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내과 의사가 제안하는 '맥락적 유연함'
10년 후 '만일의 하나' 위해 노년에 에너지원 줄인다?
많은 분이 건강을 마치 ‘수학 공식’처럼 대하곤 한다. “당뇨가 있는데 과일은 절대 금물인가요?”, “기력이 없는데 알부민이라도 먹어야 할까요?” 같은 질문들이 그렇다. 건강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자세는 좋지만, 우리 몸의 문제는 0과 1로 구성된 컴퓨터 언어처럼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특히 몸 어딘가가 불편하거나 질병이 잘 조절되지 않는 분들께 노년내과 진료실에서 정해드리는 우선순위는 대개 본인의 예상 밖에 있다.
“지금 고민하시는 영양제보다 수면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훨씬 시급합니다”라고 말씀드릴 때도 있고, 때로는 당혹스러울 만큼 파격적으로 “햄이나 라면이라도 좋으니 제발 좀 많이 드십시오”라고 권하기도 한다. 이는 건강에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이분법적 공포에서 벗어나, 내 상황에 맞게 우선순위를 재설정하는 ‘맥락적 유연함’의 실무 원칙이다.
‘A→B’라는 단순 논리의 함정: 노출의 강도와 시간
우리는 매일 “○○ 음식이 암 위험을 20% 높인다”는 식의 뉴스를 접한다. 하지만 영양 연구 결과를 단순히 ‘A는 B다’라는 식의 인과관계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은 노출의 강도(Exposure)와 시간의 맥락(Time)이다.
영양학 연구는 본질적으로 한계가 명확하다. 사람을 실험실 쥐처럼 가둬두고 20년 동안 완전히 통제된 식단만 먹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개는 기억에 의존한 설문이거나, 현실 세계에서는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극단적인 양을 노출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인 경우가 많다. 인과관계 자체는 의학적으로 납득이 가더라도, 그 위험의 강도가 내 삶에서 얼마나 코앞에 닥친 현실인지, 혹은 지금 당장은 무시해도 좋을 후순위 건강 정보인지는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시간의 맥락도 중요하다. 식습관의 변화가 혈액 내 대사 지표를 바꾸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그것이 실제 노화나 질병의 표현형으로 발현되기까지는 짧게는 7년, 길게는 15년 내외 시간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들이 많다. 1개월 뒤에 당장 병이 생기는 것과 15년 뒤에나 벌어질지 모르는 일은 엄연히 그 무게와 대응 전략이 달라야 한다.
이러한 시간과 강도의 맥락을 거세한 채 선후 관계만 따지게 되면, 이로운 음식과 해로운 음식이 머릿속에 항상 고정(Fix)되어 버린다. 결국 상황에 맞게 내 몸의 신호에 반응하며 대처하는 유연한 대응 능력은 상실되고, 원칙 없는 공포만 남게 되는 것이다.
나이에 따른 승부수: 젊음의 ‘방어’와 노년의 ‘공격’
필자가 강조하는 전략의 핵심은 나이에 따라 영양의 가치 판단 기준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 젊을 때는 ‘해로운 것을 피하는 것’이 최고의 전략 대사 능력이 충분하고 기대 여명이 길기 때문에, 가공식품이나 과도한 당분 같은 ‘나쁜 노출’을 줄이는 것이 장기 투자로서 가치가 높다. 과하지 않게 먹는 절제와 음식의 다양성을 확보하여 장내 미생물 환경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이 시기 영양 전략의 1순위다.
- 나이가 들수록, 소모성 질환이 있을수록 이야기는 서서히 달라진다 이때의 영양 전략은 해로운 것을 피하는 방어 위주에서 에너지를 채워 넣는 공격적인 충전 쪽으로 무게중심을 조금씩 옮겨야 한다. 가공육이나 첨가물 같은 세부적인 위해 요소를 따지기보다, 탄단지(탄수화물·단백질·지방)라는 3대 필수 영양소의 충족을 좀 더 우선적인 가치로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
노화나 질병의 누적이 영양이라는 영역에 미치는 실질적인 의미는, 바로 이 기본 영양소들의 대사 변동성이 심해진다는 데 있다. 젊을 때처럼 조금 못 먹어도 금세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영양의 균형이 무너지는 속도가 빨라지고 그 폭도 깊어진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듯, 특히 나이가 지긋한 분들일수록 가공육이나 첨가물이 무서워 고기를 멀리하다 영양불량과 근감소증의 늪에 빠지는 경우를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원조차 채우지 못하면서 소위 건강한 식단의 디테일을 쫓고 비타민제를 찾는 것은 완전히 앞뒤가 바뀐 일이다.
만약 식사량이 너무 적어 탄단지의 균형 자체가 깨진 상황이라면, 필자는 차라리 라면 한 그릇이라도 끓여 드시라고 권한다. 음식을 직접 하기 힘들거나 입맛이 너무 없다면 밖에서 사서라도 드셔야 한다. 어떤 음식이냐를 따지기 전에, 일단 기본적인 열량과 단백질이 몸속에 채워져야 그다음 단계의 건강이나 질병 조절을 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체력, 그리고 가속 노화를 막아내는 회복 에너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실패 없는 실천 전략: 95점짜리 영양 관리법
모든 실천이 그러하듯 식단 전략도 복잡해질수록 실천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필자는 먼저 첫 번째 ‘전략의 단순화’를 추천한다.
물론 사람마다 질병 상태나 체격이 달라 “나는 특별해서 이런 원칙이 안 통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의 진료 경험에서 보면, 95% 이상의 사람들은 이 단순 원칙 안에서도 충분히 순탄하게 영양 관리를 해낼 수 있었다. 식단이 너무 복잡해 실천이 어렵거나 막연히 복잡하다고 느끼는 분들은, 먼저 생각을 이렇게 먼저 단순화해 보시길 추천드린다.
- 이번 식사에서 섭취할 단백질량을 먼저 정한다. (나이별 차이는 위 내용 참조)
- 내 활동량과 질병 상태(비만, 당뇨 등)에 맞춰 총 칼로리(먹는 양의 총합)를 설정한다.
- 그 안에서 비교적 골고루 먹는다.
대사 질병이 있을수록, 혹은 소모성 질환이 있을수록 단백질 비율은 올리되 총 칼로리는 비만이나 당뇨병, 혹은 암의 상황에 맞추어 비교적 심플하게 정할 수 있다. 크게 몸이 아픈 상황이 아닌 이상, 조정의 비율은 대개 ±10~20% 정도면 충분하다. 이렇게만 해도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은 받는다. 실제로 진료실에서 보면, 단기적으로는 변동이 좀 있는 것 같으나,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95점 이상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보충제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보충제는 말 그대로 식사의 부족한 면을 채우는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무엇이 어디에 좋더라는 정보에 휩쓸려 용량을 계속 올리다 보면,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 리스크도 함께 올라가기 마련이다. 어떤 분들은 “내가 이걸 먹고 10년째 아무 문제 없이 좋기만 한데 무슨소리냐”라고 반문하지만, 미래에 발생할 잠재적 위험은 대개 일반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 영양제가 도움이 되느냐 마느냐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의 식탁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필수적인 부분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통찰이다.
마지막은 MSG와 같은 첨가물에 대한 경계 수준이다. 소량의 MSG는 대부분 거의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있어, 위의 대원칙들을 지키는 선이 우선이긴 하다. 그러나 본인의 몸이 민감할수록, 몸이 좋지 않은 상황일수록 MSG는 점점 줄여가는 것이 좋다. MSG의 유해성이 명확히 확정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경 교란에 대한 연구들이 하나둘 나오는 만큼 몸이 쇠약한 상태라면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도 현명하다.
이러한 몇 가지 뼈대를 명확히 잡고 다른 영양 정보들을 바라본다면, 수많은 기사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차분하게 정보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족쇄를 풀고 건강을 즐기십시오
마지막으로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자신을 ‘해야 한다’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금기와 족쇄의 틀에 스스로를 가두지 마시라는 점이다. 영양 관리는 숙제가 아니라 내 몸의 변화를 살피고 보살피는 즐거운 여정이어야 한다. ‘영양 만점’이라는 강박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호르몬 체계를 교란해 다른 건강 영역에서 다시 낙제점을 안길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인체는 생각보다 강력하고 유연한 보상 능력을 갖추고 있다. 원칙을 알고 다시 돌아올 방법론적 자신감만 있다면,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는 몇 번의 의도된 일탈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삶의 순기능이 훨씬 더 크다. 10년 뒤의 나를 위해 오늘을 지나치게 억압하기보다, 현재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시라.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큰 궤도 안에서 유연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즐겁게 식탁을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건강의 길이다.
성균관대 삼성융합과학원 겸임교수: 장일영 조선일보 입력 2026.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