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형의 닥터 사이언스]
움직이는 식물 미모사, 외부 충격에 칼슘 신호로 0.1초면 잎 닫아
포도 일종 ‘보킬라’는 주변 식물 완벽 모방해 “눈 있다” 주장도
열등한 존재로 여기지만 35억년 전부터 살아온 ‘진화의 끝판왕’
197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식물학자 라이얼 왓슨은 “식물이 감정을 갖고 있으며 거짓말 탐지기로 기록도 가능하다”고 했다. 과학계는 그를 미친 사람으로 여겼다. 왓슨은 식물학·동물학·화학·인류학·행동학 등 수많은 분야에서 활약했지만 베스트셀러를 쓰는 대중 작가에 가까웠고 명확한 과학적 근거 제시에는 소질이 없었다. 그의 주장 중에는 유사 과학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의 식물 연구는 식물이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을 넘어 의사소통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식물은 뇌가 없기 때문에 감정과 오감(五感), 지능이 없다고 단정한 것은 단지 인간의 편견이었다.
일본 사이타마대 연구진은 지난달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논문에서 “식물 ‘미모사 푸디카’를 관찰한 결과 동물의 신경 전달과 비슷한 메커니즘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외부 충격을 받으면 빠르게 잎을 닫는 미모사는 과학계의 오랜 연구 대상이었다. 식물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열등한 생명체라는 인식을 깨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형광 물질을 활용해 미모사 잎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실시간 관찰했다. 그 결과 외부 충격을 받은 미모사는 잎바늘로 불리는 기관에서 칼슘 신호를 잎 전체로 발산해 불과 0.1초 만에 잎을 닫았다. 원리와 형태는 다르지만 식물도 동물과 같은 신호 전달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다. 미모사 연구에 대한 첫 기록은 18세기 생물학자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1744~1829)로 거슬러 올라간다. 용불용설(用不用說)의 바로 그 라마르크이다. 라마르크는 조수를 시켜 미모사를 싣고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게 했다. 길을 달리면서 충격이 전해질 때마다 미모사는 잎을 닫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어느 순간 미모사는 잎을 닫지 않았고 며칠이 지난 뒤에 다시 같은 진동을 줘도 잎을 닫지 않았다. 진동이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배우고 기억한’ 셈이다.
칠레에 서식하는 ‘보퀼라’는 식물계의 카멜레온이다. 포도나무의 일종인 보퀼라는 원래 3개의 뭉툭한 잎사귀를 갖고 있다. 하지만 보퀼라는 주변 식물에 붙어 자라면 그 식물과 놀랍도록 똑같은 형태로 잎 모양과 색을 바꾼다. 보퀼라가 모방하는 식물만 20종이 넘는다. 보퀼라가 처음 알려진 것은 1800년대 초반이었는데, 모방 능력은 불과 10년 전에 발견됐다. 아무도 모방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과학자들이 플라스틱으로 가짜 식물을 만든 뒤 보퀼라를 옆에 두자, 보퀼라는 인공 식물의 잎까지 모방했다. 10년 전 이 식물을 처음 발견한 식물학자 어네스토 지아놀리는 올초 학술지 ‘식물 신호 및 행동’에 “보퀼라 잎에는 렌즈를 닮은 세포가 있으며, 이를 통해 실제로 주변을 보고 모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식물학계를 뜨겁게 달군 이 논란은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식물이 볼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궁금증과 맞닿아 있다.
식물은 위협을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이타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폴란드 바르샤바대 연구팀은 지난 5월 “민들레를 관찰한 결과 잎이 손상되면 전기신호를 내뿜어 주변에 알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풀밭 한편의 민들레 잎 하나에 상처를 내기만 해도 순식간에 풀밭 전체가 각종 식물이 내뿜는 전기신호로 뒤덮였다. 식물이 말을 하고 들으며 소통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이토록 식물의 삶과 능력에 무지했던 것일까. 식물지능학을 창시한 이탈리아 피렌체대 스테파노 만쿠소 교수는 저서 ‘매혹하는 식물의 뇌’에서 “문제는 ‘식물이 지능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지능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이다”라고 썼다. 인간이 가장 진화한 존재이고, 우월한 존재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식물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화학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은 식충식물의 존재를 처음 학계에 알린 식물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1880년 발간한 ‘식물의 운동력’에서 “식물의 뿌리에는 하등동물의 뇌와 비슷한 것이 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 과학은 다윈의 주장이 허무맹랑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최초의 광합성 세포가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35억년 전이다. 현재의 식물은 햇빛과 물, 비옥한 땅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거쳐 살아남은 진화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작 20만년을 살아온 현생 인류가 이런 식물을 과소평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