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0' 전기값 폭등에 궁여지책
독일의 차기 총리로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가 “다음 달 23일 조기 총선에서 승리하면 가스 화력발전소 50개를 짓겠다”고 19일(현지 시각) 밝혔다. 원전 약 25기에 달하는 용량이다. 첫 원전이 상업 운전을 시작한 1961년 이후 62년 만에 원전 가동을 전부 중단한 독일은 신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 대전환을 선언했지만 최근 폭등하는 전기 요금과 장기화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안보’ 위협을 받아왔다. 결국 뒤늦게 반성문을 쓰며 화석연료 중심 정책까지 꺼내드는 모양새다.
‘탈원전 원조국’이면서도 친환경 정책에 힘을 실어 온 독일은 최근 불안정한 신재생에너지 발전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수급 불안 때문에 전기를 체코, 덴마크 등 해외에서 대거 수입해왔다. 2003년 전력 순(純)수출국으로 올라섰지만, 탈원전 영향이 심해지며 2023년 순수입국으로 전락했다.
이 때문에 전기 요금도 OECD 평균의 2배까지 치솟았다. 여기에 AI(인공지능) 수요 확대 등으로 세계적인 ‘탈(脫)탈원전’ 흐름이 강해지면서 원전과 화석연료 발전을 다시 늘려야 한다는 여론까지 힘을 얻었다. 그러나 이미 10년 넘게 이어져 온 ‘탈원전’ 기조 속에서 대형 원전을 새로 짓기 어려워지자 ‘화력발전소 50개 건설’이라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탈원전에 멍든 獨 경제
이날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메르츠 기민당 대표는 “가능한 한 빨리 독일에 가스 화력발전소 50개를 건설하겠다”며 “숄츠 정부가 마지막 원전까지 폐쇄한 것은 심각한 전략적 실수”라고 밝혔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80%까지 늘리겠다던 독일은 올겨울 다른 해보다 유독 바람이 덜 불고 낮에도 해가 들지 않는 날이 많아지면서 재생에너지 공급이 부진해지는 ‘둥켈플라우테(Dunkelflaute)’ 현상을 겪었다. 그 여파로 지난해 말 풍력 발전량이 25%나 줄었고, 그 빈자리를 채운 화력발전이 한 달 만에 79% 늘었다. 과거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과하게 의존했던 탓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직격탄까지 맞았다. 전기 요금도 OECD 3위 수준, 프랑스의 2배에 달하는 ㎿h(메가와트시)당 440.3달러까지 치솟는 어려움도 겪었다.
이처럼 독일이 에너지 공급난에 허덕이고 있는 데는 탈원전과 친환경 정책을 병행한 후폭풍이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독일은 2000년 전체 전력 공급의 13.1%를 원자력으로 충당했지만 2011년 9%, 2021년 6.2%까지 그 비율이 점차 낮아졌고 2023년 마지막 원전 3기까지 가동을 완전히 멈추며 ‘원전 0(제로)’ 상태에 놓였다.
탈원전과 친환경 정책의 불협화음은 ‘제조업 강국’ 독일의 산업까지 강타했다. ‘친환경 이상주의’와 ‘늦은 전기차 전환’ 사이에서 신음하는 자동차 산업이 대표적이다. 2023년 탈원전 직후에 예산을 문제로 전기차 보조금까지 없애면서, 지난해 독일 내 전기차 판매가 1년 만에 27% 안팎 급감한 것이다. 지난 9일 다이애나 퍼시고트로트 미 헤리티지재단 센터장도 “독일의 기후변화 정책으로 지난해 독일 산업 생산량이 3% 줄었다”며 “올해도 생산량이 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친환경 일변도’ 獨 둘러싼 비판 커져
탈원전과 친환경 정책에 대한 비판은 독일 안팎에서 전방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독일이 원자력발전으로 복귀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했다. 2023년 탈원전을 폐기한 스웨덴의 에바 부시 에너지부 장관도 지난달 “독일이 일본 후쿠시마 사고 후 원전 폐쇄를 결정하고 유럽연합(EU)의 원전 지원까지 반대해 전기 요금이 치솟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2030년까지 석탄 화력발전소를 폐지하겠다”는 독일 정부의 계획이 불투명해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달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도 “에너지 안보가 우선돼야 한다”며 석탄 화력발전소를 2030년까지 폐지하겠다는 계획에 회의적인 입장을 냈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탈원전’을 실제로 한 곳은 유럽에서도 독일뿐”이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두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 등을 예상하지 못하고 재생에너지 확대 위주로 정책을 추진하다 경제까지 흔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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