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젠’ 꺾은 개발자 임재범
“1초에 3만번 경우의 수 계산
감정·기분에 흔들리지 않아
사람과 대국 이기는 날 올 것”
이런 통념이 깨지는 날이 올까. 인공지능 컴퓨터의 바둑 실력이 무서운 속도로 늘고 있다. 그 가운데 최고봉은 한국의 ‘돌바람’. 기력은 아마 5단 정도다. 프로기사에게 4점을 깔고 팽팽한 대결을 벌인다.
‘돌바람’은 지난 10~15일 중국에서 열린 제1회 미림합배 세계컴퓨터바둑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중국·일본·대만·미국·프랑스·체코 등 7개국 9개 팀이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 ‘돌바람’은 일본의 강호 ‘젠(zen)’을 꺾고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돌바람’과 바둑을 둔 중국의 롄샤오(連笑) 7단은 “도저히 컴퓨터 바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이라며 “특히 상변의 수상전과 하변의 양패에 대응하는 수를 보며 깜짝 놀랐다”고 평가했다. ‘돌바람’ 개발자 임재범(45) 누리그림 대표를 만나 컴퓨터 바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언제부터 바둑프로그램을 개발했나.
“대학을 졸업한 뒤 한메소프트 위고바둑 등에서 네트워크 서버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바둑을 좋아해 1997년 ‘바둑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 지만 ‘바둑이’의 기력이 아마 초단도 안 됐다. 당시는 더 이상 기력을 높이는 게 어렵다고 보고 포기했다.”
- 다시 도전한 계기는.
“2012년 일본의 바둑 프로그램 ‘젠’을 알게 됐다. 내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아마 4~5단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자극을 받아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돌바람’ 프로그램을 만들 때 프로기사와 협업했나.
“아니다. 내 기력이 7급 정도인데 전적으로 혼자 만들었다. 프로그램 개발과 바둑 실력은 아무 상관이 없다.”
-‘젠’에서 힌트를 얻었나.
“그렇다. ‘젠’은 몬테카를로(Monte Carlo) 방법을 기반으로 한다. 이를 참조해 프로그램의 기능을 보다 최적화하고 효율화하는 데 힘썼다. 특히 나쁜 수를 두는 확률을 낮추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다듬었다.”
- 몬테카를로 방법에 대해 설명하면.
“모의 대국으로 데이터를 모은 다음 통계적으로 더 나은 수를 찾는 것이다. 컴퓨터는 1초에 3만 번까지 경우의 수를 놓아볼 수 있다. 아무리 랜덤이지만 무수히 많은 데이터가 쌓이면 그중에서 가장 좋은 수를 찾아낼 확률이 높아진다.”
- 확률 싸움이면 대국에 따라 기력 편차가 있겠다.
“물론 대국에 따라 기력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사람도 바둑 둘 때 실수를 하지 않는가. ‘돌바람’도 그 정도의 편차라고 보면 된다.”
- ‘돌바람’의 약점은 무엇인가.
“사람은 바둑을 둘 때 필요한 부분을 떼어놓고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컴퓨터는 몬테카를로 방법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매번 바둑판 전체에 대한 경우의 수를 계산한다.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하니 수읽기가 분산돼 확률적으로 실수가 나올 수 있다.”
- 그렇다면 강점은 무엇인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기분에 따라 가치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컴퓨터는 이런 부분에서는 크게 유리하다.”
- 컴퓨터가 사람을 이기는 날이 올까.
“현재 몬테카를로 방법으로는 완전히 따라잡기 어렵다. 전혀 새로운 방식이 나와야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컴퓨터가 사람을 이기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프로그램을 내 손으로 만들고 싶다.”
- 컴퓨터가 바둑까지 정복하면 아쉬울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바둑의 고유한 가치가 변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단순한 규칙으로 복잡한 판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임은 바둑 말고는 없다.”
글=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중앙일보] 입력 2015.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