틱은 2023년 보고서에서 항노화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2년 5억9200만달러(약 8800억원)에서 연평균 17.5% 성장해 2031년 24억7400만달러(약 3조683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같은 성분과 원리의 미용 시장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더 커진다. 프리시던스리서치는 지난해 말 발표한 보고서에서 세계 항노화 시장 규모가 2025년 779억6000만달러(약 116조원)에서 2035년 1495억4000만달러(약 223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픽=김의균
 

좀비 세포 잡는 약물, 회춘 효과 높여

 

산업계는 늙은 세포를 제거하거나 무력화하는 역노화 기술에도 주목하고 있다. 노화 세포를 분해하는 세놀리틱 약물과, 노화 세포의 분비물을 조절하는 세노모픽 약물이다. 노화 세포는 나이가 들면서 정상 기능을 잃어버렸지만, 면역 시스템이 미처 제거하지 못한 세포들이다. 죽지도 않고 일도 하지 않고 그냥 인체 속을 떠다녀 ‘좀비 세포’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골다공증·골관절염·근육손실 같은 노화 현상은 물론, 알츠하이머 치매나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뇌질환도 유발한다고 알려졌다.

 

세놀리틱과 세노모픽은 인체에 외부 유전자를 도입하는 부분적 역노화와 달리, 기존 약물을 활용할 수 있어 상용화 시기가 더 빠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2023년 말 발표한 보고서에서 세놀리틱은 2025년 이내, 세포 역노화 기술은 2034년 이내 실현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개발 시기는 그보다 늦어졌지만, 임상시험은 더 빨리 진행되고 있다.

 

미국 메이요 클리닉은 2019년 처음으로 세놀리틱 약물로 환자의 좀비 세포를 제거한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백혈병 치료제로 허가받은 다사티닙과 포도와 양파·녹차·사과·딸기·은행나무 등에 포함된 식물 색소인 케르세틴을 복용시켜 안전성과 함께 근력이 향상되는 효능을 확인했다. 베조스와 틸이 투자한 유니티 바이오테크놀로지는 노인성 안구 질환자를 대상으로 세놀리틱 약물인 UBX1325에 대한 임상 2상 시험을 마쳤다.

 

세노모픽 약물로는 당뇨병 치료제 메트포르민과 장기 이식 때 쓰는 면역 거부 억제제인 라파마이신이 꼽힌다. 둘 다 선충이나 생쥐 등에서 수명 연장 효과를 보였다.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는 라파마이신 유사 물질이 노인에서 독감 백신에 대한 반응을 20% 높이는 효과를 확인했다. 면역력에서 20% 회춘 효과를 본 셈이다.

 

한국 연구진은 세포 부분적 역노화에 세노모픽을 결합해 성과를 보였다. 조광현 카이스트(KAIST) 교수 연구진은 2020년 국제 학술지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늙은 인간 피부 세포에 야마나카 인자 4가지를 일시적으로 발현시켜 젊은 세포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화장품 기업인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과 함께 연구했다.

 

부분적 역분화는 자칫 암을 유발할 수 있다. 연구진은 야마나카 인자에 세노모픽 약물을 결합해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인공 노화 피부에 적용하자 노화 인자들이 사라지고 정상 세포로서 기능을 회복했다.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은 동백 추출물에서 세노모픽 성분을 찾아 노화된 피부의 주름을 개선하는 화장품을 개발하고 있다.

그래픽=양진경
 

동물에서 찾는 장수 비밀

 

바이오 기업들은 기존 야마나카 인자 외에 부작용 없이 역노화를 유도한 새로운 유전자와 단백질을 찾고 있다. 이를 위해 자연의 장수 모델도 연구하고 있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사는 포유류인 북극고래는 수명이 200년을 넘는다. 땅속에 사는 벌거숭이두더지쥐 또한 경이로운 연구 대상이다. 몸집이 비슷한 다른 쥐들이 3년 남짓 사는 데 비해, 이들은 10배인 30년 이상 생존한다. 사람으로 치면 800년을 사는 셈이다.

 

고래의 장수 비결은 DNA 수선 능력이었다. 세월의 풍파에 인간의 DNA가 망가질 때, 북극고래의 세포는 즉각적으로 수선돼 세포 나이를 유지한다. 고래는 덩치가 크니 세포 수도 많고 돌연변이도 그만큼 많이 생겨 암에 걸리기 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암에 거의 걸리지 않았다. DNA 수선 능력이 워낙 뛰어나 돌연변이 자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벌거숭이두더지쥐도 마찬가지다. 인간과 쥐에서는 cGAS라는 효소 단백질이 노화로 손상된 DNA를 복구하지 못하게 방해하지만, 벌거숭이두더지쥐에서는 정반대로 작동했다. 연구진이 초파리에서 벌거숭이두더지쥐의 효소 유전자와 같은 변이를 유발하자 수명이 16% 늘었다. 한국인 기대 수명이라면 12년 정도 늘어나는 셈이다.

 

구글이 세운 칼리코는 출범 때 이미 이 동물을 장수 연구의 모델로 꼽았다. 칼리코는 벌거숭이두더지쥐가 죽을 때까지 사실상 늙지 않는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사람은 30세 이후 8년마다 질병으로 인한 사망 위험률이 두 배씩 증가한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나이가 들어도 사망 위험률이 높아지지 않는 유일한 포유동물이다. 머지않아 홈쇼핑 방송에서 야마나카 인자 3종 세트에 북극고래, 벌거숭이두더지쥐 DNA를 추가했다고 광고하는 모습이 나올지 모르겠다.

일러스트=양진경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에디터     조선일보     
입력 2026.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