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빚투’로 95% 날려 vs 적립식 3년 투자로 350% 벌어
8일 서울 테헤란로에 있는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고객센터 전광판. 신인섭 기자
암호화폐 대장격인 비트코인 가격이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업비트에 따르면 8일 오전 비트코인이 개당 4484만원에 거래됐다. 다른 거래소인 빗썸에서는 이날 오전 4473만원을 기록했다. 2017년 말 비트코인 열풍일 불 때보다 훨씬 뜨거운 상승세다. 그러다 보니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비트코인 가격은 2017년~2019년 초 사이 그야말로 롤로코스터를 탔다. 국내에서 2800만원대로 급등했다가 300만원대로 고꾸라지며 많은 투자자를 웃고 울렸다. 2017년 비트코인 급등기부터 투자한 2030 직장인 3명을 만나 만나 그들의 희열과 절망, 애환 등을 들었다.
희비 엇갈린 2030
2017년 선배 귀띔에 비트코인 입문
집 장만 당기려다 단타 실패해 이혼
출근 때 30만원 산 게 퇴근 땐 60만원
빚 내 투자했다 쪽박, 대출 상환 고통
가격 폭락 틈타 적립식 장기 투자
이더리움 등 알트코인은 거래 안 해
# 공기업 직원 A씨(39)
손실→이혼→대박
가정불화, 이혼, 월세살이…. A씨의 인생은 암호화폐 투자 후 일순간에 수렁에 빠졌다. A씨는 2017년 4월, 암호화폐 회사의 개발이사로 일하는 고등학교 선배를 통해 비트코인을 처음 접했다. A씨는 처음엔 이 정체불명의 존재를 불신했다. 그러나 그해 여름께부터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하자 솔깃해졌다. 그래도 큰 욕심은 내지 않고 가격이 조금 떨어질 때 샀다가 오르면 파는 헤드앤드숄더 방식으로 투자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감이 붙은 A씨는 투자원금을 단계적으로 1억원으로 늘렸다. 경기도 남양주에 살던 A씨는 비트코인 투자로 돈을 벌어 서울로 이사할 꿈을 꿨다.
호사다마일까. 투자원금을 늘리자마자 가격이 걷잡을 수 없이 떨어졌다. 손실을 감수하고 팔려고 했지만, 조금이라도 오르면 팔자는 욕심에 매도 시점을 잡지 못했다. 평소 투자에 자신이 있었지만, 춤추는 비트코인 그래프를 따라잡기 어려웠다. 결국 2018년 초, 큰 손실을 보고 일단 투자를 접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우울한 소식을 부인에게 전한 후 매일 부부싸움이 반복됐다. 청소·빨래 같은 시시콜콜한 문제에도 고성이 오갔다. A씨는 결국 부인과 갈라섰다. A씨는 자신의 실패를 용납할 수 없었고, 손실을 만회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혼하며 정리한 남양주 집값을 종잣돈으로 다시 코인 투자에 나섰다. 단, 투자 방식을 바꿨다. 밤마다 기술적 투자 분석법에 매진했다. 2017년 말은 비트코인 상승의 중간 파동이며 앞으로 더 큰 상승장이 펼쳐질 것으로 봤다. 2018년 말~2019년 초 비트코인 시세가 300만원대로 급락했지만 꿋꿋하게 더 사들였다.
그 후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결과적으로 A씨의 예상은 적중했고, 2020년 말 들어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했다. A씨는 비트코인 가격이 전고점을 회복하자 전량 매도했다. 수익률은 170%를 기록했다. 불린 돈으로 최근 서울 재건축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다. 그러면서 머지않아 비트코인 가격이 다시 한번 폭락할 것으로 보고 매수 타이밍을 저울질하고 있다.
# 방송사 직원 B씨(35)
파티→빚투→손절
B씨의 2017년 겨울은 파티의 연속이었다. 암호화폐 시세가 연일 폭등하며 함께 투자한 친구들과 매일 술판을 벌였다. 시세 300원에 투자한 에이다(카르다노)는 1200원으로 치솟았고, 출근할 때 30만원에 산 비트코인캐시는 퇴근할 때 60만원이 돼 있었다. 노래방에서 가수 박정훈의 ‘오늘 같은 밤이면’을 ‘오늘 같은 장이면’으로 개사해 불렀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러나 욕망을 억누르지 못했다. 초기 투자금 1000만원이 금세 3000만원이 되자, 인터넷은행에서 1억원 한도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고 본격적인 ‘빚투’에 나섰다. 1억원을 비트코인과 비트코인캐시·에이다에 골고루 나눠 담았다. 그런데 2018년 1월 거짓말처럼 암호화폐 시세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B씨는 다시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물타기를 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2018년 상반기가 지나자 B씨 계좌의 평가자산은 15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2019년 초에는 5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총자산의 95.5%가 사라졌다. 손실을 확정하지 않기 위해 암호화폐를 팔지도 못했다.
이후 B씨는 빚과 싸우기 시작했다. 매달 40만~50만원씩 청구되는 대출이자를 갚기 위해 퇴근 후 아르바이트를 했다. 빚을 상환하느라 고통이 이어졌고, 자연스레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비트코인과 관련한 호재성 뉴스가 나오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세창을 열어봤지만, 속만 쓰렸다.
그러던 중 지난해 5월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면서 급전이 필요했다. 장학금을 받았지만 학비가 큰 부담이었다. B씨는 결국 비트코인을 모두 정리했다. 1억1000만원을 3년간 묵혀 손에 쥔 돈은 고작 800여 만원. 이 때문에 최근 연일 폭등하는 비트코인 시세를 볼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B씨는 다시는 빚내서 투자하지 않으리란 자신과의 약속마저 깼다. 마이너스 통장에서 1000만원을 꺼내 지난달 20일 비트코인을 또 샀다. 이번엔 반드시 승리하겠노라며.
# 대기업 개발자 C씨(29)
무관심→적립식 투자→장기 투자
국제 비트코인 시세와 주요사건
대학 졸업과 더불어 국내 굴지의 전자회사에 소프트웨어(SW) 개발자로 입사한 C씨. 그는 퇴근 후 주로 가까이 사는 친구들과 만나 맥주를 마시거나 PC게임을 즐겼는데, 언젠가부터 친구들과의 대화에 끼지 못했다. 다들 비트코인 투자에 열광해 술자리와 게임은 뒷전이었다. C씨는 암호화폐는 거품이라고 생각하고 거리를 뒀다.
그러나 비트코인 시세가 급등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비트코인에 일찌감치 투자한 대학교 동기는 벌써 수십 억원을 벌었다더라, 지인 개발자는 큰 돈을 투자받아 암호화폐 회사를 차린다는 등의 얘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2017년 11월, 한 식당에서 50대 부부가, 여의도 커피숍에서 증권맨들이 비트코인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되레 안도했다. 거품이 끝날 때가 머지않았단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비트코인 가격은 폭락했다. C씨는 이제 투자 시점이 왔다고 판단했다. C씨는 2018년 하반기부터 매달 월급에서 50만원씩 적립식으로 투자했다. 또 성과급 일부로 비트코인을 샀다.
이런 식으로 현재까지 총 3000여 만원을 투자해 350%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C씨는 최근의 가격 급등을 편안하게 보고 있다. 비트코인에 대한 대중의 시각교정과 발행량 한도 때문에 1억원까지는 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알트코인은 발행 기업의 결정에 따라 시세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어 투자를 멀리하고 있다. C씨는 당분간은 현재의 투자 방식을 고수할 생각이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중앙선데이] 입력 2021.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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