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리플 CEO ‘빵형’ “리플은 국제 송금 분야의 아이튠즈”

해암도 2018. 3. 15. 06:22

시가총액 3위 암호화폐(일명 가상화폐) 리플(XRP)는 한국인들이 ‘최애’하는 코인이다. 암호화폐 정보업체 크립토컴페어에 따르면, 전 세계 리플 거래에서 원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40% 안팎에 이른다(리플 가격 급등기엔 50%를 웃돌았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의 거래량만 전체의 20%를 웃돈다.



 일방적인 구애에도 작년 11월까지 리플은 반응(가격 상승)하지 않았다. 그래서 붙은 별칭이 ‘리또속’. ‘리플에 또 속았다’, 또는 ‘리플이 또 속였다’는 의미다. 오죽했으면 가수 송대관의 노래 ‘유행가’의 한 구절(‘유행가 유행가 신나는 노래 나도 한 번 불러본다’)를 빗대 ‘리또속 리또속 신나는 거래 나도 한 번 물려본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 정도였다. 인터넷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선 ‘마음이 힘들 때는, 리플을 900에 물린 사람도 있다는 걸 기억해!’라는 짤이 하락장마다 등장했다.
 
그랬던 리플이 ‘존버(끝까지 팔지 않고 버틴다는 의미의 속어)’의 아이콘이 됐다. 지난 1월 4일엔 4925원(업비트 기준)까지 치솟았다. 이후 규제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다른 모든 암호화폐와 함께 하락을 시작, 최근엔 1000원 안팎에서 거래됐다. 15일 오전 2시 30분 현재 797원을 기록 중이다. 
 
출처: 리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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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리플을 발행한 리플사(社)를 이끌고 있는 브래드 갈링하우스 최고경영자(CEO)가 14일 한국을 찾았다. 이날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는 국내에서 리플의 인기를 반영하듯 100여명의 기자가 참석했다. 간담회장 입구에는 두 명의 경호원까지 배치됐고, 신분 확인이 철저히 이뤄졌다. 주최 측은 참석을 원하는 일반 투자자들의 문의가 많아 혹시나 모를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갈링하우스 CEO는 국내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는 ‘빵형’ 혹은 ‘마늘빵형’으로 통한다. 일부에서는 “마늘 바게뜨를 들고 빵형 만나러 가겠다”는 말이 돌았다.
 
한국인들이 최애하는 리플에 대한 궁금증을 ‘빵형’의 답변으로 정리했다.
(※리플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각국 은행 사이 원활한 송금을 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다. 이 회사가 발행한 암호화폐가 시가총액 3위(약 300억 달러)의 XRP다. 국내에서는 XRP 역시 리플로 부른다. 갈링하우스는 XRP라 칭했지만, 기사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리플로 표기한다. 대신 회사 리플은 리플사로 바꿔 썼다.)
 
리플은 암호화폐인가
골수 비트코인 지지자들은 리플을 ‘짝퉁’으로 여긴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첫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의 정신, 탈중앙화(decentralized)의 철학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채굴로 2100만개가 생성되는 비트코인과 달리, 리플은 리플사가 1000억개를 발행해서 시장에 유통하는 구조다. 현재도 리플사가 약 60%의 리플을 들고 있다.
 
갈링하우스는 “리플이 중앙화됐다는 것은 오해”라고 단언했다. 리플 역시 분산원장인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하고 있다. 그는 “리플은 오픈소스 기술이며 누구든 검증인(밸리데이터ㆍvalidator)이 될 수 있다”며 “전 세계 비트코인의 97%가 4%의 디지털 지갑안에 있는 걸 감안하면 오히려 비트코인이 더 중앙화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래를 검증하는 노드가 리플은 지난 1월 기준으로 25개 정도에 불과하고, 비트코인의 노드는 수천개에 달한다. 리플이 중앙화됐다고 볼 수 있다. 또 많은 비트코인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거래소 지갑에 보관하는 걸 감안하면 비트코인의 지갑 집중도는 실제보다 과도하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 비트코인은 사이퍼펑크 문화의 토양에서 탄생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은 극단의 프라이버시와 자유를 추구했다. 정부와 기업 등 일체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원했다. 그래서 그들이 정보의 자유를 위해 도입한 기술이 암호학(cryptography)이다. 비트코인은 암호화(crypto) 기술을 적용한 화폐(currency), 곧 암호화폐다.
 
갈링하우스는 간담회 내내 암호화폐가 아니라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가 보기에 리플 뿐아니라 비트코인 역시 화폐가 아니다. 실물 거래에 쓸 수 있어야 화폐다. 그는 “비트코인을 가지고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사 먹을 수 없다”며 “설사 사 먹는다고 해도 수수료 때문에 두 배는 비싼 커피를 마셔야 하고 결제 승인을 기다리는 사이 커피가 다 식을 것”이라고 말헀다. 갈링하우스는 “리플은 국제 송금을 위한 수단으로 가치가 있는 자산이고,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리플은 혁명을 원하나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암호화폐는 시스템 전복을 꿈꾼다. 비트코인은 기존 법정화폐의 단점과 금융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탄생했다(비트코인의 탄생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다).
 
리플은 암호화폐가 아니기 때문에 법정화폐(원화, 달러 등)와 경쟁하지 않는다. 리플은 국제 송금을 도와주는 매개체일 뿐이다. 갈링하우스는 “블록체인 업계 내에서도 우리(리플사)는 이단아”라며 “무정부적이고 체제에 반대하는 게 암호화폐와 비트코인의 문화이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정부ㆍ금융기관 등 제도권과 함께 해법을 찾으려는 역발상의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출처: 리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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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그가 예로 든 것이 ‘냅스터’다. 갈링하우스는 “비트코인은 디지털 자산의 냅스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냅스터는 컴퓨터 저장장치에 개인별로 보유한 MP3 파일을 공유ㆍ교환해 주는 무료 소프트웨어다. 우리로 치면 소리바다쯤 된다. 1999년 혁명적으로 등장해 디지털 음원의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사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기존의 법과 제도의 틀인 저작권 문제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음원 비즈니스는 저작권 문제를 해결한 아이튠즈 등에서 꽃피웠다. 갈링하우스는 “리플사는 은행과 함께 (국제 송금이라는) 문제의 해법을 찾는다”고 “영란은행, 사우디아라비아 중앙은행 등 각국 중앙은행이 우리의 고객”이라고 말했다.
 
리플사는 혁명을 바라지 않는다. 혁신을 추구할 뿐이다. 리플사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가치의 인터넷을 만들기를 원한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자유롭게 주고받는 것처럼 블록체인을 활용해 가치를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게 만드는 게 목표다. 리플사가 주목하는 문제는 국제 송금이다.
 
갈링하우스는 “현재 미국으로 1000만원을 보내는 가장 빠른 방법은 현금 다발을 들고 인천공항으로 가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타는 것”이라며 “우주에서 보내는 동영상도 실시간으로 받아보는 시대에 국제 송금이 며칠씩 걸리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국제 송금은 국제송금을 담당하는 금융회사들이 세계 곳곳에 계좌를 마련하고 계좌에 돈을 넣어두는 구조였다. 이런 식으로 국제송금을 위해 잠자는 유동성이 10조 달러에 이른다. 여러 은행을 거치기 때문에 느릴 뿐더러, 신뢰성도 떨어진다. 갈링하우스에 따르면, 송금 에러율은 6%에 이른다.
 
비트코인은 법정화폐와 금융시스템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국제 송금 문제를 해결한다. 그 과정에서 익명성 등이 문제가 되고, 기득권의 반발에 직면한다. 반면 리플사는 금융당국과 당국의 규제를 받는 금융회사들과 함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국제 송금 문제를 해결한다. 국제 송금 분야의 아이튠즈는 리플사가 될 것이라는 게 갈링하우스의 주장이다.  
 
리플사가 커지면 리플이 오를까
작년 말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이 리플을 사용한 국제송금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소식에 국내 투자자들이 열광했다. 그러나 이들 은행은 리플사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제 송금을 시도한 것이지 암호화폐 리플을 사용한 게 아니었다.
 
리플사는 국제 송금을 위해 은행에 두 가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먼저, X커런트. 한 은행에서 다른 은행까지의 국제 송금 과정을 청산까지 원스톱으로 서비스한다. X커런트 서비스를 이용하는 은행들은 리플이 아니라 법정화폐를 사용한다. 일종의 지불증서(IOU)를 교환하는 식으로 국제 송금이 이뤄진다.  
 
X커런트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상대 은행에 계좌가 있어야 하며 사전에 어느 정도 자금이 예치돼 있어야 한다. 그런데 X래피드라는 서비스를 활용하면 기존의 관계가 없어도 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필리핀으로 돈을 보낸다고 하자. X래피드를 활용하면 한국의 거래소에서 원화를 리플로 바꾸고, 필리핀 거래소로 보낸 뒤 필리핀 거래소에 리플을 페소로 바꾸는 식이다.  
 
현재 X커런트 서비스에 가입한 금융회사는 100여곳이 넘지만 X래피드를 활용하는 곳은 웨스트유니언 등 손으로 꼽는다. 은행들이 리플사의 네트워크에 들어와도 정작 리플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리플의 가치가 오를 이유가 없다.
 
갈링하우스는 이에 대해 “리플 상태계가 활발하게 커 가는 게 리플사의 입장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X커런트는 국제 송금을 위해 잠자는 10조 달러에 달하는 유동성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서비스”라며 “이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키워 나간다면 리플 가치는 자연스럽게 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은행들을 대상으로 컨소시엄 블록체인을 구성하고 국제 송금 플랫폼인 ‘코다(Corda)’를 개발한 R3 등의 존재도 리플 가격의 위험 요소다. 갈링하우스는 그러나, 리플사와 리플의 경쟁력을 자신했다. 이들의 시도는 아직 실험실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지급결제망의 핵심 가치인 ‘네트워크 효과’를 강조했다. 갈링하우스는 “세상에서 가장 처음 전화기를 산 사람은 전화기의 가치를 모른다”며 “전화기의 가치는 전화기를 가진 사람이 많아질수록 높아진다”고 비유했다. 곧, 리플사가 국제 송금 네트워크를 선점했기 때문에 리플사가 국제 송금 분야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업체라는 주장이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8.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