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때부터 격투기 선수 꿈 근성 키우려 해병대 지원
미국에 기반을 둔 종합격투기 대회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는 격투기 선수들에게는 꿈의 무대다. 자산 가치만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가 넘는 ‘종합격투기의 메이저리그’에는 세계 최고 ‘주먹’에 등극하려는 사나이들이 수없이 도전장을 던진다.
▲ 김동현이 경기 승리 후 옥타곤 링에 올라 포효하고 있다. 2012년 11월 마카오에서 가진 경기 직후 모습. photo 연합
모든 선수들이 UFC에서 빛을 보는 건 아니다. UFC는 주먹과 발, 무릎을 이용해 눈과 급소를 제외한 온몸을 공격해 승부를 가린다. 그 싸움 방식만큼이나 생존 경쟁도 살벌하다. 중요한 메인 이벤트에서 패하거나 일정 기간 부진에 빠지면 바로 퇴출을 걱정해야 한다.
반대로 경기에서 이기면 대전료만 한 번에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까지 챙길 정도로 소수 스타는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된다. 팔각의 철창(옥타곤)에서 물러설 수 없는 진검승부를 펼치는 UFC는 정글처럼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고, 검투사 경기가 열리는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살벌하다.
그런 무시무시한 UFC 무대에서 올해 10승을 올리며 끈질기게 살아남은 한국 토종 격투기 선수가 있다. 한국인 1호 UFC 선수로 6년째 UFC 무대를 호령하고 있는 김동현(33·부산 팀매드)이다. 김동현은 지난 3월 1일 마카오 베네시안호텔의 코타이 아레나에서 열린 ‘UFC in MACAU’ 웰터급 메인 이벤트에서 존 해서웨이(26·미국)를 상대로 3라운드 KO승을 거뒀다. 김동현은 떠오르는 신예 해서웨이를 맞아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았다. 왼손 스트레이트를 연신 상대 턱에 꽂았고, 유도 기술인 밭다리후리기로 해서웨이를 넘어뜨렸다.
결정적 한 방은 3라운드에 터졌다. 김동현은 백스핀 엘보로 해서웨이를 강타시켰다. 백스핀 엘보는 뒤로 돌면서 팔꿈치로 상대를 공격하는 고난도 타격 기술이다. 김동현은 해서웨이가 먼저 오른쪽 팔꿈치로 공격을 걸어오자 슬쩍 피한 뒤 순간적으로 몸을 회전시켜 왼손 팔꿈치로 직격타를 날렸다. 백스핀 엘보는 상대를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시도하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낮다. 웬만한 고수들도 실전에서는 하지 않는다. 김동현은 절묘한 순간 백스핀 엘보를 작렬하며 오랜만에 화끈한 승리를 신고했다.
김동현은 이날 완승으로 한국 종합격투기의 역사를 새로 썼다. 김동현은 2008년 5월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 권위의 UFC에 진출했고, 첫 승을 거뒀다. 김동현은 이날 통쾌한 ‘3·1절 승리’로 세계 최고의 종합격투기 대회인 UFC 입성 6년 만에 10승 고지까지 밟았다. 한국 격투기 선수로는 UFC에서 가장 많은 승수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아시아인 UFC 최다승 기록인 오카미 유신(일본)의 13승 기록도 넘볼 수 있다.
김동현이 처음 격투기의 길로 들어선 건 우연한 기회였다. 김동현은 대전 삼천중 3학년 때 유도를 시작했다. 대전에서는 촉망받던 기대주였지만 전국 대회에서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는 충남고에 진학하면서 격투기에 대한 꿈을 키웠다. 1998년 TV로 일본 격투기 대회인 ‘슈토’를 본 뒤 종합격투기에 흠뻑 빠졌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 격투기가 생소한 데다 복싱보다 위험한 종목으로 인식돼 집에서는 만류했다. 김동현은 “아무도 몰라줘도 (격투기가) 나의 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누가 말린다고 해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그의 인생은 오로지 격투기 선수가 되기 위한 길이었다. 김동현은 격투기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일반 전형으로 용인대 유도학과에 진학했고, 근성을 키우겠다며 해병대(894기)를 지원했다. 전역 후 국내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었지만 하루도 얼굴이 성할 날이 없는 아들을 본 김동현의 부모는 “격투기를 계속 하려거든 호적을 파라”고 할 정도로 반대가 심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딱 1년만 하겠다. 한 번이라도 지면 그만두겠다”며 부모를 설득했다. 김동현은 훈련비를 마련하기 위해 하수구를 뚫고, 나이트클럽 서빙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종합격투기는 별도의 세계선수권 대회도 없고, 올림픽 종목도 아니어서 국가대표의 개념이 없다. 하지만 김동현은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나 스스로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각오를 되새기며 싸우고 있다”고 할 만큼 한국 선수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특히 그는 해병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인생에서 가장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김동현은 계체량 측정 때마다 빨간색 해병대 티셔츠를 입고 나온다. 등에 ‘해병대’라고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싸울 상대와 악수를 나누는 의식을 거치면서 자신만의 전의를 불태운다.
김동현이 본격적으로 국내 격투기 팬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06년 일본 격투기 마이너리그인 ‘딥(DEEP)’에 진출한 뒤부터였다. 이전까지 많은 한국 격투기 선수들이 일본 무대에 섰지만 번번이 좌절을 겪었다. 하지만 김동현은 보란 듯이 7번을 이겼고, 6번을 KO승으로 장식했다. 하지만 경기당 대전료는 100만원에 불과할 만큼 배고픈 시절은 계속됐다.
그가 일본에서 종합격투기 선수로 명성을 쌓으며 얻은 별명은 ‘스턴건(stun gun·전기충격기)’이다. 스트레이트 펀치가 워낙 위력적이라 한 번 맞으면 전기충격기에 맞은 것처럼 상대가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고 해서 생긴 별명이다. ‘스턴건’이라는 별명처럼 그는 케이지 안에서 시원한 타격전을 선보였다. 하지만 미국 무대에 간 뒤로 그는 조금씩 자기 색깔을 잃어갔다. 그는 UFC 진출과 함께 5연승을 거두며 정상 자리까지 넘보는 듯했다. 하지만 일본과 달리 연패에 빠지면 퇴출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김동현은 ‘화끈한 경기’보다 ‘안정된 결과’가 중요해졌다. 그는 UFC 무대에서 그동안 자랑했던 타격이 아닌 그라운드(바닥에 누워서 몸싸움을 벌이는 것) 전문으로 돌아섰다.
경기에서는 이겼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급기야 2011년 7월 카를로스 콘딧에게 난생처음 TKO를 당하며 무너졌다. 당시 그는 오른쪽 눈 주위 뼈가 크게 부러지는 부상으로 장기간 공백기까지 가져야 했다.
김동현은 “당시에는 ‘이제 더 올라갈 무대도 없는데, 굳이 위험한 타격전을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며 “한 번 크게 패한 뒤 격투기를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그대로 끝낼 수 없어 다시 일어섰다”고 말했다. 김동현은 부상 회복 후 부족한 타격을 보완하기 위해 복싱 훈련을 평소보다 두 배 늘렸다. 그는 2012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재기전에서 숀 피어슨을 상대로 승리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스턴건’ 김동현이 돌아온 것이다.
김동현은 이번에 4연승과 함께 UFC 10승을 채우면서 염원하던 웰터급 ‘톱10’ 진입에 성공했다. 김동현은 지난 3월 4일 발표된 UFC 웰터급 공식 랭킹에서 이전보다 한 단계 상승한 10위를 기록했다. 일본에서 한 경기당 100만원을 받던 김동현은 UFC로부터 각종 승리 수당을 포함해 총 16만달러(약 1억7000만원)를 받을 예정이다.
최근 해서웨이와의 경기를 포함해 UFC와 4경기 재계약을 맺은 김동현은 이제 웰터급 챔피언 자리에 도전한다. 그가 처음 격투기 선수에 도전하면서 품었던 정상의 자리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최인준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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