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의 젠더 사이언스]

운명적인 사랑의 주인공들은 대개 첫눈에 서로에게 빠져든다. 꼭 외모뿐만 아니라 미소나 분위기,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런데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사랑은 눈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코를 통해 촉발된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페르시아에서는 어떤 사람이 마음에 든다는 표현을 ‘저 사람의 냄새가 코에 와 닿는다’라고 한다.
자연에서 얻은 향료를 알코올에 녹여서 제조한 최초의 증류 향수는 1370년경에 탄생한 ‘헝가리워터’다. 당시 헝가리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수족 마비 증세를 보이자 신하가 허브를 조합해 만든 치료약이다. 이 향수의 효과는 정말 대단했다. 70세나 되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이웃의 폴란드 국왕이 청혼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예로부터 이성을 유혹할 때 사향이 널리 사용됐다. 사향은 사향노루의 배꼽 근처에 있는 향낭에서 배출되는 향이다. 남편이 첩을 두어도 투기를 하면 안 되었던 조선 사대부 가문의 여인들은 사향으로 남편의 마음을 붙들곤 했다. 옛날 기방에서는 얼굴이 예쁘지도 않은데 유난히 손님에게 인기가 많은 기생을 ‘사향년’이라고 불렀다.
싱가포르에서는 독신 여성에게 감귤계의 향을, 독신 남성에게는 사향을 나눠준다. 정부가 굳이 무료로 향수를 나눠주는 까닭은 폴란드 국왕이나 조선 사대부 여인의 사연과 똑같다. 바로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다. 우리처럼 저출산·고령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싱가포르의 종합적인 출산대책 중 하나다.
여성들은 화장의 마지막 단계에서 향수를 뿌린다.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최고의 묘약이기 때문이다. 요즘엔 좋은 냄새로 온몸을 치장한 남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향수는 어디까지나 인공 향일 뿐 자신의 진정한 체취는 아니다.
나폴레옹이 연인 조세핀에게 씻지 말고 기다리라고 한 이유
향수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다. 소설의 주인공 장 그루누이는 온갖 사물을 냄새로 식별하는 후각의 천재다. 그는 파리의 향수 제조장인의 도제로 들어가 지상 최고의 향수를 만드는 꿈을 꾼다.
그런데 그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선택한 것은 ‘살인’이다. 그는 몸에서 매혹적인 향내가 나는 25명의 여인을 살해해 지상 최고의 향수를 만든다. 즉, 타고난 후각의 천재가 찾아낸 이 세상 최고의 향은 바로 사람의 몸에서 나는 자연 향이었던 것이다.
나폴레옹은 사람의 몸에서 나는 고유의 체취가 얼마나 자극적인지 잘 알고 있었다. 오랜 전쟁을 마치고 고국으로 향하던 그는 연인 조세핀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일주일 후에 돌아갈 것이니 그때까지 몸을 씻지 말고 기다려주시오. 당신의 냄새가 그립소.”
페로몬이라는 화학 신호를 최초로 발견한 이는 1930년대 독일 화학자 아돌프 부테나트다. 그는 누에나방의 암컷이 분비하는 페로몬을 맡고 수km 밖의 수컷 나방들이 날아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암컷 나방의 페로몬은 한 숟갈 분량만 모아도 전 세계의 수나방을 모두 불러 모을 수 있을 만큼 흡인력이 대단하다.
페로몬이 들어간 향수는 인간에게도 효과가 있음이 증명됐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연구진의 실험 결과, 페로몬 향수를 사용한 여성은 키스나 섹스 등의 성적 행동이 3배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 물론 이 실험에 사용된 페로몬은 사람의 페로몬이 아니라 사향 등에서 분리해낸 것이었다.
실험 당시만 해도 인간의 페로몬 성분이 정확히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았으나, 최근엔 2종의 물질이 그 후보에 올랐다. AND로 표기하는 ‘안드로스타디에논(androstadienone)’과 EST로 표기되는 ‘에스트라테트라에놀(estratetraenol)’이 바로 그것.
여성을 유혹하는 남성 페로몬인 AND는 남성의 겨드랑이 털 및 피부, 정액 등에서 발견되며, 여성 페로몬 후보 물질인 EST는 여성의 소변에서 발견되는 성분이다. 그런데 이 성분들이 정말 성적으로 이성을 흥분하게 하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여자들은 냄새만으로도 다 안다

그러나 지난 3월 서호주대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 결과는 이와 정반대다. AND와 EST 모두 이성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어떤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 연구진은 시중에서 상업적으로 광고하는 AND, EST 관련 문안을 모두 떼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인간 페로몬의 존재를 주장해왔던 과학자들은 반박하는 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그들은 인간 페로몬의 경우 매우 미묘하고 신비한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으므로 섣불리 그 존재 유무를 판단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경우 같은 종의 동물끼리 커뮤니케이션에 사용하는 물질인 페로몬의 존재가 아직 확인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존재를 유추할 수 있는 연구 결과는 많다. 대표적인 것이 ‘땀에 젖은 티셔츠 실험’이다.
핀란드 연구팀이 여성들이 이틀 동안 입은 티셔츠를 남성들에게 주고 냄새를 맡도록 했다. 그 결과 남성들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냄새는 배란기에 있는 여성들의 티셔츠였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 연구팀의 실험 결과에서는 더욱 구체적인 효과가 검증됐다. 배란기 때 여성들이 입었던 티셔츠의 냄새를 맡은 남성들의 경우 비배란기 때 입었던 티셔츠의 냄새를 맡은 남성들보다 테스토스테론이 더 많이 분비된 것. 테스토스테론은 고환에서 추출되는 남성호르몬으로서, 생식기의 발달을 촉진하고 기능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남성 티셔츠에 대한 여성들의 후각 능력은 이보다 훨씬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연구팀은 용모 수준이 비슷한 남성들에게 땀이 날 정도로 운동을 시킨 후 여성들에게 그 셔츠의 냄새를 맡게 했다. 그러자 여성들이 호감을 표시한 티셔츠의 주인공은 실제 맞선 자리에서 자신이 선호한 남성과 대체로 일치하는 결과를 보인 것. 즉, 외모를 보기에 앞서 냄새만으로 이미 호감을 가지는 이성을 선택한다는 의미다.
최근 호주 매쿼리대학의 연구팀이 발표한 실험 결과는 더 놀랍다. 남성 40여 명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 그룹에게는 다양한 채소와 과일을 먹게 하고, 다른 그룹에게는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 등이 다량으로 함유된 식단을 계속 먹게 했다. 그런 다음 여성들에게 남성들의 땀이 밴 티셔츠 냄새를 맡게 한 결과, 여성들은 채소와 과일을 많이 섭취한 그룹의 티셔츠에서 더 많은 매력이 느껴진다고 답한 것이다. 여성들은 이미 냄새 정보만으로 건강한 식습관을 지닌 배우자인지 아닌지를 알아차리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