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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경영학도 아들이 ‘곱창집’ 엄마에 무릎 꿇은 이유 [사장의 맛]

해암도 2022. 5. 2. 15:58

곱창 대박집 아들 일도씨, 닭으로 성공
중국 명문대 출신 아들 “경영학, 어머니 경험만 못하더라”
“재료 좋으면 별거 없어도 돼” 생닭으로 닭갈비 시장 돌풍

 

닭갈비, 찜닭, 곱창, 돈까스... 어딜 가도 흔히 볼 수 있고 접할 수 있는 메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흔하디 흔한 메뉴로 외식업계에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는 사장이 있습니다. 일도씨닭갈비, 일도씨곱창, 일도씨찜닭, 이스트빌리지 등 8개 브랜드 17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일도씨패밀리 김일도(39) 대표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이름 ‘일도’를 사명(社命)은 물론 브랜드에도 갖다 붙였습니다. 그는 “장사가 잘 돼서 잘 된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조선일보 ‘사장의 맛’이 이른바 ‘뻔한 메뉴’로 승부수를 던진 김 사장을 만났습니다.

김일도 일도씨패밀리 대표가 서울 광화문 서울파이낸스센터에 있는 일도씨 닭갈비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 대표는 "냉동고에 주 재료가 들어간 순간 장사를 접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엄마 말 틀린 거 하나 없더라

 

일도씨는 ‘식당집 2세’입니다. 어머니는 1986년부터 서울 마천동 시장에서 곱창집(소문난 곱창)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장사가 잘 돼 김 사장은 중국 상하이 자오퉁(交通)대학에 유학도 다녀왔습니다. 중국 명문으로 꼽히는 대학입니다. 거기서 경영학(인적 자원 관리)을 전공한 김 사장은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어머니 식당에 취직합니다. 아들 유학까지 보낸 어머니가 처음부터 흔쾌해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김일도 사장은 거기서 외식업의 A-Z를 배웠다고 합니다.

 

-유학 갔다온 아들이 식당 일 하는 것, 일반적인 어머니라면 반기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식당 개업하고 일년에 363일 일했어요. 설과 추석 당일만 쉰 거죠. 고생한 어머니는 저 어렸을 때부터 ‘공부 열심히 해서 대기업 가라. 여행도 가고 주말도 즐겨라’ 이 말을 입에 달고 사셨어요. 그런데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하교하면 어머니 가게로 갔어요. ‘나중에 엄마 가게 이어받을 거야. 맥도날드 옆에 엄마 가게 다 붙일 거야’라는 말을 많이 했대요. 나중에는 말리지 않으셨어요.”

-큰 규모의 식당도 많은데, 왜 어머니였나요?

“포부가 컸죠. 그래서 유학도 간 거고요. 글로벌하게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거든요. 상하이에서 유학하면서 1년 동안 밤에만 식당을 빌려 과일소주 팔고, 한국 음식을 팔아봤어요. 그런데 ‘브랜드’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는 걸 배웠어요. 거기(상하이)에서도 브랜드가 한국에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더라고요. 어머니 가게에서 바닥부터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김 사장은 테이블 19개짜리 어머니 곱창집에서 3년간 주로 카운터를 봤습니다. 계산 담당이죠. 그러다 2011년 독립을 합니다. 5000만원을 들고 서울 미아사거리 뒷골목에 어머니 맛을 그대로 옮긴 소문난곱창 2호점을 냅니다.

-3년 동안 어머니 가게 생활로 얻은 깨달음은 뭔가요?

“현실은 공부했던 거와 정말 다르다. 시스템화하고 분업화하면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머니 가게에서 해보니 영 안 되더라고요. 설거지, 상차림을 딱딱 나눠 분업하면 효율이 올라갈 거 같았거든요. 아니에요. 사람도 더 채용해야 하고, 이모(종업원)들도 제 말에 전혀 따라오지 않더라고요. 제 주장을 할 때마다 어머니가 그랬어요. ‘그런 거 안 해도 여지까지 잘 해왔다.’ 그 때 이렇게 생각했어요. 시장은 구식이다. 내 가게를 하자.”

-첫 가게는 잘 됐나요?

“어머니 말이 맞다는 것 뼈저리게 느꼈죠. 1년도 안 돼 주변에서 ‘접어야 한다’고 했어요. 곱창을 1인분에 7000원에 팔았는데 남는 게 없었어요. 주변과 가격 맞추고, 직접 다 구워주기 위해 사람을 쓰니, 남는 게 없는 거죠. 환장할 노릇이었죠.”

-그래서 가게를 정리했나요.

“아니요. 1년 정도 버텼더니 단골손님이 붙기 시작했어요. 월 매출은 3000만원인데, 남는 건 0원, 그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정말 잘못됐구나 깨달았습니다. 빚 8000만원이 쌓였습니다.”

사실상 적자에 시달리던 김 사장은 2012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곱창집을 또 오픈합니다. 이번에는 가게 이름을 소문난 곱창이 아닌 ‘일도씨 곱창’으로 합니다. 김 사장의 실질적인 독립 선언입니다.

-미아리 가게에서 빚이 쌓였는데 어떻게 또 가게를...

“미아리 가게에서 단골 손님이 생기는 원리를 알았거든요. 자신감으로 빚 1억을 더 얻었죠. 저가로 경쟁하지 않는 곳에서 내 맘대로 해보자 생각했습니다.”

-이때부터 브랜드에 일도씨라는 이름이 붙는데요. 자기 이름을 쓰는 게 살짝 쑥스럽지 않았나요.

“제가 어려서 가게 사장이 됐거든요. 단골은 저보다 나이가 많고, 알바생들은 저랑 비슷했어요. 다들 저를 ‘일도씨’라고 불렀어요. 자연스럽게 가게 이름도 그렇게 정해진 거죠.”

-신사동 가게는 어땠나요?

“미아리에서는 곱창 1인분이 7000원이었는데, 신사동 일도씨에서는 1만원에 팔았어요. 이전 가게는 소곱창전골, 곱창, 막창 다양했는데, 신사동 가게에서는 ‘일도씨 특제곱창’만 팔았어요. 첫 달에 매출이 1000만원이었는데, 수익이 나더라고요.”

 
일도씨 닭갈비의 주요 메뉴. 도계한 지 3일 이내의 냉장 닭고기를 쓰는 게 일도씨 닭갈비의 키 포인트다. /일도씨패밀리

 

◇재료 좋으면 별거 없어도 맛있다

 

신사동에서 시작한 일도씨 곱창이 인기를 끌면서 김 사장은 가게를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곱창집이 아닌 닭갈비집입니다.

-왜 갑자기 닭갈비집이었죠?

“신사동 일도씨 곱창에서 점심 메뉴로 닭갈비를 내놓았어요. 1인분에 6000원을 받았는데, 손님이 바글바글한 거예요. 입소문이 나서 점심 먹으러 택시타고 오는 손님들도 있었어요. 곱창은 호불호가 갈리는 마니아 싸움이거든요. 그런데 닭갈비는 아주 대중적이죠. 아 이거 되겠구나 싶어서 서울 방배동에 일도씨 닭갈비를 연 겁니다.”

-그래도 줄곧 곱창만 하다가 닭갈비를 하기 쉽지 않을 거 같은데요.

“또 어머니 얘기가 나오네요. 어머니는 좋은 식자재에 광적인 집착을 하셨어요. 매일 방앗간, 기름집에 가서 고춧가루, 들깨, 참기름을 받아왔어요. 그냥 받아온 게 아니고 방앗간에서 빻고 기름 짜내는 걸 지켜보고 서 있었어요. 늘 하시던 말씀이 ‘재료 좋으면 별 거 없어도 맛있어’였어요. 닭갈비도 그랬어요. 마늘, 양파, 생강 갈아서 매일 수제소스 만들고 닭고기도 좋은 것만 썼어요.”

-일도씨 닭갈비 1호점은 어땠나요?

“정말 대박이었어요. 오픈하는 날 오전 11시 30분에 간판을 달고 있는데, 이미 긴 줄이 늘어섰죠. 말 그대로 남녀노소 불문이었고, 가족 단위 손님도 많이 찾아주셨어요.”

-계속 잘 됐나요?

“오픈 3개월 동안 가게 앞에 긴 줄이 서다가 차츰 그 줄이 줄었어요. ‘오픈발’이란 게 정말 무서워요. 무엇보다 재료가 제대로 안 돌아갈 게 걱정됐죠.”

-그래서 뭘 하셨나요.

“저는 ‘풀면 온다’고 생각해요. 사이드메뉴였던 스프와 코울슬로를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다시 돌풍이 불더라고요. 스프, 코울슬로 무료 제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도씨패밀리의 로고. 헌팅캡을 쓰고 수염을 기른 모습이 캐리커처로 그려진 후 김일도 대표는 이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일도씨패밀리

 

◇장사 잘 돼야 잘 된다

 

김 사장은 일도씨닭갈비 방배점이 궤도에 오르자, 확장을 거듭합니다. 문정동, 목동, 광화문 등에 잇따라 일도씨닭갈비 매장(직영)을 오픈한 겁니다.

-죄송한 얘기지만, 닭갈비가 맛없기도 힘들지 않나요?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닭갈비는 특히 재료가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원래는 브라질산 냉동닭을 썼어요. 그러다가 국내산 냉동 닭을 먹어봤는데, 이건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뭐랄까 살결이 부드럽고 육향이 좋았어요. 문제는 가격이 브라질산보다 50% 이상 비쌌죠. 그러다가 국내산 냉장을 먹으니 이건 또 다른 세상입니다. 그런데 국내산 냉장은 수입산보다 2배 비쌌죠.”

-그럼 사업적으로는 매력이 없지 않나요.

“재료가 저희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했어요. 무조건 국내산을 쓰겠다 이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이게 마음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납품 단계가 까다로워요. 도계장에서 닭을 잡으면 우선 대기업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또 큰 시장 쪽으로 갔다가 이후에 작은 가게들이 받아요. 소고기, 닭고기는 숙성이라고 하지만, 닭은 잡자마자 산패가 시작돼요. 저희 기준으로는 닭을 잡은 지 4일이면 버릴 때가 됐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이대로면 우리가 결심한다고 좋은 닭고기를 받을 수가 없는 거였죠.”

-그래서 뭘 하셨나요.

“자꾸 하청의 재하청의 재재하청을 통해서 우리한테 닭고기가 오잖아요. 그 유통과정을 하나씩 깨고 싶었어요. 구매력이 필요하니 좀 빨리 가게를 확장했죠. 가게가 5개 정도 되니까 도계장에서 닭을 잡고 당일에 바로 우리한테 보내주는 구조가 됐죠. 하루씩 유통과정이 줄어들 때마다 맛있어지는 게 느껴졌어요.”

-장사 잘돼서 잘 된다는 말을 계속 하시는데 무슨 얘기인가요.

“어머니가 ‘재료 좋으면 별 거 없어도 맛있더라’란 얘기를 입에 달고 사셨다고 했잖아요. 같은 맥락이에요. 장사가 잘 돼서 회전이 빠른 가게는 계속 장사가 잘 될 수밖에 없어요. 신선한 재료를 계속 쓸 수 있는 거니까요. 닭갈비의 경우도 신선한 닭고기를 쓰면 바싹 볶는 오버쿡을 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사실 덜 익혀 먹어도 문제가 없어요. 오히려 오버쿡을 안 하니 더 맛있죠.”

-사장으로서 재료 관리를 직접 하는 게 있어요?

“저는 먹는 장사를 하면 재료가 전부라고 생각해요. 주 재료가 냉동고에 있다? 전 그 가게는 끝났다고 봅니다. 새 가게를 오픈하면 제가 일주일동안 주방에 상주해요. 수요 예측이 안 맞았을 때 닭고기 버리는 작업을 하는 거예요. 직원들은 눈치 보여서 그러지 못하니 제가 먼저 시범을 보이는 거죠. 광화문점이 오픈했을 때는 하루에만 닭고기 250kg을 버렸어요. 재료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직원들이 알게 되고 우리 회사의 DNA가 되길 바라는 거죠.”

일도씨 닭갈비의 조리 모습./일도씨 패밀리

 

김일도 대표의 사장의 맛 잘 보셨나요. 김 사장은 8개 브랜드 17개의 매장을 모두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위치는 절반이 동네 상권입니다. 김 사장이 동네상권을 파고든 이유와 상권을 고르는 비법을 사장의 맛에 공개했습니다. 4일 수요일 기사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