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美최대 한인은행 BBCN 김상훈 설립자

해암도 2014. 10. 11. 06:44

  • 최저임금 노동자로 시작, 69억달러 자산 은행 키운


지난 7월 21일부터 24일까지 나흘간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요바린드 컨트리클럽에서 2014년 미국 주니어 골프협회(AJGA) 챔피언십 대회가 열렸다. 타이거 우즈와 필 미켈슨 같은 미국 유명 프로골퍼들이 주니어 시절 우승한 대회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대회인 만큼 그동안 랄프로렌, 코카콜라, 맥도날드 같은 유명 기업들이 타이틀스폰서였다. 올해의 타이틀스폰서는 미국 LA에 본사가 있는 한국계 은행 BBCN이었다. 올해는 ‘2014 BBCN 주니어 챔피언십’이란 이름으로 치러졌다. 미국 내 한국계 은행은 물론이고, 미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을 모두 합쳐서도 한국계 기업으로 이 대회 스폰서가 된 건 처음이었다.

BBCN(Business Bank of Center and Nara)은 현재 나스닥에 상장되어 있고, 자산규모가 69억달러(약 7조원)다. BBCN이 이 대회의 타이틀스폰서를 하게 된 것은 한국계 은행으로서 미국 주류사회에서 주목받을 만한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한류, 한식 등 최근 들어 한국 문화가 미국 사회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주류 언론에서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다. 이 은행의 설립자인 김상훈(74) 이사는 “한국계 기업으로서 미국 주류사회에 한국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 대회를 후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자가 김 이사를 만난 건 2년 전 LA에서다. 저녁 자리에서 만난 김 이사는 청바지에 허름한 셔츠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영락없는 동네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맥주잔에 정확히 소주 반, 맥주 반을 가득 따라서 ‘폭탄주’를 제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폭탄주를 좋아하는 동네 할아버지인 줄 알았는데, 며칠 뒤 누군가가 그 할아버지가 미국 내에서 제일 큰 한인은행의 설립자라고 귀띔해줬다.
미국 한인은행 BBCN 김상훈 설립자. /사진=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미국 한인은행 BBCN 김상훈 설립자. /사진=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다음날 우연히 김 이사의 집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김 이사가 탄 폭탄주를 보고 한 번 놀랐다면, 그의 집을 보고 두 번째로 놀랐다. 몇 해 전 TV에서 봤던 할리우드 스타인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살던 집과 비슷한 규모였다. 한 사람이 가진 것이 그 사람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다르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김 이사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이후 지인에게 부탁해 다시 마주할 자리가 생겼다.

여러 사람과 어울려 술자리를 할 때는 몰랐는데, 마주한 김 이사는 ‘꿈’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었다. ‘내 꿈은 말이야’라는 말을 즐겨 했다. 동포들에게 그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다. 그는 “BBCN이 향후 미국 주류사회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이고, 한국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의 꿈을 얘기했다.

그를 2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지인의 그림 전시회를 보려고 3년 만에 모국을 찾았다. 그를 지난 9월 14일 서울 광화문의 코리아나호텔에서 만났고, 이후에도 그의 숙소를 비롯한 다른 장소에서 두세 차례 더 만났다. 김 이사는 미국 주니어 골프대회를 후원하거나 디즈니홀에서 대형 콘서트를 여는 등 2년 전 얘기했던 꿈을 하나둘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기자가 보기에는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는 스스로를 ‘실패한 인생’이라고 규정지었다. 김 이사는 “아직 꿈을 다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지만, 꿈은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다.

여러 차례 그를 만나면서 이번에는 김 이사의 과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북 출신인 그는 1967년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하면서 도미를 선택했다고 한다. “어차피 남한은 타지이고 미국도 타지인데 이왕이면 조금 더 넓은 땅이 기회가 많을 거라고 생각해서 미국으로 건너오게 됐죠.” 한국에서야 명문대학을 나왔지만, 미국에서는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에서 온 한낱 노동자일 뿐이었다.

“지금이야 한국이 10대 경제대국이라 하고 삼성이나 현대차가 잘 알려져 있지만, 그때는 미국 사람들이 한국을 아주 미개한 국가로 알거나 아예 알지를 못했습니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 한국전쟁 당시 병동을 다룬 드라마가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한국이 얼마나 못사는 나라로 그려졌겠어요.”

그가 미국에서 처음 일한 곳은 인력업체였다. 최저임금을 받고 몇 년 동안 일하다 1970년 가발회사 영업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이사는 10개월 만에 가발회사를 차렸고, 이 회사를 5년 만에 미국에서 가장 큰 가발회사로 성장시켰다. 1977년에는 의류업에 뛰어들었는데, 이때만 해도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은 한국으로 말하면 ‘할인매장’에나 들어가는 저가 브랜드였다. 김 이사의 회사에서 만든 제품은 ‘메이시스’와 같은 백화점에 입점했고, 한국 제품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바꿔 나갔다.

김 이사가 본격적으로 ‘뱅커’로 변신한 것은 1984년이었다. 그는 한인사업가 150명을 모아 ‘중앙은행’을 설립했다. “의류 및 무역업체를 하면서 돈을 구할 수 있는 창구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어도 돈을 구할 수 없어서 시작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때마침 몇몇 지인이 찾아와 한인들을 도울 수 있는 은행 설립을 제안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150여명의 투자자들이 400만달러를 모아 은행을 열었습니다. 그때는 은행을 세워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한인사회 발전에 밑거름이 된다는 생각이어서 뿌듯했습니다.”

그는 1980년대 후반 한국에 은행을 세우기 위해 정치권 인사들과도 가깝게 지냈다고 했다. “일본 동포들이 세운 신한은행처럼 미국 동포들이 세운 은행을 설립하는 것이 제 꿈이었습니다. 신한은행 라응찬 전 회장은 그때부터 아주 가까운 친구로 지냈습니다. 그때는 재미동포들의 은행이 허가가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한국 오면 만나는 사람들이 다 정권의 실력자들이었으니까요. 당시 한국에 오면 안무혁 안기부장 차를 타고 그분 집에서 머물 정도였고, 청와대 행정수석이었던 이상백씨, 김종인 전 경제수석과도 형제처럼 지냈습니다. 그런데 5공화국에서 6공화국으로 넘어가면서 정부에서 이북 5도민 표를 의식해서 그들이 주축이 된 동화은행에 설립허가를 내줬습니다. 사실 미국 동포들이야 지금처럼 선거권이 없었으니까 우선순위에서 밀렸죠.”

한국 진출에 실패한 김 이사는 이후 미국 내에서 규모를 키우는 데 집중했고, 중앙은행은 2002년 나스닥에 상장됐다. 김 이사는 “맨주먹으로 미국에 와서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세운 은행이 자본주의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증시에 상장했습니다. 그 감동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중앙은행은 2011년 11월 또 다른 한인은행인 나라은행과 합병해 지금의 BBCN으로 출범했다. 2007년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가 하나의 원인이 됐다.

“금융위기 때 한인은행들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감독기관에 의해 문을 닫는 은행들도 있었고, 결과적으로 한인은행의 수가 줄어들었지요. 이후 한인은행들끼리 경쟁하기보다는 업계를 선도하고 주류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큰 은행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중앙은행과 나라은행이 합병하게 된 배경입니다.”
지난 7월 21일부터 나흘간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서 열린 '2014 BBCN 주니어 챔피언십'. 대회가 끝난 후 김상훈 이사(왼쪽에서 여섯 번째)가 수상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BBCN
지난 7월 21일부터 나흘간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서 열린 '2014 BBCN 주니어 챔피언십'. 대회가 끝난 후 김상훈 이사(왼쪽에서 여섯 번째)가 수상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BBCN
현재는 BBCN 자산규모 69억달러 중 80% 이상이 미국 기관투자자이다. 이는 미국 주류사회에서 인정하는 은행으로 성장했다는 방증이다. 김 이사는 BBCN이 미국 주류사회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2007년 미국은 금융위기로 많은 은행이 고전했지만, 현재는 미국 경제가 완만한 속도로 회복되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 은행들도 다시 수익을 내기 시작했고, 최근 다시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통해 소비자 권리가 더욱 강화되었고, 감독국의 규제수준이 높아져 은행들의 수익 구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른 은행들이 하지 않는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해서 질적·양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김 이사는 BBCN을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와 같은 굴지의 은행으로 키우는 것이 꿈이다. BOA는 2012년 말 기준으로 미국 기업 가운데 총매출액 5위를 기록했으며, 은행 중 1위다.

“BOA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야채 장사를 하면서 만든 은행입니다. 지금은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이자 미국인이 자랑스러워하는 은행으로 성장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모국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에도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죠. 미국에서 자리 잡은 타 민족은 이들처럼 ‘공동의 이익’을 생각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종이 유대인이죠. 유대인은 미국 경제를 주름잡으면서도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습니다. 지금도 세 살짜리 아이들에게 부모들이 ‘키파’(유대인들이 쓰는 빵떡 모양의 모자)를 정수리에 씌우고 다닙니다.”

BBCN은 한국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9월 22일 서울시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연내로 서울에 사무소를 개소하고 1년 안에 지점으로 승격시켜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이다. 미국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을 돕겠다는 게 주요 사업 목표다.

“사업 아이템만 있으면 미국에 와서 돈 걱정 없이 마음껏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겁니다. 미국 진출을 계획하는 한국 기업들에 미국 금융기관이 지닌 전문성에다 한국적 기업 문화를 가진 우리 은행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 이사의 최종목표는 대한민국의 영토 확장이다. “예전에는 전쟁을 해서 땅을 따먹는 것이 영토 확장이었습니다. 지금은 미국의 동포 2세, 동포 3세, 그리고 앞으로는 동포 10세들이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갖되, 기반은 미국에 두고 살아가면 그것이 영토 확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위안부상 철거 문제를 가지고 백악관에 청원운동을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재미동포들이 한국적 입장에서 미국 정부에 의견을 전달하면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2세들이 한국에 정서적 뿌리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그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이죠.”

김 이사는 이를 위해 ‘NETKAL’이라는 모임을 돕기 시작했다. NETKAL은 Network of Korean-American Leader의 약자로 미국 주류사회에서도 인정받는 2세들이 결성한 모임이다. 여기에는 미국 정부 기관 요직이나 SNS기업인 페이스북 임원, 아이비리그 교수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속해 있다. 그는 이런 모임들을 후원해 한국 동포들 간에 정서적 유대감이 생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유대인들처럼 영향력 있는 한국 커뮤니티가 생기는 것이 저의 최종적인 꿈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 나이를 감안하면 제가 그 꿈을 이루기는 틀렸죠. 후배들에게 미국에 살면서 생각해낸 꿈을 물려주는 것이 나의 마지막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에서 영생을 얘기하지만, 몸이 죽지 않는 영생은 없는 것이고, 후손들에게 나의 꿈과 정신이 이어진다면 그것이야 말로 영생이 아닐까요.”
  • 박혁진
    주간조선 기자
    E-mail : phj@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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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