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직 직감 하나로, 추락하는 비행기서 탑승객 155명 전원 살린 영웅

해암도 2016. 11. 20. 05:59


208초 사이 '영웅'이 된 남자 

[그 작품 그 도시]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 허드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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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허드슨강의 겨울 풍경.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에서는 양쪽 엔진을 모두 잃은 비행기가 허드슨강에 비상착륙해 승객 전원이 구조되는 ‘기적’ 이후를 이야기한다. 교통안전위원회에서 기장 설리가 안전 수칙대로 행동했는지 조사에 나서면서 영웅으로 추앙받던 설리는 혼란에 빠진다./플리커
2009년 1월 15일. 승객 155명을 태운 US항공 1549편은 이륙 직후 기러기 떼에 부딪혀 양쪽 엔진을 모두 잃는다. 관제탑에서는 인근 공항으로 회항하기를 유도했지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42년 경력의 기장 체슬리 설렌버거(그의 애칭이 '설리'다)는 허드슨강 착륙을 시도한다. 승객들에게 캡틴은 이런 문장으로 비상착륙을 알린다. "충돌에 대비하세요(Brace for impact)."

파일럿을 친구로 둔 덕에 비행기를 타면 기종부터 꼼꼼히 살펴보는 나 같은 사람이 그려볼 수 있는 최악 상황은 이것이다. 추락처럼 보일 게 틀림없는 비상착륙! 항공 역사상 이런 식의 '비상 착수'에서 생존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통계까지 알고 있다면 더 그럴 것이다. 1월, 허드슨강 온도는 영하 20도였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난다. 헌신적 승무원들과 출근자들을 태운 채 이동 중이었던 페리, 뉴욕 해양구조대의 구조로 탑승자 155명은 전원 구조된다. 이 기념비적 사건은 허드슨강의 기적으로 불리고 이 비행기 기장 설리는 이 시대의 영웅으로 등극한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실제 이야기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설리'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이 사건의 이면에 대해 이야기한다.

문제는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가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시작된다. 항공 엔지니어들의 의견과 컴퓨터 모의실험을 종합한 결과, 낮은 고도와 망가진 엔진 때문에 회항이 불가능했다는 설리의 말과 다르게 인근 라과디아 공항으로 회항할 수 있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 결과가 의미하는 건 이것이다. 설리가 회항이라는 방법이 아닌, 지극히 위험하고 무모한 비상 착수로 승객들을 한꺼번에 위험에 몰아넣었다는 것. 스토리는 급반전한다. 하지만 이 모든 현장을 설리와 함께 경험한 부기장이 분노에 차 주장한다. "비행은 게임이 아니에요! 우린 살아 있는 승객을 태운 거였다고요! 기장님이 라과디아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있는 겁니다!"

조사원들은 '우리는 그저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 영화의 악당이 아니다. 설상가상, 그들은 조사 결과 비행기 왼쪽 엔진이 최소한으로 작동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때 설리의 악몽이 시작된다. 그는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내가 정말 잘못 판단한 걸까. 엔진이 작동하고 있었다니, 말도 안 된다. 상황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안전국의 조사를 받느라 부기장과 함께 호텔에 격리된 설리는 그의 판단이 절대 틀리지 않았다고 강조하는 부기장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정말 웃기는 게 뭔 줄 알아. 40년 동안 승객 100만명을 태웠는데, 208초 사이 일로 평가받는다는 거야!"

세계를 구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체크리스트일까? 시스템일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답은 한결같다. 그는 영웅적인 한 개인이 세계를 구원한다고 믿는다. 이때 영웅을 정의하는 방식은 특정 시대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되기도 한다. 길에서, 호텔에서, 바에서 설리는 낯선 사람들의 다정한 포옹과 키스를 받는다. 그를 위해 '설리주'를 만들었다는 바텐더를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한없이 고독해진 영웅은 대낮에도 비행기 충돌 악몽을 꾸며 끝없이 되묻는다. 내가 한 일이 정말 '최선'이었을까.

안전사고가 일어나면 조사국은 수칙대로 움직였는지부터 살핀다. 하지만 설리가 승객을 살리고자 허드슨강으로 비상 착수를 시도하기 위해 건너뛴 매뉴얼은 무려 15가지였다. 그는 42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신이 했던 일, 수없이 단련해 내재된 지식을 바탕으로 직감대로 행동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그는 조사국의 말을 인정할 수가 없다. 자신의 일이 곧 나 자신인 사람이 겪게 되는 가장 치명적 상처는 평생 해 온 그 '일'을 불명예로 잃는 것이다. 그는 이제 자신의 행동이 최선이었다는 것을 직접 증명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모든 건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조사위원회에 참석한 설리는 회항이 가능했음을 보여주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이 조사에는 인간적 요소가 빠졌다고. 우리는 단 한 번도 그렇게 낮은 고도에서 새 떼 때문에 양쪽 엔진을 모두 잃게 되는 상황을 경험해 보지 않았다고 말이다. 그는 시뮬레이션은 모든 상황을 이미 파악하고 있는 전제에서 진행한 것이기 때문에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인간적 오류를 밝히고 싶다면 인간적 요소를 넣어야 한다고 말하던 그가 질문한다.

"시뮬레이션의 착륙을 위해 저들이 이 상황을 몇 번이나 연습한 거죠?"

결국 조사위원회는 그들이 17번이나 이 상황을 연습했다는 것을 밝힌다. 인간적 요소를 고려해 반응시간을 35초로 재지정한 후 실험한 결과는 대참사였다. 회항은 불가능했고, 비행기는 뉴욕의 건물과 충돌한 것이다. 이 영화는 직업이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시대의 윤리에 관한 이야기다. 이때 직업윤리는 155명을 구해낸다. 155는 숫자가 아니다. 그들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의 엄마이거나 아들이었다. 설리는 영웅은 '나'가 아니라 '우리'였다고 증언한다. 충분히 감동적인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역설을 설리를 연기했던 톰 행크스의 인터뷰에서 발견했다.

"영화에서 설리는 매일 4번씩 승객 155명을 비행으로 실어 날랐다. 승객은 그에게 안전을 맡겼고, 설리는 자진해서 그 일에 책임을 졌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설리는 충분히 영웅이고, 영웅적인 일을 해왔고, 해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가 자기 일을 언제나처럼 완벽하게 했다면 누구도 그가 영웅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영화의 마지막, 조종실의 실제 음성 기록을 살펴본 후 설리는 부기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넨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흐트러짐이 없었어. 그 위험한 상황에서 말이야. 우리는 같이 해냈어. 우린 할 일을 했어!"

우리는 할 일을 했다. 나는 몇 번이고 이 말을 되뇌었다. 이 말은 내 심장을 아프게 후벼 팠다. 이 영화에서 세월호의 비극을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세월호의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할 일을 하는 사람'은 분명 존재했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젊은 여교사와 용감한 탑승객이 있었다. 그들의 영웅적 행위가 그 누구의 죽음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팠다. 영웅의 정의가 하나일 수 없듯이, 비극의 정의 또한 하나일 수 없다. 나는 앞으로 보게 될 모든 재난 영화 뒤에 세월호가 있을 것이란 걸 깨달았다. 그것이 한 번 더 깊숙이 상처받는 일이 되리란 걸.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조선일보   백영옥·소설가     입력 : 2016.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