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GPS처럼 뇌 신호 읽는 시대 열릴 것… 10년내 알츠하이머 정복 목표”

해암도 2024. 3. 16. 07:19

이진형 美 스탠퍼드대 신경학 교수 인터뷰
2026년 미국 나스닥 상장 목표
지난해 뇌 질환 진단 플랫폼 출시
“뇌 신경 변화 파악해 진단 치료법 새로운 지평 열 것”

 
 
 
이진형 스탠퍼드대 교수가 1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메디컬코리아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김명지 기자

한국인 여성 최초로 미국 스탠퍼드대 종신교수에 임명돼 주목을 받은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신경학 교수가 14일 “뇌전증(옛 간질)과 치매를 비롯한 다양한 뇌 질환에 대한 획기적 치료법을 10년 안에 개발해 내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날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메디컬 코리아 2024′에서 “자신이 개발한 뇌 질환 진단 플랫폼인 ‘뉴로매치’가 뇌 질환 환자 증가로 발생한 사회적 비용 감소에 기여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 교수는 서울과학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원래는 전기전자 분야로 진출하려고 했다가 박사 과정을 밟는 중 외할머니의 뇌졸중 발병을 계기로 뇌 과학자로 진로를 틀었다. 이 교수는 “뇌 세포가 시냅스로 신호를 전달하는 것이, 전기의 회로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며 “내가 전기 회로를 연구하는 사람인데, 뇌 회로도 연구해보자 싶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2010년 뇌신경과 헤모글로빈의 농도 관계를 규명한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뇌 질환을 치료하는 획기적 신약이나 진단법도 개발된 게 없다. 그는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뇌 질환 환자들은 병원에 가서 종이로 된 설문지를 응답하는 것으로 진단을 받는다”며 “뇌의 정확한 작동 원리를 인간이 아직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지난 2013년 미국 팰로앨토에 엘비스(LVIS)를 창업해 뇌 신경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는 플랫폼 개발을 시작했다. 그렇게 개발해 낸 것이 광유전학과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뇌 기능의 변화를 관찰하는 ‘디지털 트윈’ 플랫폼 뉴로매치다. 이 교수는 이같은 연구개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9년에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파이어니어상을 수상했다. NIH 파이어니어상은 미국 정부가 보건 영역에서 수상하는 가장 큰 상이다. 이 상을 탄 연구자에게는 약 550만달러(약 70억원) 연구비가 주어진다.

 

이 교수는 “뇌에 전극을 꽂아 도출한 데이터로 6년 여에 걸쳐 뇌 신경의 신호를 관찰했고, 측정 신호와 일치하는 디지털 트윈을 만들어 냈다”라며 “도로를 운전할 때 위치항법장치(GPS)를 보는 것처럼 디지털트윈을 통해 뇌 신호를 알아채는 뇌 네비게이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뉴로매치가 상용화되면 뇌 질환 신약 개발에서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도 있다고 봤다. 지금까지 수 많은 바이오 벤처들이 치매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치료 효과를 입증하지 못해서 번번히 좌절했다. 최근 2년 동안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신약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을 받았지만 여전히 효과에 논란이 있다. 하지만 치료제를 투입한 후 뇌의 반응을 정확히 수치화할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국 스탠퍼드대 이진형 교수가 1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메디컬코리아 2024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제공

 

이 교수는 뉴로매치를 활용해 뇌전증, 알츠하이머 치매, 수면 장애, 파킨슨병, 자폐 등 5개 뇌 질환에 대한 진단 솔루션과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세웠다. 뇌전증 진단 솔루션은 올해 상용화를 앞두고 있으며, 치매 진단 솔루션은 오는 2025년 출시를 기대하고 있다.이 교수는 “치매 진단 솔루션이 완성되면, 그 후 5년 안에 뉴로매치를 적용한 치매 신약 개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치매 치료제는 약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2030년에는 효과적인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나온다고 기대해봐도 좋다”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뇌전증 진단과 치료에 대해서는 “‘환자별 매칭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뇌전증은 단순히 하나의 질환이 아니라 여러 질환과 함께 나타나는 병의 증상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 교수는 또 글로벌 제약사는 물론, 의료 병원, 보험사들과 뉴로매치를 활용한 협업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병원과 보험사는 뉴로매치를 활용하면 뇌 질환 진단·치료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교수는 “뉴로매치는 신경과 의사들이 뇌 질환 환자를 식별하는 시간과 노력을 줄여서, 의료 비용을 줄이고 나아가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뇌졸중과 같은 급성 뇌 질환은 한 번 발병하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 비용이 크다.

 

더욱이 신경과 전문의는 전 세계적으로 부족하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신경과 의사는 인구 2만4000명당 1명에 불과하다. 이 교수는 “한국은 미국보다도 신경과 의사가 적은 것으로 안다”며 “한국의 고령화 속도 등을 감안할 때, 의대 증원으로 의사를 2000명 더 늘린다고 해도 신경과 의사는 부족할 것이고, 결국 뉴로매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오는 2026년 엘비스를 나스닥에 상장할 계획도 언급했다. 이 교수는 다음 연구 개발 구상으로는 인간의 뇌가 기능하는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한 AI 개발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인간지능과 AI의 차이를 계산 방식의 차이로 보고, 인간의 뇌 만큼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AI 개발도 가능하다고 봤다. 이 교수는 “사람의 뇌를 연구하다보니, AI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추후에는 인간 지능에 가까운 AI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