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분명히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국민으로 살았지만, 1972년에 입학한 대학을 1년 마치고 이듬해인 1973년에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그 곳에서 군 복무와 대학을 마치고 한 군데의 직장생활을 거쳐 미국의 연방공무원에서 내 직장인생의 거의 전부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미국 공무원은 과연 깨끗한가? 라는 화두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1988년 8월에 나는 미국연방정부의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1973년 7월에 내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간지 꼭 15년만의 일입니다. 만 20살이 채 되기 전에 미국으로 간 내가 제일 처음 한 것은 미군에 입대한 것입니다. 미국에 간지 3개월 남짓 지난 때의 일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말은 나와 같은 경우에 쓰면 그야말로 ‘딱’입니다. 동서남북도 모르고 말귀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젊은 이민자 가정의 청년이 그저 용기 하나 가지고 군에 입대한 것입니다. 그렇게 들어간 군대에서 내 20대의 6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현역복무 3년으로 처음에 입대하였지만, 한국에서 복무 중에 만나서 지금은 내 아내가 된 한 여자 때문에 군 복무기간을 3년이나 연장한 경우는 전에 들어본 바가 없는 이야기라고 내 친한 친구가 지금도 이야기 합니다.

 

아무튼 내 말 그대로입니다. 미국 육군의 사병으로 입대하여 한국에서 근무 중에 지금의 아내를 기차에서 만나 연애하고, 그녀를 놓치기 싫어 군 복무기한을 3년이나 연장하여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을 했습니다. 아내를 미국으로 데려온 후에 대학을 마치고 처음 취직을 한 곳은 한국의 국적기처럼 여겨지는 대형 항공사의 로스앤젤레스공항지점 이었습니다. 이 곳에 근무를 하면서 세관, 이민국과 같은 연방공무원과의 접촉이 있게 되었고, 여러 가지로 나의 진로 문제를 고민하다가 4년 동안 일해오던 항공사를 떠나 1988년 8월에 공채를 통해 미국 연방세관으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물론 내가 겪은 경험은, 미군에서의 복무기간을 합하여 30년 동안 몸담고 일해 본 미국의 연방 공무원에서 겪은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 하는 겁니다. 이 만큼의 시간을 보냈다면 미국의 모든 연방공무원 사회를 대변할 수는 없어도, 내가 하는 말에 어느 정도의 신빙성은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몸담은 곳이 세관이었으니 일반조세는 아니지만 세금을 거두는 기관이라는 점입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조세를 거두는 국세청, 관세를 거두는 관세청과 같은 부서의 청렴의 정도가 어떤 한 나라의 전체 공무원의 청렴성을 보는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한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보는 기준도 그 나라의 공무원의 청렴도가 어떠한가에 달려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최빈국에서 세계에서도 손꼽는 부국이 된 것도, 그 바탕에 공무원 사회가 이전보다 청렴해진 까닭이라고 생각하는 데에 큰 이의를 가진 분들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봅니다. 80년대 이전에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사신 분들은, ‘급행료’라는 것을 집어줘야 지금은 ‘주민센터’라고 부르는 과거의 ‘동회’에서 민원 일을 제대로 볼 수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2000년 이후에 고국으로 돌아와 보니, 주로 만나게 되는 일선 공무원들의 친절함과 청렴함에 놀라곤 합니다.

 

물론 이 대한민국 사회전체가 아직 깨끗하지만은 않다는 것은 정치인인들의 행태나 세월호와 같은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소위 ‘관피아’로 불리는 관청과 기업 간의 끈끈한 유착관계를 보면, 아직 이 사회가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처음에 일을 시작한 1988년부터 조기은퇴를 한 2012년까지의 지난 24년 동안 ‘관세청(US Customs Service), 지금은 세관국경 보호청(CBP, Customs and Border Protection)으로 바뀌었음)’이라는 조직에서의 보고 겪은 ‘공무원 사회의 청렴’에 대해 몇 마디 하려고 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제가 이제부터 이야기하는 모든 것은 내 스스로가 ‘세관’이라는 공무원 조직사회에 있으면서 개인으로 보고 느낀 바이지, 무엇을 판단하는 기준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먼저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는 초년생 때부터 아주 귀에 박히도록 많이 듣게 되는 소리는 ‘Conflict of Interest’ 즉,’이해의 상충‘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하면, 이 세상의 모든 부정부패의 원인은 자기의 자리를 통해 제 삼자에게 사전에 어떤 정보를 제공하여 물질적 이익을 창출해주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이해의 상충‘이라는 말의 뜻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세관의 교육을 맡는 부서에서는 시시때때로 이에 대한 보수교육을 실시합니다. 그래서 이 말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이해가 엇갈리는 상황이 될 때, 철저한 정보의 보안과 업무수행에 있어서의 중립을 지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직장 안에 ’핫라인’을 두어서 내가 처한 상황이 ’이해의 상충‘의 룰에 어긋나는 것인지 아닌지를 즉시 물어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리 언급했듯이, 보통 부패한 나라에서 특히 부패의 정도가 심한 곳이 세금을 거두는 기관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제가 24년의 세관근무를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유관되는 사기업의 누구로 부터라도 밥 한 끼라도 먹어 본 적이 없음은 물론이고, 사기업의 비용으로 ‘견학여행’을 가는 일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기관의 공금으로 회식을 하는 경우는 전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오로지 내가 열심히 일한 시간에 대한 금전적인 대가, 즉 월급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야만 법을 중립적으로 공정하게 집행할 수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겁니다. 법을 집행해야하는 내가 유관기업의 누군가가 사주는 밥을 먹는다든가 혹은 어떤 형태로든 물질적인 이익을 얻는 것은 지금 어떤 당장의 도움을 청하는 요구가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내가 도움을 주기를 바라는 일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압니다. 비록 그 유관기업의 사람이 내 친구라 해도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 친구라면 그리고 내 가족이나 친척이라면 더욱 더 그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있는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마라.’라는 말을 생각해 보면 됩니다. 남이 의심할 상황에 자신을 두지 말라는 말, 이것이 미국에서 내가 배우고 익힌 ‘이해의 상충’의 의미입니다.

 

세관에서는 통관회사의 ‘관세사’와 같이 세관에서 자격증을 부여하는 사람을 고용하는 회사에 대한 정기 혹은 비정기 감사를 합니다. 감사를 나가기 전에 ‘이해의 상충’에 관한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듣게 되는데, 아주 상세한 것까지 주문을 합니다. 예를 들면, ‘피감사자가 제공하는 비주류의 음료는 대접받을 수 있으나 식사는 제공 받을 수 없다’라는 아주 구체적인 훈령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감사를 맡은 공무원은 보통 샌드위치 도시락을 싸서 감사현장에 나갑니다. 또 법으로, 공무원의 신분으로 한 곳에서 받을 수 있는 현금이(현금은 물론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닌 선물의 최대 가치는 20달러(약 2만원)를 넘지 못한다고 되어있고, 일 년을 통틀어 50달러(약 5만원)가 선물의 최대 금전적 가치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이마저도 받을 수 없도록 지역청장으로부터 공무에 관련된 훈령이 내려집니다.

 

세관에서는 엄청난 양의 금수품이나, 밀수품을 압수합니다. 그 압수품의 많은 부분은 폐기처리 됩니다. 특히 모조품이나 유사상품의 경우는 그 품질이 오리지널 보다 나은 것도 많습니다. 이런 물건을 분쇄기에 넣어 폐기하는 장소에 동료직원들과 함께 가 보았지만, 아무도 이 물건에 관심을 보이는 동료직원들은 없습니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한다.’라는 고려시대의 충신인 최영장군을 들먹이지 않아도 나의 이 동료들은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는 절대 아무 것도 자기 수중에 넣으려 하지 않음을 보았습니다. 고백하건데, 나는 얼마간의 괜찮은 압수품 중에 폐기시킬 물건을 집에 가져온 적도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는 ‘관행’이라는 말을 자기변명의 구실로 삼는 것을 쉽게 봅니다. 분명히 불법이고 위법인데도, 그것은 관행이라며 선처해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관행’이 마치 ‘만행’을 눈감아 주는 것처럼 쓰입니다. ‘관행’은 잘못된 것을 덮어주는 일에 쓰일 것이 아니라 ‘선행’을 달리 표현하는 말로 쓰여야 할 것입니다. 제발 앞으로는 정치인들이나 기업을 하는 사람들에 입에서 이 ‘관행’이라는 단어가 자기들의 잘못된 범법행위를 정당화 하는데 쓰는 말로 사용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미국이라고 해서, 또 다른 선진국이라고 해서 부정부패가 없겠습니까?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느 정도의 부패는 다 있습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부조리한 것들을, ‘관행’이라는 허울 좋은 틀 뒤에 숨는 또 다른 관행에서 아직 못 벗어난 곳이 이 대한민국입니다. 아마도 이 정치판이 깨끗해지려면 아직도 한참 먼 것처럼 보입니다. 공무원 사회가, 특히 고위 공직자들이 깨끗해지려면 이 또한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나같이 외국에서 오래 살다 돌아온 사람들이 주로 만나게 되는 일선의 공무원들은 이제 대부분이 1970년 이후의 세대들입니다. 내 느낌만 그런 건지는 몰라도 이 세대들은 뭔가 달라도 다릅니다.

 

게다가 나는 이 곳에 와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느라 1970년 이후의 세대들과 만나 함께 일을 해보니, 이들은 나와 같은 1970년 이전의 세대와는 확실히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우리와 같이 많이 썩어 이미 부패한 세대와는 달리, 이 젊은 세대는 적어도 끝없는 탐욕에 자신을 내버려 두지는 않으며 보다 합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대들이 이 땅의 주인이 될 때까지라도 우리와 같은 엉터리 세대들이 조금이라도 정신 차려서, 훨씬 합리적이고 정직한 이 새로운 세대에게 이 나라를 온전히 인수인계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일입니다.

 

다만 지금의 내가 사는 나의 조국, 이 대한민국이 보다 사람답게 살기 좋은 정직한 사회가 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이라도 할 작정으로, 돌아온 이 땅에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살려고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며 삽니다.

 7월 23일,2014 by 주노아톰 - 저널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