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태영호의 도전

해암도 2023. 3. 10. 08:43

로마 5현제 중 한 명인 트라야누스는 로마 본토가 아닌 히스파니아(스페인) 출신이다. 히스파니아는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로마를 유린했던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의 본거지였다. 적지에서 태어난 그가 속주 출신으론 처음 황제에 오른 것이다. 그는 다키아·파르티아 원정을 통해 로마의 영토를 최대로 늘렸다. 어느 황제보다 로마적 문화와 전통을 지키고 선정을 베풀어 ‘지고(至高)의 황제’란 칭호를 얻었다. 그 후 변방 속주 출신 황제가 연이어 등장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동독 출신이다. 폴란드인인 할아버지는 동독 공산당원이었다. 하지만 메르켈은 물리학자로 정치와 거리를 뒀다. 공산당 가입과 국가보안부(슈타지)의 협력 요구도 거절했다. 통독 때 기민당에 들어가 헬무트 콜 내각에 발탁됐다. 동독 교육을 받았지만 실용주의 노선과 청렴성으로 16년간 총리 4연임을 했다.

 

▶리시 수낙 영국 총리는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계 이민 2세다. 첫 유색인종, 힌두교 신자 총리로 인도가 식민지 된 지 200년 만에 거꾸로 영국을 통치하게 된 것이다. 그는 “영국을 통합하고 영국을 위해 밤낮으로 뛰겠다”고 했다.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는 아버지가 케냐인이다. 태어난 곳도 미 본토가 아닌 하와이였다. 이름과 출신 때문에 무슬림이란 편견에 시달렸다. 하지만 미국적 가치를 굳게 신봉했다.

 
8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태영호 최고위원이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태영호 의원이 국민의힘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탈북자 출신이 정당 지도부가 된 것은 처음이다. 이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지율은 미미했고 조직도 없었다. 모두 말렸다. 하지만 “이 사회에 기댈 데 없는 북한 출신에게도 한 표를 달라”고 열정적으로 호소했다. 청년 표심을 얻기 위해 최신 가요와 랩을 부르고 춤도 췄다. 제주 4·3 희생자에게 참배하며 “김일성이 배후”라고 했다가 지역 반발도 샀다. 하지만 연설회와 토론이 이어질수록 지지율은 올라갔고 결국 대역전극을 연출했다.

 

▶그는 북 출신으론 드물게 정치 감각과 쇼맨십이 있다. 말솜씨나 노래 실력도 좋다. 지난 대선 때 동료 의원들과 유세차 미국을 갔는데 교민들에게 스타로 떴다. 그와 사진 찍고 한 테이블에 앉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한다. 태 의원은 탈모 시술을 통해 외모도 바꿨다. “남쪽에 온 후 가장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그는 “탈북자가 정치 지도자까지 될 수 있다는 것을 북 주민과 탈북민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자유민주주의를 전파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의 꿈은 국민 모두의 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