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50만원 한식, 비행기 타고 와 줄선다... ‘미슐랭 2스타’ 뉴욕의 이 부부

해암도 2024. 1. 17. 06:56

[박진배의 ‘뉴욕의 한인 셰프’] [6] ‘아토믹스’의 박정현·박정은 대표

 

오늘날 세계적으로 알려진 레스토랑의 음식 사진 하나를 무작위로 선택해보면 어느 나라, 어느 레스토랑의 메뉴인지 구분이 불가능하다. 그만큼 유행에 맞추어서 비슷한 식재료를 사용하고, 조리 방법이나 플레이팅(plating)을 서로 따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음식과 문화를 융합하는 ‘퓨전(fusion)’은 한동안 외식의 주요 트렌드였다. 하지만 근래 들어 자국 음식을 독창적으로 접근하고 연출하는 개인 셰프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셰프들도 스스로의 브랜드를 만드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 첨단에 뉴욕의 한식당 ‘아토믹스(Atomix)’가 있다.

아내 박정은 대표와 함께 운영하는 한식당 '아토믹스'에서, 박정현 셰프가 손님들에게 음식 설명을 하고 있다. 아토믹스는 12가지 코스 요리 음식이 나올 때마다 손님들에게 요리에 대한 설명이 담긴 카드를 제공한다. 한식 문화에 친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을 위한 서비스다. 오른쪽 위 사진은 아토믹스의 '셰프 카운터' 모습. 아래 사진은 김 부각과 정어리 구이 요리다. /Martin Romero, Evan Sung
 

아토믹스는 부부인 박정현(40), 박정은(40)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이 둘은 경희대 호텔관광학부를 함께 다니고 졸업했다. 남편인 박정현 셰프는 런던과 멜버른의 레스토랑, 서울과 뉴욕의 ‘정식당’ 세프로 근무했다. 박정은 대표 역시 한국과 뉴욕의 레스토랑들에서 착실하게 매니저 경험을 쌓아왔다. 오랜 준비 끝에 둘은 2016년 ‘아토보이(Atoboy)’, 2018년 아토믹스를 열었다.

 

뉴욕의 한적한 거리, 1920년대 건축된 허름한 브라운스톤 건물 지하에 위치한 아토믹스에서의 저녁 식사는 마치 한편의 공연 감상 같다. 입장부터 어떤 비밀 장소에 초대받아 진입하는 기분이다. 들어서면 라운지에서 간단한 드링크가 제공된다. 오페라나 발레의 서곡이다. 이어서 셰프 카운터로 안내를 받으면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된다. 손님은 자신이 사용할 젓가락을 선택하고, 12가지 음식이 차례로 제공된다. 한 코스마다 주재료와 부재료, 직접 담근 식초, 다시마, 간장 등의 양념을 포함해 열 몇 가지 식재료가 조합되어 있다.

 

한 가지 음식이 나올 때마다 손님 앞에 카드가 한 장 놓인다. 간결한 기하학적 문양의 그림 아래에는 국(Guk), 생채(Saengchae), 전(Jeon), 숙채(Sukchae), 조림(Jorim) 등 요리 종류가 적혀 있다. 손님들은 적힌 제목을 보면서 다음 음식을 상상한다. 공연 전 미리 프로그램을 읽으며 내용을 예습하는 기분이다. 카드의 뒷면에는 음식의 재료와 더불어 요리의 의미, 이를 만들기 위한 셰프의 영감까지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영어로 적혀 있지만 된장(Doenjang), 미나리(Minari), 송이(Songyi), 해초(Haecho)와 같이 재료명은 한글로 표기되어 있다. 카드에는 또 그릇을 만든 한국 작가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이 역시 한식과 함께 한국 문화를 알리는 작업, 한국의 뿌리를 접목시키려는 생각의 연출이다. 한식 재료와 문화에 친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에게 꼭 필요한, 친절한 서비스다. 카드는 음식과 음식 사이의 짧은 시간에 예술적 경험을 더해준다. 마치 연극의 막처럼 분절을 제공하는 피터 그리너웨이(Peter Greenaway)나 웨스 앤더슨(Wes Anderson)의 영화 같다. 많은 뉴욕의 레스토랑은 거리에 면하며 도시의 풍경과 어울리는 분위기를 만든다. 하지만 아토믹스는 식사하는 동안 관객이 뉴욕이라는 걸 잊어버리고 하나의 공연에 집중하게 된다. 아토믹스가 초대하는 다른 세계로 몰입하는 것이다.

 
 

계절별로 바뀌는 창의적인 음식과 더불어 아토믹스의 경험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건 서비스다. 두 대표는 레스토랑을 구상할 때부터 “최고의 레스토랑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주방에서 만든 음식을 손님 앞에 갖다 놓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늘 손님을 살피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끌 수 있는 친절하고, 섬세하며, 자연스러운 서비스가 병행되어야 한다. 향상된 서비스는 맛있는 요리 못지않은 큰 부가 가치가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면서 조리는 셰프, 커피는 바리스타, 와인에는 소믈리에라는 전문가의 호칭이 있는데, 서비스를 담당하는 사람은 아직도 일반적 명칭인 매니저로 불리는 현실을 지적한다. 서비스도 전문 기술이고 음식과 동등하게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언론에서도 강조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두 대표는 레스토랑을 시작할 때부터 글로벌한 시각으로 세계 외식 무대 정상에 서겠다는 결심을 했다. 처음부터 뉴욕의 고급 한식당이 아닌, 뉴욕의 최고 식당도 아닌, 세계 최고를 지향했다. 그 목표대로 아토믹스는 2018년부터 작년까지 연속해서 미슐랭 2스타를 받았다. 또한 뉴욕타임스에서 3스타 평가를 받으며 2018년 뉴욕의 최고 레스토랑에 선정되었다. 2023년에는 세계적인 권위를 가지는 레스토랑 평가 기관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The World’s 50 Best Restaurants)’에서도 8위, 북미 대륙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현재 일인당 395달러(약 52만원) 가격에도 전 세계 미식가들이 비행기를 타고 찾는다.

 

아토믹스가 유명해지고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다양한 러브 콜도 쇄도하고 있다. 2022년 뉴욕의 상징인 록펠러센터에서 아이스링크 바로 앞, 가장 좋은 자리에 입점을 부탁받아 또 하나의 레스토랑 ‘나로(Naro)’를 열었다. 박정현 셰프는 최근 세계적인 아트북 출판사 ‘파이돈(Phaidon)’의 요청으로 ‘한식(The Korean Cookbook)’이라는 요리책을 발간했다. 명품 브랜드의 협찬 행사, 세계적 셰프들과의 컬래버, 콘퍼런스 등의 각종 이벤트에도 꾸준히 초청받고 있다.

 

셰프가 늘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일일이 손님을 환대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박정현·박정은 대표는 레스토랑에 머무는 것 이상의 사회적 활동이 필요함을 느낀다고 한다. 두 대표가 뉴욕에서, 그리고 전 세계를 무대로 보여주는 멋진 공연의 다음 막이 또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