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의 맛]
분점, 가맹점 대신 ‘콜라보’ 상품 출시
“브랜드는 재미 없으면 잊혀진다”
금돼지식당 박수경 대표
서울 신당동 금돼지식당은 2016년 개업 때부터 문전성시인 게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짧게는 1시간, 길게는 3시간씩 줄을 서야 합니다. 그런데 금돼지식당 박수경(37) 대표는 분점, 가맹점 계획이 없다고 합니다. 대신 금돼지식당은 이마트, 현대백화점, 대구1988 등 기업들과 손잡고 협업 제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습니다. 박 사장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미슐랭 등극 삼겹살집, ‘재벌3세’가 한다던데…” [사장의 맛]
◇미슐랭 휴대폰 배경화면에 친구들은 비웃었다
-가맹사업을 하면 돈을 쉽게 벌 수 있을 거 같은데요.
“개업 직후부터 지금까지 가맹점 내고 싶다, 가맹사업에 투자하겠다는 연락이 계속 와요. 그런데 저희 같은 고깃집은 프랜차이즈에 적합한 모델이 아닙니다. 저희는 종업원이 직접 고기를 구워주는 구조라 각 가맹점 매출 규모가 크지 않으면 감당하기 어렵거든요.”
-가맹점이 돈을 못버는 구조라 가맹점을 늘리지 않는다는 얘기군요.
“가맹점을 오픈했는데, 매출이 크게 안 따라오면 직접 구워주는 것 같은 서비스가 제대로 되기 어렵잖아요. 돈이 많아서 가맹점 내는 분들은 별로 없을 거예요. 굳이 그런 분들 돈까지 끌어모아서 돈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그래도 가게가 너무 잘 되고 있는데, 욕심이 나지 않나요?
“100년 가는 식당을 만들고 싶어요. 금돼지식당 오픈할 때 남편 핸드폰 배경 화면이 미슐랭 로고였어요. 그때는 미슐랭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안 들어왔을 때였거든요. 친구들 만나서 ‘우리 나중에 꼭 미슐랭에 선정될 거야’ 그러면 다들 ‘야 무슨 삼겹살집이. 꿈도 크다’고 했어요. 저는 돼지고기 구워먹는 게 한국을 대표하는 식문화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잘 되면 나중에 세계에서도 먹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금돼지식당은 2019년 국내에서 돼지고기구이집 가운데 처음으로 미슐랭 빕구르망에 선정됐습니다. 이후 4년 연속 빕구르망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삼겹살집도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금돼지식당은 2016년 오픈 준비를 모두 마치고도 3개월 동안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친구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혹평을 했나요?
“오픈 직전, 친구들을 불러 시식회를 했어요. 그때 강남에 사는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맛있어. 그런데 우리집 앞에도 이런 데 많아. 내가 여기 두 번 와야 하는 이유가 뭐야?’ 정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그말에 충격 받고 오픈을 3개월 미뤘다고요?
“그 친구 말대로 이대로 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맞아, 이런 식당 엄청 많은데 굳이 우리 식당 와서 먹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줘야 되는 거지’라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3개월 동안 뭘 했어요?
“사실 저는 스토리텔링은 호텔이나 파인다이닝 하는 식당에나 필요한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우리도 그게 필요하다고 결심한 거죠. 좋은 식당을 많이 다녀서 벤치마킹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정식당(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에 갔는데 메뉴 하나부터 열까지 이건 무슨 재료로 해서 만들었다고 설명을 해주는 거예요. 알고 먹으니 더 맛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금돼지식당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으면 종이 한 장이 앞에 깔립니다. 종이에는 이렇게 써 있습니다. ‘0.3% 국내산 프리미엄 돼지만 사용합니다. <요크셔+버크셔+듀록=프리미엄돼지>’ ‘영국 말돈 지방에서 생산되는 120년 전통의 왕실소금을 사용합니다.’ ‘특허받은 청결연탄 사용으로 안전하며, 연탄특유의 불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브랜드 잊혀지면 끝이다
금돼지식당이 유명세를 타자 대기업의 ‘러브콜’이 이어집니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2018년 자기 소셜미디어에 금돼지식당 로고가 박힌 앞치마를 입은 사진을 올렸습니다. 게시물에는 ‘내 생애 최고의 삼겹살, 목살 발견’, ‘금돼지식당 강추’라는 글도 남겼습니다. 이듬해 금돼지식당은 이마트와 손잡고 돈육햄을 출시했습니다. 금돼지식당은 현대백화점, GS25, 농심과도 손잡고 밀키트, 라면류 등을 내놨습니다. 먹거리를 넘어 이불회사(대구1988)와 금돼지이불을 출시하고, 패션 브랜드(TBJ)와 티셔츠, 앞치마를 내놓는 등 이색 협업도 했습니다.
-이름을 빌려주면 로열티를 많이 주나요?
“사실 협업을 통해 큰 돈을 버는 구조는 아니예요. 협업 요청을 하는 기업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저희 브랜드와 합이 좋은 곳을 고르고 또 골라서 하고 있죠.”
-큰 돈도 안 되는데 협업을 하는 이유가 뭔가요?
“협업도 결국 스토리텔링의 일환이라고 생각해요. 100년 가는 식당을 만들려면 브랜드가 탄탄해야 하잖아요. 사람들한테 잊혀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정말 커요. 잊혀지는 순간 저는 끝이라고 생각해요. 잊혀질 때쯤 다시 생각나게 해주는 장치가 필요한데, 협업도 그 중 하나죠.“
-이불회사, 패션브랜드랑 협업은 본업이랑 연결하기 어려워 보이는데요.
“재밌잖아요. ‘식당인데 이런 것까지 하네’란 생각이 들게 하는 거죠. 그냥 식당 말고 하나의 브랜드로 금돼지식당이 사랑받았으면 좋겠어요. 요즘 캠핑 다니는 분들 많잖아요. 캠핑 가면 도마가 불편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나중에는 도마, 칼, 도마가방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요.”
◇선수들과의 동업
박 사장은 분점, 가맹점을 내지 않는 대신 다른 식당을 여러개 냈습니다. 금돼지식당처럼 서울의 맛집으로 꼽히는 뜨락, 몽탄 사장들과 손잡고 뚝도농원(오리고기), 하니칼국수를 오픈한 것입니다. 이른바 ‘선수들의 동업’입니다.
-각 브랜드가 굳건해서 굳이 동업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요.
“처음에는 재미삼아 시작했어요. 그런데 하다보니 서로의 단점을 채워주는 거에요.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서 좋은 매장을 만들 수가 있었어요.”
-메뉴는 매우 일반적입니다.
“우리나라 외식 시장이 정말 빠르게 변해요. 오래가는 식당을 만들려면 희소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희소성’이 새로운 메뉴를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삼겹살, 오리고기 구이, 칼국수는 기존에 있는 메뉴지만, ‘아저씨 메뉴’를 넘어 젊은 친구들도 힙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될 수 있어요. 오리고기는 부위별로 내놓아 북경오리처럼 썰어주고, 칼국수에는 알과 고니를 넣는 식으로요. 감성 플러스 알파를 하면 시장의 파이가 커집니다.”
석남준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2.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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