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추월하려면 차선을 바꿔야한다

해암도 2014. 11. 9. 07:11

이어령과 떠나는 知의 최전선 <9> 에디슨과 테슬라

지(知)의 최전선에서 이 교수의 첨단 무기는 말(語)이다.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쓰는 말의 어원을 파고들어 개념을 끄집어낸다. ‘아시아’가 그랬고 ‘바이러스’가 그랬다. 기업의 이름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이름이 아주 중요한데, 우리나라 기업들의 이름은 로마나이즈(romanize)가 쉽지 않아. 일본은 안 그렇거든. 예를 들어 카메라 회사 캐논은 관음보살의 ‘관음’(觀音·일본어 칸논 kannon)에서 나온 말이야. 창업주가 독실한 불교신자였대. 그걸 규칙이나 표준을 뜻하는 그리스어 ‘canon’으로 슬쩍 바꾼 거지.”

“이름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시는 이유가 뭔가요?”

“정치가가 권력에, 기업가가 돈에 관심 있듯 인문학하는 사람이 글자에 관심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게다가 이름에는 중요한 뜻이 담겨있거든. 미국의 전기 자동차 테슬라(Tesla사진) 얘기를 해볼까. 왜 하필 테슬라라고 붙였을까? 이걸 알려면 에디슨과의 관계를 알아야해.”

테슬라가 사람이었구나. 재빨리 검색을 했다.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1856~1943). 크로아티아 출신의 천재 물리학자이자 전기공학자, 발명가. 미국으로 건너와 교류 발전기를 만든 그는 직류를 고집하는 에디슨과 사사건건 부딪히며 결국 자신의 주장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이 ‘전류 전쟁’은 공학사에서는 아주 유명한 얘기인데, 대부분의 우리는 에디슨만 알고 테슬라에 대해서는 별로 들어본 적도 없다.

“테슬라의 위대한 점은 전깃줄이 막 깔리고 있을 무렵에 이미 무선 시대를 생각했다는 거지. 무선 통신은 마르코니가 발명했다고들 알고 있는데 사실 테슬라가 2년 먼저 한 거야. 오늘날 리모컨 블루투스의 기초가 다 그 사람에게서 나왔어. 이 사람 생각이 너무 앞서가서, 일설에는 이 사람이 죽었을 때 연구자료를 CIA가 모두 가져갔다는 얘기도 있어. 전파나 레이저로 무기를 만든다고 생각해 봐. 하여튼 실리콘밸리 애들이 전기 자동차를 만들면서 이 에디슨의 라이벌 이름을 썼다는 것은 시대를 앞서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봐야지.”

이 교수는 ‘쉬프트(shift)’라는 말을 강조했다. “중국이 우리를 쫓아오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훌쩍 뛰어넘어(shift) 앞서는 것은 정말 무섭다”고 했다. 유선을 뛰어 넘어 무선으로, 휘발유차를 뛰어 넘어 전기차로 바로 가는 것. 3D 프린터로 집과 바이러스를 찍어내는 것. 그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 강대국 사이에 끼여있는 대한민국이 진정 추구해야할 길이라고 했다. 테슬라는 벤츠나 도요타를 쫓아가지 않고 그것을 넘어섰다(shift)는데 포인트가 있다는 것이다.

“전기차 이용을 높여야 한다면서 충전소를 곳곳에 세워야 한다고 하잖아. 그러나 그런 식이라면 장래성이 없어. 그럼 그게 지금의 주유소와 무슨 차이가 있나. 각자 집에서 충전할 수 있도록 해야지. 집집마다 태양열 에너지를 만들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거잖아.”

그는 에디슨 대신 테슬라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남의 뒤를 쫓아가서는 절대로 그를 앞설 수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과학과 기술의 수준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상상이거든. 그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지. 그것도 과거를 쏘우트(thought)하는 인문학이 아니라 현재를 씽킹(thinking)하는 살아있는 인문학. 아직도 창의 교육의 상징으로 아이들에게 에디슨을 가르치는데 그건 아니야, 에디슨이 왜 테슬라에게 이기지 못했는지 그 원인을 가르치는 것이 우리 미래를 만드는 일이지.”

이 교수는 칸트가 아니라 테슬라를 인문학자로 읽고 있다. 테슬라 전기 자동차와 구글 무인 자동차가 앞으로 인간의 생활과 사상을 어떻게 바꿀지 보여주기 위해서 두툼한 인쇄물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글 정형모 기자, 사진 중앙포토    [중앙선데이] 입력 2014.11.09 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