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먼저 주목한 DJ 250
“그야말로 ‘소닉 헤븐(Sonic Heaven·소리의 천국).’”(DJ맥)
“한국과 아시아 전역에 반향 있을 것.”(더 와이어 3월호)
최근 영국 유명 음악 잡지들이 한 사람에 대한 극찬을 실었다. 주인공은 DJ ‘250(본명 이호형·40)’. 3월에 막 첫 정규 앨범을 낸, 대중에겐 낯선 이름이었다. 와이어는 세계적 음악 평론 잡지고, DJ맥은 세계 DJ들의 순위를 매기는 전자음악계 최고 권위 잡지다.
이들을 홀린 앨범명도 심상치 않았다. ‘뽕(PPONG).’ 타이틀곡 ‘뱅버스(Bangbus)’를 들어보면 이 수상쩍은 이름의 기원이 드러난다. 꼭 끝을 꺾어버리고 마는 전자오르간 소리, 술취한 딸꾹질 같은 추임새, 춤에 최적화된 박자. 우리가 ‘7080 불타는 관광버스’ 등의 제목으로 휴게소에서 무수히 지나쳤던 ‘뽕짝’의 소리가 최신 트렌드를 좇는 해외 평단을 저격한 것이다.
서울 용산구에서 만난 250은 “실제 뱅버스는 고속도로 관광버스에서 뽀글이 파마를 한 할머니가 엄지를 치켜들고 춤추는 모습을 상상하며 만든 곡”이라고 했다. 그렇게 뽕짝의 소리들을 절묘하게 결합한 11개의 전자음악 곡을 첫 앨범에 싣는 데 무려 “7년 걸렸다”고 했다.
사실 그 전까지 본업은 ‘뽕’과 거리가 멀었다. SBS ‘스타일’ 등 유명 드라마 음악을 만들었고, K팝 아이돌 프로듀서로도 유명했다. SM 소속 보이그룹 ‘NCT 127′의 ‘체인’ ‘내 Van’, JYP 걸그룹 ‘잇지(ITZY)’의 ‘가스 미 업’ 등이 그가 참여한 곡들. 숫자로 만든 예명은 본명 이호형과 어감이 비슷한 숫자 ‘250′을 옛 삐삐 시절에 흔적처럼 남기던 데서 따온 것이다.
그러다 2014년 지금의 소속사 ‘바나’ 측이 “뽕짝 주제 앨범도 만들 수 있나”란 제안을 해왔다. 자신 있게 “당연하지”를 외쳤지만, 3년 동안 단 한 곡도 낼 수 없었다. “뻔한 뽕짝과 지나치게 세련된 전자음악. 그사이 중심 잡는 게 정말 어렵더군요.”
250은 특히 “처음엔 신바람 이박사만큼은 피하자고 생각했다”고 했다. “‘뽕짝의 대명사’인 그를 따라가면 식상할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앨범 작업이 풀리지 않자 2016년 이박사를 찾아갔고, ‘고속도로 관광버스 가이드가 흥을 띄울 땐 반주기 음악 속도(BPM)를 160까지 올려버린다’는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뽕짝은 용도가 명확한 음악인 걸 깨달았죠. 졸음을 쫓거나, 춤추게 하거나.” 그렇게 이박사의 추임새 ‘좋아좋아좋아’ 위에 반주와 선율을 쌓은 ‘이창’이 ‘뽕’의 첫 곡으로 탄생했다.
이후에도 ‘뽕의 길’ 찾기는 계속됐다. 수많은 뽕짝 테이프를 녹음한 전자오르간 대가 나운도가 일하는 콜라텍에서 “멜로디를 딱딱 끊어 치는” 최신 뽕짝 트렌드를 익혔다. 사교댄스 교습소에서 콜라텍 단골 춤이자 6박자 스텝을 밟다가 ‘따닥’ 하고 반스텝을 덜 밟는 ‘따닥발’ 춤도 배웠다. “작곡할 땐 보통 2·4·8로 박을 세는데 2·4·6으로 세는 거예요. 어라, 7·8은 어디 간 거지 했죠.(웃음)”
이 밖에도 다양한 이가 그의 길을 도왔다. 이박사의 모든 앨범을 프로듀싱하고 연주한 건반주자 김수일에겐 뽕짝 전용 악기들을 배웠고, 아예 곡 ‘모든 것이 꿈이었네’ 보컬로도 섭외했다. 곡 ‘로얄블루’엔 재즈 색소폰 대가인 이정식이 ‘7080 룸살롱’에서 들릴 법한 끈적한 연주를 더했다.
앨범 마지막 곡 ‘휘날레’는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 김국환 ‘타타타’의 작사가 양인자가 쓴 가사에 만화 ‘아기 공룡 둘리’ 주제가를 불렀던 오승원의 목소리를 입혔다. 그렇게 발매된 첫 앨범 홍보 전단은 ‘콜라텍’ 전단지 스타일로 만들어 서울 이태원 거리 구석구석 뿌렸다.
이런 구구절절한 사연의 앨범 제작기는 최근 5화짜리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유튜브에도 공개했다. 향후 목표는 “‘뽕’ 앨범으로 최대한 많은 곳에서 라이브 공연을 여는 것”이라고. “라이브로 들려드리는 ‘뽕’의 느낌은 얼마나 색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고 했다. ‘뽕짝’ 주제의 앨범을 또 만들거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이 앨범을 통해 모든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음악 만드는 재미를 느꼈습니다.”
윤수정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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