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K리그 축구 심판 정동식
K리그 축구심판이자 환경공무관인 정동식씨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K리그 심판으로 활약하게 된 이야기를 설명했다. 또한 좌절하는 청년들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서 달려라"라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축구 스타 김민재를 빼닮은 남자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과자를 꺼냈다. “선물입니다.” 동그란 과자 한 면에 초콜릿이 발라진 ‘다이제스티브’. 그가 열아홉 살이던 1999년엔 500원이었다는 이 과자는 가난한 고학생의 ‘눈물’이자 ‘꿈’이었다. “밥 사 먹을 돈이 없어 천안의 대학을 오가는 통학 열차에서 다이제스티브 한 개로 하루를 버텼어요. 초콜릿을 안 바른 과자는 300원인데, 초콜릿이 묻으면 좀 더 배부를 것 같아서 200원을 더 투자했지요(웃음).”
억척 청년의 꿈은 이루어졌다. 본업은 거리 청소부, 부업은 퀵 배달부지만, 그는 대한민국에 12명밖에 없는 K리그 축구 심판이다. 밑바닥을 전전할지언정 열두 살에 품은 축구의 꿈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정동식(43)씨가 형광색 청소복에 빗자루를 들고 활짝 웃었다.
◇김민재 닮은 서초구청 청소부
-별명이 ‘짭민재’라더니, 김민재 선수와 정말 닮았다.
“우리 아들들은 아빠랑 하나도 안 닮았다는데, 축구팬들은 판박이라며 좋아하더라(웃음).”
-’슛포러브’라는 유튜브 채널과 나폴리에 갔다가 현지인들에게 ‘킴킴킴킴!’ 연호를 받았다던데.
“나폴리가 33년 만에 우승을 하게 돼 나까지 덩달아 인기를 누렸다. 김민재가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다며 사인 요청, 촬영 요청을 하더라. 그 열기가 엄청났다(웃음).”
-이제 막 청소를 끝낸 건가.
“매일 새벽 6시부터 낮 3시까지 일한다. 가을엔 낙엽 때문에 일이 많다. 돌아서면 떨어지고 돌아서면 쌓이고(웃음).”
-오토바이엔 서리풀 청소기동대라고 적혀 있다.
“서초구 환경공무관인데, 난 오토바이로 이동하며 헌릉로, 매헌로 일대를 청소하는 기동대 소속이다.”
-구청 일 끝나면 퀵 서비스 일을 한다고.
“환경공무관 월급과 축구 심판만 해서는 아들 셋 못 키운다(웃음).”
-세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게 가능한가?
“K리그는 주로 주말에 열린다. 퀵 서비스는 청소 끝나고 집이 있는 하남 방향으로 떨어지는 콜을 잡으면서 간다. 대리운전 할 때도 집 방향으로 콜을 잡아서 가면 교통비가 안 든다. 애들 학원비는 나온다.”
-체력이 받쳐주나?
“부모님이 신체 하나는 건강하게 물려주셔서 아직 거뜬하다(웃음).”
-본업은 왜 청소부인가.
“60세까지 할 수 있는 안정적 일자리라…. 심판은 경기를 뛴 만큼 수당을 받는 직업이라 불안정하다. 더욱이 12월부턴 경기가 없다. 석 달간 수입이 빵원! 청소 일은 사람 스트레스 없고, 뭣보다 내가 오만해지지 않도록 잡아준다.”
-오만해지지 않도록?
“국내 최고 선수들과 3만~4만 관중이 모인 그라운드를 함께 뛰다 보면 자부심에 들뜬다. 1부 리그 심판은 12명밖에 없고 휘슬로 중요한 판정을 내리니 오만해지기도 쉽다. 그런데 난 아니다. 예를 들어 일요일에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심판을 보고 서울에 도착하면 새벽 1~2시다. 그럼 2시간 자고 일어나 출근해야 한다. 동트지 않은 거리에서 빗자루질 하다 보면 거들먹거리고 싶었던 마음이 싹 사라진다. 겸손해진다.”
-주 6일 청소에 주말엔 심판으로 뛰면 언제 쉬나?
“힐링? 그런 건 체질에 안 맞는다(웃음). 몸을 움직여 일할 때 엔도르핀이 돈다. 누가 ‘일하면서 1억 받을래, 놀면서 1억 받을래’ 하면 저는 일하면서 받을 거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이 되든 안 되든 심신이 건강하려면 일을 해야 한다.”
◇우유 배달부터 아파트 공사장까지
-원래는 축구 선수가 꿈이었다던데.
“형과 함께 학교 운동장에서 놀다가 동네 조기축구회 대타 선수로 ‘발탁’됐다(웃음). 중·고등학교에서 선수로 뛰었는데 대학 스카우트가 좌절되면서 선수 생활은 끝이 났다.”
-이번에 출간한 책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를 보니 선수의 꿈이 좌절된 열아홉 살 때부터 고생이 시작됐더라.
“워낙 가난했던 데다 부모님은 이혼하고 형은 군대를 가버려 나 혼자 벌어서 등록금을 마련해야 했다. 마침 구로구의 한 노숙인 쉼터에서 노숙자들 관리하며 살 수 있는 일이 생겨 학업과 병행했다. 월급이 50만원이라 틈날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했다. 공사장 막노동은 기본이고, 신문과 우유 배달, 마트 상품 진열, 신용카드 판매, 대리운전까지 안 해본 일 없다. 아파트 단지에 인공 폭포 만드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돌을 날라서 쌓고 바르는 일인데 맷집 좋은 나도 딱 세 달 버티고 관뒀다.”
-그렇게 5년간 악착같이 번 돈을 사기 당했다던데.
“셋방이라도 하나 얻어 살려고 재테크 책을 열심히 읽다가 상가 투자에 꽂혔는데, 임대가 안 나가도 이자를 50만원씩 준다는 말에 속아 8000만원을 다 날렸다. 술을 진탕 마시고 한강 다리로 갔는데 강물이 너무 무서워 뛰어내리진 못했다(웃음). 죽을 용기가 없으니 살아야 했고, 다시 안 먹고 안 쓰는 생활을 시작했다. 이젠 속지 않는다.”
-’더 이상 가난해질 수도 없다’고 썼더라.
“해본 일, 할 줄 아는 일이 너무 많아서(웃음). 스리 잡(three jobs)은 기본에 7가지 일을 한번에 한 적도 있다. 닥치는 대로 일해서 번 돈을 아껴서 쓰면 가난해질래야 가난해질 수가 없다.”
-경제적 실패로 삶을 포기하는 젊은이들 보면 안타깝겠다.
“그 고통 상상할 수 있지만, 그래도 죽지는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다시 하면 된다. 작은 목표부터 세우고 하나하나 이뤄가면서 자존감을 되찾아야 한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 자신과 싸워야 한다.”
◇축구 심판은 신이 버린 직업?
-일하고 공부하면서 축구 심판 자격증을 딴 건가?
“선수로는 실패했지만 그라운드는 달리고 싶었다.”
-아마추어 심판이었을 때 어둠 내린 축구장 한복판에 누워 K리그 수퍼매치의 주심이 되겠다고 상상하는 장면이 인상 깊더라.
“힘들 때마다 그 장면을 상상했다. 관중의 함성 소리가 들리는 수퍼매치에서 달리는 꿈.”
-얼마 만에 꿈을 이룬 건가.
“자격증 따고 12년 만에 K리그에 입성했다. 아마추어인 K4로 시작해 실업리그인 K3를 거쳐 프로리그인 K2로 갔다가 다시 2년 만에 K1심판이 됐다.”
-2022년 수퍼매치를 뛰고, 올해의 주심상도 받았더라.
“월드컵 상암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수원삼성의 경기였다. 180경기를 뛰었는데도 긴장되더라. K1 심판은 12명이지만 수퍼매치는 그중 3명밖에 못 들어간다. 거기에 들어간 거다(웃음).”
-축구 심판을 ‘신이 버린 직업’이라고 한다던데.
“진 팀 관중은 무조건 심판을 욕하니까(웃음). 처음엔 악플이 너무 힘들어 파출소로 신고하러 간 적도 있는데 이제는 숙명이려니 한다.”
-스타 심판이 됐는데도 악플이 붙나.
“물론이다. ‘김민재 닮으면 다냐’는 악플도 있다, 하하!”
-오심도 하나?
“사람이니까 실수를 한다. 오심한 날엔 수갑 차고 감방 가야 할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린다. 경기 전 두 팀의 축구 스타일을 연구하고 동선을 예측해 적재적소에 가서 반칙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현장은 수시로 달라지니 완벽하게 잡아낼 순 없다.”
-뛰는 양도 엄청 많더라.
“선수보다 더 많이 뛴다. 심판은 공을 따라다니고 선수는 자기 포지션 위주로 움직이니까. 더구나 선수들은 젊은 층으로 계속 교체되니 20대의 체력을 유지해야 한다.”
-월드 클래스가 된 손흥민이나 김민재가 부러울 것 같은데.
“전혀! 그들에겐 그들의 삶이, 내겐 나만의 삶이 있다. 행복지수도 그들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우선 월드 클래스라는 압박감이 내겐 없지 않나, 하하!”
◇인사만 잘해도 밥 먹고 산다
-강연 요청도 많이 들어온다고.
“학교와 기업, 보험회사에서 오는데, 10대 아이들 만날 때가 제일 좋다. 자기 부모님도 맨날 싸우는데 심판님 얘기 듣고 용기를 얻었다는 아이도 있었다. 절망하는 아이 하나라도 살릴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축구든 공부든 일단 노력하면 실력이 가파르게 늘다가 기나긴 정체기가 오는데 이때 멈추고 타협하면 안 된다는 대목에 눈길이 멎더라.
“무슨 일이든 작심 3일이 아니라 작심 100일 하라고 말해준다. 어떤 노력을 습관으로 바꾸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66일이라더라. 최소 두 달 이상은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 말도 꼭 해준다. 나는 고3 내내 전교 300명 중 299등, 300등을 놓쳐본 적이 없다고. 근데 지금 누구보다 잘 살고 있다고(웃음).”
-집 현관엔 ‘할 수 있다’란 문장이 적혀 있다던데.
“초등 6학년, 4학년, 1학년인 우리 세 아들은 아침에 등교할 때 ‘할 수 있다’를 세 번 외쳐야 나갈 수 있다. 귀찮은 일이지만 효과가 제법 있다. 우리 둘째가 태권도 승단 심사를 보는데 자기도 모르게 ‘나는 할 수 있다’고 외치고 있더란다. 자기 꿈을 망각하지 않게 적어놓고 입으로 반복해 내뱉으면 힘이 되어 쌓인다고 믿는다.”
-공부는 잘하나?
“셋 다 못한다(웃음). 그런데 난 공부 못해도 상관없다. 서울대 나와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보다 나는 행복하다고 자신하니까. 공부 좀 못해도 세상에 할 일은 너무도 많다. 아빠처럼 청소부가 되면 또 어떤가.”
-아내는 싫어하겠다.
“당연히 싫어하지(웃음). 근데 ‘인사만 잘해도 밥 먹고 산다’가 내 신조다. 그래서 우리 애들은 인사를 최고로 잘한다.”
-종교가 있나.
“기천불교. 군대 있을 때 초코파이 얻어 먹으려고 교회, 성당, 절에 다 다녔다. 힘들면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까지 다 찾는다(웃음).”
-소망이 있다면?
“시간이 주어지는 대로 강연에 나가 어려운 환경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거다. 그리고 오디션 프로 ‘복면가왕’에 나가 인순이의 ‘거위의 꿈’을 꼭 부르고 싶다(웃음).”
-근데 참 잘 웃는다.
“나는 왜 가난한 부모에게 태어나 이렇게 고생하며 살까, 분노가 치밀 때 ‘웃는 법’을 배웠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좋은 기운이 찾아오고, 머리가 맑아진다. 진짜다. 딱 30초만 웃어봐라.”
-대학에 떨어져서, 취직이 안 돼서 절망하는 청년들에게 한 말씀.
“절대 포기하지 마라. 누구나 넘어진다. 다시 일어나서 달려라. 간절히, 간절히!”
☞정동식
1980년 서울 출생. 중대부중·고에서 축구 선수로 뛰었고 선문대 사회체육학과를 졸업했다. 구로노인종합복지관 상담사를 시작으로 막노동, 대리운전, 퀵 배달부 등으로 일하며 축구 심판 자격증을 땄다. 실업 리그를 거쳐 현재 K리그에서 심판으로 뛰고 있으며, 2022년 올해의 심판상을 받았다.
김윤덕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3.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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