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적 산악인 다룬 ‘알피니스트: 마크-안드레 르클렉’
프리솔로의 대가 알렉스 호놀드 주인공 ‘프리 솔로’
맨몸으로 암벽을 오르는 ‘프리 솔로’의 매력 혹은 악마성
인왕산, 청계산 오르는 사람을 ‘알피니스트’라 부르지 않는다. 고어텍스 점퍼에 고가 스틱을 쥐었어도 그들은 알피니스트가 아니다. 암벽, 빙벽이 있는 고산을 오르는 자, 거기 목숨 거는 이들을 알피니스트라 부른다.
여기 낡은 운동화를 신고 맨손으로 1000m 바위산에 오르거나, 피켈 하나 쥐고 로키 빙벽을 오르내리는 청년이 있다. 몸을 묶는 로프도, 구조를 요청할 휴대폰도 없다. 솔로 프리스타일 알피니스트(등반가), 마크 안드레 르클렉(Marc-André Leclerc)은 그런 방식으로 중력과 싸웠다.
92년생 마크 안드레가 세계 산악계에 알려진 건 2016년 무렵이었다. 루트 예행 연습조차 하지 않는 그의 방식에 산악계는 경악했다. 진정한 산악인이라는 칭송도, 무모한 치기라는 평가도 나왔다. 다큐멘터리 ‘알피니스트: 마크-안드레 르클렉’은 그를 다룬 귀한 영상이다.
◇소년, 산에서 길을 찾다
맨손으로 바위산, 빙벽을 오르는 24세 마크 안드레. “즐겁게 돌아다니는 게 좋다”고 말하는 천진난만한 청년은 험준한 산악으로 유명한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산아래 도시에서 태어났다. ADHD(과잉행동 집중력 결핍)로 학교에 안착하지 못하는 아들을 어머니는 홈스쿨링으로 가르쳤다. 아이는 산에서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고, 자신감을 찾았다.
탈선한 적도 있었다. 그 자신은 “여러가지 정신 상태를 경험하는 것이 좋았다”고 묘사하는 마약 중독이다. 산에서 자란 소년은 곧 깨닫는다. 마약으로 얻은 건, 진정한 경험이 아니라는 걸. 다시 소년은 산에 중독된다.
대기록을 쓰면서도 으스대지 않았다. 캐나다 로키산맥 최고봉을 아무렇지도 않게 정복했고, 파타고니아 토레 에거를 한겨울에 18시간 만에 등정했다. 한 사람이 하나만 해도 대단한 일을 2년 사이 모두, 혼자 해치웠다.
다큐에서는 주인공이 사라져 감독과 제작진이 난감해 하는 장면이 나온다. 산악 영화 전문 감독 피터 모티머가 누군가의 인스타그램 사진에 나온 주인공을 알아보고 연락한다. 그는 남, 북미와 스코틀랜드를 오가며 또 다시 신화를 작성 중이었다. 감독이 왜 연락을 하지 않았나 묻는다. “촬영팀과 함께 가면 솔로 등반이 아니잖아요.” 파타고니아 얼음산 등정이 영상 기록으로 남은 건, 혼자 등반에 성공한 후 카메라를 머리에 달고 재등반했기 때문이다.
마크 안드레는 돈, 명예, 명성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에베레스트에서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올리는 시대, 마크 안드레는 순정한 ‘히피 스타일’ 산악인이었다.
말수가 적은 그는 산에 가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아무 것도 없이 빈 손으로 산에 가는 것이 좋아요. 등반할 능력만 갖춘 채로.”
“나 자신은 컨트롤할 수 있지만 산은 그렇지 못하잖아요. 산의 자비에 맡겨야 해요. 산이 보내는 신호를 읽는 거죠. 등반은 마치 체스와 같아요.”
“산에 다녀오면 어떤 상태의 기분에 휩싸이는데, 내려와서도 한동안 지속돼요.”
청년은 산을 정복하는 게 아니라 산에서 깨달음을 얻어오는 편이다. 산악인 존 월시는 이렇게 말한다. “산에 굶주린 것 같아요.”
◇목숨을 담보로 잡은 산행은 타당한가
정치에만 철학이 있는 건 아니다. 등반의 방식을 두고 오랫동안 격렬한 논쟁이 있어왔다.
‘에베레스트 정복’을 두고 선진국들이 경쟁한 적이 있었다. 수십톤의 장비와 식량, 수백명의 인력을 지원했다. 히말라야, 에베레스트가 거대한 연극 무대가 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럼에도 산소통 메고 올라가 국기 들고 사진 찍는 경쟁은 한동안 계속됐다. 이른바 극지법(極地法) 등반이다.
산소통 없이 홀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인물이 라인홀트 메스너다. 1978년 일이다. 단독 알피니즘의 원조격이다. 이 다큐에 출연한 그가 말한다. “사실 반은 산에서 사망해요. 죽을 위험이 없다면, 내려와서도 의미가 없어요. 그런 건 애들 소꿉장난이죠.”
순수한 알피니즘의 대가는 목숨이다. 빙벽이나 암벽을 수직으로 수천걸음 걷는다. 한 걸음 삐끗하면, 끝이다. 모두 그 문제를 걱정했지만, 결국 현실이 됐다.
◇천재 등반가는 혼자서는 살고, 함께 가서는 죽었다
극도로 위험한 단독 등반에서 살아남은 그가 목숨을 잃은 건 2018년 3월. 모처럼 동료와 등반에 나선 그는 알래스카 멘덴홀 타워 북벽 등반 하산 길에 눈폭풍을 맞았다. 아이러니다. 그의 주검은 아직도 알래스카 어딘가에 있다.
그의 죽음에는 이런 질문이 붙는다. 정말 그럴 가치가 있나. ‘안전한 등반’을 비난하고 솔로 등반을 칭송하는 건 죽음을 부추기는 행위가 아닌가. 살아있는 느낌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일, 너무 값비싼 쾌락 아닌가.
다큐는 답한다. 그는 어떤 가치를 위해 산에 오른 게 아니었다고. 그건 그저 그의 인생 방식이었다고.
◇논란의 등반을 더 알고 싶다면, 아놀드 호놀드 주연의 ‘프리 솔로’
1976년 미국의 존 바카(John Bachar)가 요세미티 암벽을 맨몸으로 올랐다. 로프 같은 보조물없이 맨 몸으로 암벽을 오르는 프리 솔로(free soloing)의 시작이었다.
전세계 산악인 중 1%만 도전한다는 프리 솔로는 위험한 만큼 영화적으로는 매력적인 소재다. 디즈니플러스에도 미국 등반가 알렉스 호놀드(Alex Honnold, 37)를 다룬 다큐 ‘프리 솔로(Free Solo)’가 올라와 있다. 현존 최고의 프리 솔로 등반가인 알렉스 호놀드가 2017년 미국 요세미티 국립 공원 엘카피탄 등정 과정을 준비하고 마침내 성공하는 과정을 꼼꼼히 담았다.
마크 안드레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등반 천재라면, 알렉스는 공포와 사고를 극복하며 한발씩 앞으로 나가는 인간적인 알피니스트다. 다큐에서는 그의 뇌 MRI 촬영 결과도 공개된다. 위험에 반응하는 편도체의 움직임이 둔했다. 위험을 감수해왔기에 뇌가 위험에 둔감해졌는지, 뇌가 그래서 위험한 등반을 하는지 결론내기 어렵다.
확실한 건, 프리 솔로란 “금메달을 따거나, 따지 못하면 죽는 올림픽 경기 같다”는 사실일 것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제작하고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방영되는 ‘프리 솔로’를 먼저 시청하고, 넷플릭스 ‘알피니스트: 마크-안드레 르클렉’을 이어 본다면 ‘정서적 충격’이 조금 덜 할 것 같다.
박은주 에디터 겸 에버그린콘텐츠부장 조선일보 입력 202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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