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 40년 ‘미성정육점’의 소고기 미식 제안
<문화부>소고기_미우_우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1981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 반지하 집에서 일곱 식구가 정육점을 하며 살았다. 아버지가 전국 도매시장을 돌며 고기를 사오면, 어머니가 손질해 동네 주민에게 팔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1987년 서울 강남구 미성아파트 상가 분양에 당첨돼 들어왔다. 1평에 250만원, 지하 1층 15평 공간에 연 이름은 ‘미성정육점’이다. 주변이 허허벌판이던 시절이다. 그 후 34년이 지나 반지하집 자리는 가로수길이 되고, 압구정은 부촌이 됐지만, ‘미성정육점’은 그대로다.
올해는 소의 해, 맛있는 소고기집은 많다. 그런데 지금 34년 된 ‘미성정육점’과 7년 전 그 아들이 연 정육식당 ‘미우’가 화제다. 지방에서 고기를 사러 오고, 식당 예약은 2주치가 다 찼다. 네이버, 인스타그램 등에 글을 쓰는 맛집 유명 인사들이 갑자기 미성 상가로 몰린다.
<문화부>소고기_미우_우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우설'이 효자
상가 지하 1층에 있는 테이블 4개의 정육식당. 안심, 등심, 제비추리 등 다양한 부위가 있지만, 이 가게를 유명하게 만든 건 ‘우설(牛舌)’이다.
소의 특수 부위를 잘 먹지 않는 서양에서도 고급 재료로 치는 부위. 목동들이 다른 건 다 버려도 소의 혀만큼은 꼭 챙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일본에서도 우설은 인기지만, 국내에서는 보기 어려웠다.
미우 ‘우설’은 연분홍빛에 뽀얀 지방이 눈꽃처럼 퍼진 모습이다. 이 대표는 “소 혀 중에서 식도에 가까운 부위만 쓴다. 바깥쪽은 질겨서 맛이 없다. 소 한 마리당 명함 크기로 4조각밖에 안 나온다”고 말했다.
“우설은 숙성이 안 되는 부위예요. 빨리 부패해 냄새도 잘 나고요. 그래서 보통은 냉동해 얇게 썰어 구워 먹는데 그러면 맛이 없어요. 저희는 당일 잡은 소에서 바로 우설을 받아 그날 다 써요.”
숯불에 구운 우설은 소고기의 진한 향에 쫄깃하면서도 전복 같은 식감이다.
또 다른 별미는 ‘육회’다. 보통 쓰는 우둔(엉덩이 안쪽)이 아닌 꾸리살(갈비 바깥쪽과 앞다리 견갑골 사이)을 쓴다.
“모든 고기는 뒷다리보다 앞다리가 맛있어요. 저희는 육회에 배를 안 넣어요. 계란 노른자를 올리긴 하지만, 먼저 고기 맛부터 보고 노른자에 찍어 드시길 권해요.”
가장 많이 팔리는 건 ‘안심’이다. 이 대표는 “‘고기 맛 아는 사람은 등심 좋아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안심이 제일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안심은 근막을 다 제거하고 동그랗게 만든 다음 1인분씩 잘라 28일 정도 숙성한다”고 말했다.
<문화부>소고기_미우_육회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문화부>소고기_미우_안심/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정육점집 아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에서 정육점집 아들 다리오 체키니는 “정육점에서 손님이 좋아하지 않는 고기는 모두 가족의 식사가 된다”고 말했다.
이 대표도 마찬가지다.
“정육점집 아들로 자라면 좋은 고기는 못 먹어요. 저희 집은 매일 소고기 국이었어요. 고기가 어떨 땐 질기고 어떨 땐 연해요. 어릴 땐 고깃국이 제일 싫었어요. 고기 장사를 할 생각도 없었죠.”
대학에서 영문과를 전공했고, 스물다섯 살에 일본에 가 호떡 장사를 했다. 비자 문제 등으로 귀국해 부모님 정육점 일을 같이 했고, 7년 전 정육식당도 열었다. 일반적인 정육식당처럼 합쳐진 형태는 아니지만, 식당 옆에 있는 부모님 정육점에서 좋은 고기를 가져와 팔기 때문에 꽃등심 150g에 3만9000원 정도로 저렴하다. 낮에는 정육점에서 일하기 때문에 점심 장사는 예약 손님만 받는다. 이곳은 투플러스 거세 수소, 그중에서도 9번(근내 지방도 19% 이상)만 사용한다.
“지금은 고기 다듬는 게 재미있어요. 1980년대는 소 한 마리에 5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1300만원 정도 해요. 동네가 부촌이 되고 아파트에 회장님, 의사, 변호사 분들이 많아지면서 선물세트 주문도 많아졌고요. 제일 어려운 건 단골에게 ‘국거리’ 파는 거예요. 전 ‘어느 부위 드릴까요?’라고 되묻거든요. 그럼 그냥 가세요. 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아시는 거죠. 이 집은 어떤 국을 자주 끓이니, 어떤 국거리를 줘야 하는지를.”
[이혜운 기자 liety@chosun.com] 입력 2021.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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